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 여행

천일여행 351일째, 2016년 6월 5일(일) 애틀랜타/흐림, 소나기

송삿갓 2016. 6. 6. 08:45

천일여행 351일째, 201665() 애틀랜타/흐림, 소나기

 

모닝콜에 맞이한 일요일 아침

휴일이면 조금 더 늦게 자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게을러지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그것도 아님 운동이나 골프에 미친 사람처럼 평일과 똑같은 시간에 몸을 일으켰다.

준비를 하며 TV를 틀었는데 오전에 적지 않은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다.

순간 멈칫, 다시 침대로 갈까 아님 9층에 운동하러 갈까?

복잡한 생각을 하면서도 나가려고 준비하던 일을 멈추지는 않는다.

시간별 비구름 지도를 보니 930분부터 12시까지 골프장 주변을 지나갈 예정이다.

잘하면 적어도 9홀은 비를 맞지 않고 운동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마음에

어차피 오늘 마트에 가기로 했으니까 9홀이라도 하고 비가 오면 장을 보고 오자.

순간 주춤대던 마음을 접고 조금 있으면 비라도 내릴 것 같은 마음으로 조급히 준비를 한다.

 

골프장에 도착하자마자 빗줄기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더니 그릴에서 커피와 바나나를 들고

차 있는 곳으로 오자 나가고 싶은 마음을 접어야 할 정도로 빗줄기가 굵어진다.

마트가 문을 열었을 시각이니 장만 보고 집으로 가서 쉴까?

운동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이렇게 생각과 갈등이 심한지?

차 안에서 커피를 마시며 나를 자책하는 사이 잦아지는 빗줄기에

에이 올 테면 오라지, 많이 내리면 중단하고 가면 되지하는 마음에 준비를 마치고

연습장으로 올라가자 StarterJim이 올라오며 "Just yourself today in the morning" 하며

출발하라기에 "내가 미친 거지?“ 하며 머쓱해하자 아니야 그게 너 아니냐?“라며 추켜세운다.

그러는 사이, 비는 그치고 1 번 홀로 이동해서 출~~

마음속에는 언제라도 비가 내리면 중단하고 마트로 가자는 다짐에

9홀만 마칠 때 까지 만이라도 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작은 희망을 가지고 한 홀 한 홀 앞으로

전반 9홀 끝났는데 비가 내리지 않았고 하늘을 보니 계속 가도 좋을 듯

이른 아침에 내린 비로 잔디는 젖어 골프화를 적셔 양말까지 스며든 것이 신경 쓰이긴 하지만

그러려니 하며 가슴을 타고 흐르는 땀에 운동을 하고 있다는 뿌듯한 위안을 갖는다.

 

11번 홀, 물을 건너야 하는 파 3 홀이다.

건너편에서 코스를 걷는 부부가 내가 샷을 마치도록 기다린다.

원래는 골프코스를 걷지 말라는 표지판이 있기도 하고 걷지 않는 게 당연한 예의다.

내 주변에 닮고 싶은 부부가 둘 있다.

Dr. Mark Kukler라는 백인 부부와 Yang Kim이라는 한인 부부다.

두 남자 모두 좋아하는 골프친구로 나 보다는 나이가 많다.

Dr. Mark는 콧수염을 길러 남자답게 보이기는 하는데 마음이 여린 것 같다.

그는 3년 연속 'Player of the Year' 최종 결승 홀에 진출 했는데 세 번 다 져서 2위를 했다.

실력이 좋고 시원하게 플레이를 하여 상대에게 위협이 되긴 하지만 자멸하는 것으로 보아

심장이 여리고 약한 것으로 판단되는 것이다.

내가 일요일아침 걸을 때면 후반에 거의 항상 부부가 개와 함께 걷는 모습을 보는데

다른 사람 같으면 코스에서 걷기에 마음에 담을 수 있지만 그 부부만은 예외다.

부부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걷는 모습에 참 보기 좋다는 느낌을 갖기 때문으로

나도 저들처럼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Yang Kim이라는 한국 사람은 젊은 시절부터 해외에 살며 외국인회사에서 근무하다

은퇴를 한 사람인데 한국말을 잘 하는 외국인 같은 느낌이다.

내가 아는 한 한국인 중에 가장 골프매너가 좋은 사람으로 꼽는다.

어떤 이는 골프 룰을 잘 지키는 것을 골프매너가 좋은 것으로 평가하지만

나는 다른 골퍼의 플레이에 관심을 가져주고 배려하는 것을 제일로 생각한다.

티샷 할 때 눈에 거스르지 않도록 자리를 시야에서 보이지 않도록 하든가 움직이지 않는 것

다른 사람이 샷을 하는 동안 그의 볼을 봐 주면서 어디로 가는지 관심을 가지고 잘 관찰 하는 것

다른 사람의 좋은 플레이에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굿 샷!’이라는 말로 응원을 하는 것

그린에서 자신이 가까이 있으면 핀을 잡아주고 먼저 끝내고 끝까지 그린을 떠나지 않는 것

물론 다른 사람의 퍼팅라인을 절대 밟지 않고 퍼팅 시 시야에서 얼쩡거리지도 않는다.

 

골프를 하다보면 내가 못 치고 다른 사람이 잘 칠 때 심통을 부리는 사람이 있는데

나 역시도 심통을 부리지는 않으려 하지만 관심을 덜 한 척 하는 방식의

소극적인 심통을 부리는데 이 분은 절대 심통을 부리지 않을뿐더러

내가 아무리 큰 실수를 해서 기분이 좋지 않을지라도 그 분이 잘 하면 심통은커녕

내가 잘 한 것 이상으로 부러움을 나타내며 칭찬과 격려를 하게하는 분이다.

 

대게 나이든 한국 부부의 경우 남자들이 엄살이나 심통을 부리는 데

이 분의 경우 부인이 엄살이 심해 남편이 보살펴 주는 부부다.

티타임을 잡아 놓고도 마지막 순간에 부인이 안 가겠다고 하면 함께 집에 있거나

아니면 남자 혼자 나와서 걸으며 골프를 즐긴다.

사모님 어디 가셨어요?” 하고 물으면

, 나오기 싫다고 집에 있겠다고 해서요

그런데 사모님이 나가라고 하세요?”

, 집에 있으면 신경 쓰이니 나가라고 해서요

참 사모님 말씀 잘 듣습니다내가 안 들어 주면 누가 들어 줍니까?”

그 부인은 골프를 즐기기 보다는 나도 골프를 한다는 과시용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부인과 함께 골프를 할 때 이것저것 챙기는 모습을 볼 때면 참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두 분이 골프여행을 포함해서 여행도 많이 다녀서 한 동안 보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여행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더욱 닮고 싶은 마음이 든다.

 

오늘 아침 11번 홀에서 만난 부부가 Dr. Mark Kukler

13번 홀 티 샷을 하려고 서면 왼쪽에 보이는 집이 Yank Kim의 집으로

지날 때면 오늘도 잘 계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건강을 기원한다.

 

다행이 18홀을 마칠 때까지 비가 내리지 않는 행운의 날을 보냈다.

클럽하우스에 가서 오는 화요일(67) 아침에 티타임을 Block 했는데 이유를 물으니

임시로 막은 것이고 걸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비가 내린다.

다시 마트에 들려 장을 보고 집에 올 때까지 비가 멈추더니 집에서 쉬고 있는데 다시 내린다.

 

며칠 전부터 뭔가 담백하거나 걸쭉한 것을 해 먹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그런 이유로 인해 누룽지를 끓여 먹는 일이 많았는데

깔끔한 가자미조림이나 돼지고기를 넣은 야채볶음이 아른거렸다.

오늘 마트에서 오징어와 돼지고기, 한국고추를 사왔다.

돼지고기와 오징어를 큼지막하게 썰고 양파와 당근, Brown 버섯, 한국고추를 썰어 준비하고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돼지고기를 볶다 다진마늘을 넣어 바짝 익히고 오징어를 추가해 볶다가

썰어 놓은 야채와 고춧가루를 넣고 충분히 익혔다.

오늘도 역시 누룽지를 끓이고 김치를 곁들여 저녁을 먹었다.

 

어제 골프할 때 코스의 카트 길에 바나나 한 뭉치가 떨어져 있었다.

아마도 음료를 파는 카트에서 떨어졌는데 모르고 지나간 것 같았고

비에 젖어 못 먹을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은 그냥 지나쳤던 것 같다.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농수산물을 대하는 것이 조금은 유별나다.

지나가다 열려 있는 것을 그냥 따서 먹는 것이 아니고

자연에 기도하며 정성을 다해 씨앗을 뿌리고 돌보다 수확을 하였고

여러 사람의 수고를 통해 먹으려는 사람에가 다가 온 것이기에

그들의 간절한 마음과 손길을 생각하면 쉽게 대할 것이 아니라는 고마움 때문이다.

카트 길에 굴러다니는 한 뭉치의 바나나를 보고 함께 골프하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려 하였지만

그것을 주워 집으로 가져와 잘 닦아 보관하였다.

양이 많아서 그냥 두면 버릴 가능성이 크기에 말리기로 하였다.

껍질을 벗기니 떨어지면서 부딪친 부분은 손상을 입었지만 대부분은 하얀 속살을 드러냈다.

적당한 크기로 썰어 건조기 Plate에 넣고는 하마터면 그냥 버려질 뻔 했지?’ 하며

위로하며 당분간 도시락에 넣을 충분한 양이 될 것에 큰 것을 얻은 것 같은 뿌듯한 마음 가득.

오늘 하루도 참 잘 보냈다.

 

멍멍아! 그치?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