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여행 666일째, 2017년 4월 16일(일) 애틀랜타/맑음
천일여행 666일째, 2017년 4월 16일(일) 애틀랜타/맑음
새벽부터 눈을 떴지만 일어나지를 않고 8시까지 침대에서 버둥거렸다.
그러다 아해의 메시지에 일어나서는 시리얼, 빵, 커피 등으로 아침을 먹고 빈둥빈둥
꼭 할 일이 없고 갈 곳 없어 방황하는 사람처럼 아침을 보냈다.
10시를 조금 넘어 차려입고 동네 어귀를 걷기위해 집을 나섰다.
딱히 어디를 가야겠다는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대충 방향만 잡고 걷다
조금 더 걸어보자는 욕심에 한 번도 가지 않았던 400번 도로 근처의 동네까지 갔다.
도심의 한 복판, 그것도 Buckhead 가까이 인데 아주 오래되고 개발되지 않은 것 같은
큰 도로에서 집까지 흙길에 비가와도 질퍽거리지 않게 잔 돌을 많이 깔아 놓은 집도 있었다.
걸어서 건강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은 어제 일 때문이었다.
어제 박일청 선배와 골프를 하고 남대문에서 대구탕을 먹기시작했을 때
박 선배의 형수께서 “저쪽에 있는 분둘 김영길 선배부부 아니에요?”
슬쩍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지만 그 선배라고 하기엔 너무 뚱뚱한데다 부부가 많이 나이들어 보여
“제가 보기엔 아닌 것 같은데요? 선배님이 보시기에 어떠세요?”라며 박 선배에게 불었다.
박 선배도 바라보더니 “아니야, 잘 못 본거야”라며 단호하게 대답하였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선배는 당당한 체구에 그렇게까지 뚱뚱하지는 않았기에 확신하였다.
식사를 하면서 비슷한 느낌이 있는 듯하여 자꾸 눈길이 갔는데
‘아니’라는 확신에서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확신에 자신을 잃어갔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남자는 거동이 불편한지 대부분의 것을 여자가 챙겨주는데 애처롭게 보이기까지 하였다.
식사를 마쳐갈 무렵 아까의 자신감은 거의 사라졌고 맞을 수도 있다고 갸우뚱 하고 있을 때
“맞는 것 같은데 가서 인사라도 하는 게 좋지 않으냐?”며 형수가 나와 박 선배에게 종용하였다.
선배라는 장담할 수 없는 마음을 안고 다가가서 인사를 하는데 남자는 나를 잘 몰라보다가
박일청 선배는 확실히 알아보면서 미소를 지으며 반가움을 표시하고
마주 앉아 있던 부인은 확실히 나를 알아보면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한다.
악수하려고 내민 손에 살아있는 사람의 피부가 아니라고 할 정도로 검푸르다.
우리는 식사를 마쳤지만 두 분은 식사를 하는 중이라 오래 잡고 있을 수는 없어
서로가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말을 하고 자리를 떴다.
적어도 5년 전에 만났었고 간간히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었는데
박일청 선배의 말로는 신장투석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다.
부어오르다 못해 축 늘어진 턱과 거동이 불편한 모습, 건강치 못한 피부가 문득문득 떠올라
안타까움과 함께 건강 잘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아침 걷는 중에도 그 모습이 자꾸 떠올라 조금이라도 운동을 더해야 한다며 스스로 부추겼다.
아침 걷기의 마지막 코스는 자주 가는 쇼핑몰
11시를 훌쩍 넘겨 도착했는데 문을 열지 않았다.
‘Easter라 12시에 여나?’하며 열린 곳을 서성이나 12시를 넘겨 다시 찾았지만 여전히 Close,
Nordstrom에 가니 Easter라 Close한다는 안내 팻말이 세워져있다.
집으로 돌아와 Instant 우동에 계란을 넣어 Microwave에 돌려 김치와 함께 점심을 먹고
아해와 통화를 마치고 샤워에 이어 거실바닥에 누워 낮잠을 즐겼다.
오랜만에 딱딱한 바닥에 누워 한 숨을 자고 일어났는데 몸은 계속 자자며 하품을 쏟아낸다.
하릴없는 사람처럼 빈둥거리며 쉬다
Steam한 브로커리 도시락 싸기 좋은 크기로 Wrap으로 싸서 냉동실에 넣고
어제 우려낸 닭 국물로 떡만두국을 끓였다.
점심에 우동을 먹었기에 다른 것을 먹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냥 편한 것으로 선택
저녁 먹고 치우고, 쓰레기 버리고 Zen에 가까운 차 한잔 만들어 테이블에 앉았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 때문에 그런지 운무가 끼어 멀리보이는 지평선은 조금 뿌옇다.
어린 시절 외갓집 동네에서 살 때 집집마다 세워져있는 굴뚝에 연기 오르던 저녁이 떠오른다.
지금쯤이면 논밭 갈고 씨앗 뿌려야 하는 한 참 바빠지기 시작한 농사철이라
조금 늦은 저녁까지 일하는 남정네들보다 조금 이르게 집에 도착한 아낙네들이
얼마 남지 않은 곡식으로 밥을 하거나 죽을 끓이느라 피어오르는 연기
그나마 여유가 있는 집은 몇 가지라도 할 게 있어 연기의 여운이 오래가지만
대부분의 많은 집들은 그야말로 피죽 이외에는 끓일게 없어 스멀스멀 꺼져가는 연기가
그래도 뭔가 저녁을 했다는 흔적으로 남아있다.
네 엄마는 뭘 했지?
농사지을 땅덩이가 없으니 장사를 나갔을 게고 허탕 치는 날도 있었을 게니
그나마 끓일 양식이 없었을 수도 있었을 거다.
설 지난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아 아버지가 다녀가시며 남겨준 돈이 있었을 까나?
점심은 학교에서 준 강냉이 죽으로 동생과 둘이 먹었겠지만 양이 부족해 배가 고팠을 거다.
삶은 고구마에 김칫국물을 먹었나?
아님 깡 보리밥에 넣은 것 거의 없는 허여멀건 된장찌개를 먹으며 된장 하나 더 건저 먹으려
동생과 경쟁하듯이 뚝배기 휘젓다 엄마에게 수저로 머리통을 맞았나?
그런 밥도 때 찾아 집에 들어오지 않고 논다고 야단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이놈아 밥 때 되면 들어와야지, 꼭 부르러 다녀야 오냐? 공부는 언제 하냐?”
암튼 외갓집 사랑방에 살던 우리 집의 굴뚝은 연기 없는 날이 더 많았던 건 분명한 기억이다.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려 놓지도 못하면서 집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은
다른 집 굴뚝의 연기를 보느라, 우리 집 연기가 오를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참 서글프고 가여운 이야기고 난 어려서 잘 몰랐을 수도 있지만
자존심 강한 서른도 안 된 우리 엄마는 어떻게 참고 견뎠을까?
하늘과 맞닿은 흐릿한 지평선 때문에 깊이 숨어있는 가엽은 옛날이 떠올랐네.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말이다.
식은 차 한 모금 입에 무니 향긋한 꽃내음이 마음을 덮으며 아린 추억을 가려준다.
한 모금 더,
이번엔 풀내음이 몸을 새소리 가득한 구릉으로 이끈다.
오늘 하루도 참 잘 보냈다.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