천일여행 294일째, 2016년 4월 9일(토) 애틀랜타, 맑음
천일여행 294일째, 2016년 4월 9일(토) 애틀랜타, 맑음
햇살이 참 좋은 토요일 아침이다.
차가운 공기와 조금 강하게 부는 바람이
이제 막 피어난 짙어지기 직전의 나뭇잎을 비추는 햇살을
더 선명하고 반짝이게 하는 것이 흐릿한 시력에 잘 맞는 렌즈를 끼워
밝고 말게 보이는 것과 같다.
쇼팽의 야상곡을 들으며
잘 구어 낸 빵, 맛있는 프랑스산 치즈와 딸기 쨈
수동식으로 올려 만들어낸 에스프레소
냉장고에서 차갑게 보관되다 하얀 컵에서도 하얀 빛을 더하는 우유
이 모든 걸 쟁반에 얹어 식탁에 앉아 우아하게 아침을 즐긴다.
식탁위에는 여행에서 돌아와 다 정리하지 못한 것들과
여행 전에 ‘여행에서 돌아와 정리 해야지’하며 널려 두었던 책들이
시선을 흩으러 트리지만 그것 또한 일상의 하나로 받아들인다.
건너편 호텔의 주차장이 내려다보인다.
어거스타에서 하고 있는 마스터즈를 보러가는 것으로 추측되는 사람들이
골프복장으로 차에 골프백을 싣고 바쁘게 떠나는 모습도 보이고
여러 가지 색상으로 화려하게 차려 입은 사람들이 거리를 뛰는 여유도 보인다.
문득 ‘혼자 이러고 있는 내가 쓸쓸한 건가?’ 하며 가슴이 먹먹해 지기는 했지만
이내 ‘나는 혼자가 아니야’ 라는 자위를 하며 평상을 찾으며
복받쳐 올라오려는 설움이 목에도 미치지 못하고 가라앉는다.
그리곤 ‘피식!’ 하며 입꼬리가 올라간다.
‘3번 정신차려!’하는 환청이 들린 걸까 아님 진짜 부르고 있는 걸까?
밖에서 바람에 흔들거리는 나무들은 내 방의 음악이 들리지 않을 터인데
피아노소리에 맞춰 좁은 수로를 출렁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던
베네치아의 배처럼 온화함을 연출해 낸다.
몸을 부르르 떨게 할 정도로 짜릿하게 내려가던 에스프레소가
혈관을 타고 몸 구석구석 여행을 하는 듯
정신은 맑아지면서 몸은 구름을 타듯 나른한 황홀경 입구에 들어서는 듯 하다.
그랬다.
사랑을 나누다 부르르 떨며 사정의 여운을 느끼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갑자기 차가운 공기를 느끼며 따스한 살이 감촉이 그리워진다.
바닷소리 들으며 뒤엉켜 출렁이는 파도에 장단 맞추던 사랑놀이
그리고 느껴지는 나른함과 따스함, 포근함,
어렴풋이 보이는 달팽이 같은 원을 그려내는 입꼬리의 미소
그리운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지만 온기를 찾아 내 마음을 띄워본다.
오늘은 클럽이 문을 열지 않아 외부에서 후배들과 골프 하기로 하였다.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하는 그런 날이다.
12시를 조금 넘겨 시작을 해야 하고 후배들이니 저녁을 먹어야 하겠지?
아마도 술 한 잔 정도 하자고 할지도 모르겠고
모두들 운전을 해야 하니 그러지 않을 수도 있겠다.
우아한 아침을 마쳤으니 아침 운동을 하고 나갈 준비를 해야 하겠다.
날씨가 춥다고 하니 넣어 두었던 겨울 옷 다시 꺼내 입어야 할까보다.
오늘 골프는 ROTC 22기인 하종구, 이지운, 23기 유상선
내가 20기니까 2년 후배 2, 3년 후배 1명, 이렇게 넷이 한거다.
하종구는 예전부터 애틀랜타에 살고 잘 알고 지내는 사이로
예전에는 부인이 밑반찬이나 곰국 등을 많이 제공해 주었던 부부다.
유상선은 지난 주 민주평통 골프대회에서 같은 ROTC 팀으로 속해
처음 인사를 하였지만 팀이 뿔뿔이 흩어지고 내가 돌아오는 바람에
다른 교류가 없었기에 오늘이 첫 만남과 비슷한 후배로
인도에서 20여 년간 사업을 하다가 회사를 팔고 지금은 Cisco 직원으로 근무 하는 후배란다.
이지운은 골프를 잘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오늘 처음 만난 후배로
LG 전자 미국 법인의 엔지니어로 파견 나와 있는 후배로 부인은 교사라 한국에 있어
할 수 없이 떨어져 살고 있는 후배란다.
이지운과 주상선은 고향, 고등학교, 대학까지 선후배로 예전부터 잘 아는 친구인데
주상선이 인도에 있을 때 이지운이 인도법인에 근무하며 만났었고
이번에 애틀랜타에서 또 만나게 되어 이래저래 질긴 인연이라며 티격태격하는 선후배다.
아침 기온이 차고 바람이 많이 부는 오늘 같은 봄 날씨 안 그래도 골프하기 쉽지 않은데
나는 더욱 좋아하지 않고 힘들어하는 날씨다.
첫 홀은 어찌하다 파를 했지만 이내 몸이 오그라들면서 스윙은 엉망이 되고
멘탈도 조절하지 못해 두 번째 홀부터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헤맸다.
전반 9을 최악의 플레이로 마치고 햇살이 따스해 지는 후반에 조금 안정을 찾았지만
끝날 무렵 해가 기울면서 날씨가 다시 차가워지고 몸은 다시 굳어 힘들게 마쳤다.
골프를 시잘 할 때 하종구가 오늘 저녁은 중국집인 금불에서 먹을 건데
자기 부인과 오늘 골프를 하지 않은 내 동기 부부도 내 얼굴 보겠다며 합석하기로 되어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끝나고 그냥 가면 안 된다는 다짐을 하였다.
아침에 집에서 나오기 전 아무래도 골프가 끝나면 오랜만에 후배들과 저녁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기에 하종구의 부탁에 그렇게 하기로 대답하였다.
마치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식당으로 가서 동기부부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칸풍기에 마파두부, 탕수육에 고추잡채까지 곁들인 저녁에
다른 때 같으면 그냥 조금 먹는 시늉만 했을 텐데 오늘은 제법 많이 먹었다.
점심을 제대로 먹지 않아 배가 고픈 것도 있었지만
오랜만에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식사를 하다 보니 많이 먹게 된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차 한 잔?‘을 제안 하기는 했지만 마땅한 곳이 없어 각자 집으로 헤어졌다.
보통은 주말 골프를 오전에 시작하여 이른 오후에 끝나고 집으로 오는 편인데
오늘은 오후에 시작하여 저녁까지 먹고 나니 조금 고단하다.
오늘도 일찍 자리에 누워야 하겠다.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