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여행 408일째, 2016년 8월 1일(월) 애틀랜타/맑음, 소나기
천일여행 408일째, 2016년 8월 1일(월) 애틀랜타/맑음, 소나기
꼭 늪에 빠져 갇혀있는 것 같다.
빠져 나오겠다고 허우적댈수록 더 깊은 곳으로 빠지고
살아보겠다고 팔다리를 휘저으려 해도 누군가 못 움직이게 사지를 꼭 부여잡고
가슴과 몸통도 무거운 것으로 짓눌려 꼼짝을 못하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요즘 속수무책이라는 단어를 참 많이 쓰게 되는 데 그야말로 ‘속수무책’
어제 묵직한 몸을 힘겹게 움직이면서 오후를 보내다 저녁을 먹고는 일찍 침대에 누웠다.
8시를 조금 넘겼을 무렵 뜻하지 않게 아해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아파”
거의 들리지도 않게 겨우 뱉어내는 말에 깜짝 놀랐다.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빠르게 생각해 보지만 꿈은 아니다.
“어디가 얼마나?”
“머리가 빠개지는 것 같고 배가 아프면서 속이 울렁거리고”
“배가 어떻게 아픈데?”
“몰라 그냥 아파, 죽을 것 같아”
“어쩌지?”
정말 어찌해야할지 머리가 정지되어버렸다.
컴퓨터를 켜고 <오한>, <울렁거림> 이라는 단어를 검색해서 어떤 처방이 좋은지 찾지만
뚜렷한 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
두 번째로 아해의 주변에 Emergency Call 할 수 있는 곳을 찾지만
엉뚱하게도 미국대사관이나 주요국가 공관이 표시된 지도가 뜬다.
세 번째로 아해가 있는 곳을 가는 비행기 시간을 알아본다.
밤에 갈 방법은 없고 오늘(8월 1일) 비행기는 평상시 비즈니스석 가격이 표시된다.
하루 뒤인 8월 2일자는 평상 가격으로 표시되는데 ‘이거라도 예약해야 하나?‘
급한 대로 배 아픈 것을 가라앉히는 약과 물을 먹으라하고는 통화를 하면서 이야길 해 보지만
뚜렷한 방법은 찾지 못하고 아픈 아해가 통화에 힘겨워하면서 “그냥 자 볼께”라고 말한다.
참 난감하다.
자라고 끊어야 하는지 아님 계속 통화를 해야 하는지?
‘끊었다 더 아파서 연락이 안 되면 어쩌나?’하는 생각이 끊지 못하고 질질 끌지만
그럴수록 아해는 더욱 힘들어 한다.
결국은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연락하라’는 당부만 몇 차례 반복하곤 전화를 끊는다.
안절부절
무엇을 어찌해야 좋을지, 어떻게 하는 게 최상인지 도무지 방법이 없다.
머릿속을 휘감으며 맴맴 도는 단어가 ‘속수무책’이다.
한 시간이 조금 더 지난 뒤
‘해열제 하나 더 먹었어. 나아지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자요’라는 메시지가 왔다.
난 ‘미안하다’는 답신 밖에 할 게 없었다.
미안했다. 정말 미안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미안했고, 뭔가 해 주지 못하는 것도 미안했다.
‘뭐 때문에 갑자기 그리 아팠을까?’를 잠시 생각했지만 무용지물
더 이상은 생각하지 않고 좋은 방법이 없는가만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이 8월의 시작 일이자 조지아는 Back to School이라 해서 일부 카운티가 개학하는 날이다.
지난 토요일과 어제 Tax Free Sales라는 법석에 이어 방송국에서는 헬기를 띄우며
아침 교통상황이나 학교 소식을 전하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출근길은 다른 때에 비해 한산한 편이었다.
‘아이들 학교에 보내는 부모들의 출근이 늦어 그런가?’하는 추측을 하며 회사에 도착했다.
어느 조직이든지 우두머리가 없으면 조금은 달라지 게 되어 있는데
공장의 한 팀 리더가 지난 금요일에 가족과 함께 휴가를 가서 그런지
공장식구들의 출근이 전체적으로 조금 늦는다.
그걸 보면서 내가 이르게 출근해서 사무실 지키고 있으면 파트너를 비롯한 직원들이
긴장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아해의 아픈 소식에 나 역시도 어제보다 힘이 더 빠져 무기력해져 모든 것이 귀찮다.
자리에 앉으면 까무러치듯 몸이 가라앉고 자꾸 눈이 감긴다.
‘잠이라도 자 볼까?’ 해서 쉬고 있으면 잠은 오지 않고 머리만 복잡해진다.
가장 복잡한 것은 ‘아해가 아프다는 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과
‘정말 내일이라도 달려 가야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몸과 마음을 더욱 지치게 한다.
‘누룽지를 끓여 먹었다’는 메시지가 와서 조금은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참 힘을 낼 수가 없다.
샐러드 도시락을 점심으로 먹었지만 자꾸 치받쳐 올라오며 더부룩하게 한다.
그리곤 어찌나 잠이 쏟아지던지 귀에 헤드폰을 쓰고 잠깐 졸았다.
깨어나서 천천히 정신을 차려보기는 하지만 움직이는 것 자체가 귀찮다.
은행자료를 프린트하여 내가 할 것은 정리하고 나머지는 Liana에게 넘기곤 집으로 향한다.
‘내가 이럴진대 아해는 얼마나 힘들고 허전할까?’
‘이런 상태에서 내일 운동할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을 하며 퇴근길을 서두른다.
집에 오는 길에 Costco에 들려 구운 닭, 당근, 치즈, 브로커리를 샀다.
지난 번 샀던 당근이 너무 많아 대부분 버렸기 때문에 이 번에는 꼬마 당근을 샀는데
‘버리지 않도록 열심히 먹어야 하겠다’라는 마음을 다잡고 또 샀는데 그렇게 되길 바란다.
집에 도착해서 치즈와 에스프레소 한 잔을 먹고 났는데도 몸을 움직이기가 싫을 정도로
피곤이 밀려오고 만사가 귀찮은 귀차니즘으로 거실에 누워 한 숨 또 잤다.
일어나서는 사 온 도시락을 쌀 때 쓰기위해 살을 발라 조금씩 포장해서 냉동실에 넣고
살을 발라내고 남은 뼈는 끓여 국물을 냈다.
브로커리 역시 스팀해서 조금씩 포장해 냉동실에 보관하고
닭 뼈로 우려 낸 국물로 만둣국을 끓여 저녁을 준비했다.
저녁을 먹고 나니 닭기름 냄새가 치받쳐 오른다.
쉬려고 생각했던 운동을 위해 옷을 갈아입고 9층으로 내려가 정확히 한 시간을 걷고 올라왔다.
올라오면서 일주일 넘게 들리지 않았던 메일 박스에서 가서 버릴 건 버리고 일부는 가지고 왔다.
아해는 잘 자고 있을까?
어제 이맘 때 쯤에 아프다고 연락이 와서 놀랐는데 오늘은 연락이 없네
전화를 해 볼까 하지만 잠든 것을 깨울까봐 그러지도 못하고 궁금증을 안고 침대로 찾는다.
내일 아침은 많이 좋아 지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