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여행 673일째, 2017년 4월 23일(일) 애틀랜타/흐림, 비
천일여행 673일째, 2017년 4월 23일(일) 애틀랜타/흐림, 비
어제 들었던 오늘의 일기예보,
비 올 확률 80%, 곳에 따라 소나기, 최고기온 64도
새벽 잠결에 비가 오는 소리를 들었다.
‘비가 오는 구나. 오늘 어쩌면 골프하러 못 가겠구나’
아침 모닝콜에 눈을 떴을 때 캄캄함 속에서도 흐린 것 같기는 하지만 비는 오지 않고 있었고
오늘 아침에 들었던 오늘의 일기예보
비 올 확률 100%, 오전 곳에 따라 소나가, 오후 Heavy Rain
비구름 이동 경로를 보니 오전에 골프장 근처를 몇 차례 지나간다.
‘비 올 확률 100%는 새벽에 이미 비가 왔으니 의미가 없는 거고 갔다 비 맞을 것 같은데
운동을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만일 올라갔는데 비가 와서 그냥 내려와야 하는 상황이 되면 억울할 것 같다.
하지만 비가 내리지 않고 있으니 마음의 갈등이 심하다.
나갈 준비를 하면서도 ‘갈까? 말까?’를 수시로 반복하지만 집을 나선다.
이게 무슨 깡다구냐?
아침에 여유가 많이 않아 스트레칭을 하지 않고 갔기에 조금 이르게 도착하였다.
커피와 바나나를 들고 사과를 씹으며 연습장에 올라가니 Mark가 연습장을 준비하다
나를 보더니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내가 늦은 거냐, 아님 네가 빠른 거냐?”고 묻는다.
“내가 빠른거다”라고 하니 시계를 확인하곤 “맞아 네가 빨리 왔다”는 인사를 주고받았다.
40여분이나 있으니 연습할 시간은 충분하다.
연습을 하다말고 “Mark에게 조금 빨리 나갈 수 있느냐?“고 물으니
잠시 기다리라 하곤 클럽하우에 무전으로 물어본다.
“Kenny가 지금 연습을 하고 있고 혼자 걸으려 하는데 조금 빠르게 나가고 싶다는데?”
잠시 뒤 “Okay, you can go 7:45"
원래 내 시각보다 15분 빨리 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내 타임에 다른 사람 셋이 들어와 있는데 혼자 먼저 시작하게 되었다.
하늘은 잔뜩 흐리지만 비가 금방 오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내심 ‘나 끝날 때까지만 오지 말아라‘는 바람을 가지고 있지만 그게 내 뜻대로 되느냐 말이다.
8번 홀에 도착했을 때 제법 굵은 빗줄기가 내려 우산을 폈다.
‘비가 많이 오면 9홀만 하고 가지 뭐~’라는 편한 생각을 하지만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조금이라도 빗발이 가늘어 지면 ‘그냥 끝까지 할까?’
그러다 굵어지면 ‘9홀만 한 거도 어디냐? 집으로 가서 많이 쉬지 뭐~’
8, 9번 두 홀을 걸으면서 빗줄기에 따라 수시로 마음이 바뀐다.
‘내가 우유부단해서 그런가? 아니야 골프를 좋아해서 그래’
골프와 만(萬)이라는 숫자는 연관이 참 많다.
드라이버의 평균수명이 볼을 만 번 치는 것이라 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 강도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그런 소리를 들었다.
골프가 잘 안 되는 날 이유가 만 가지 라고 한다.
잘 되는 날 이유는 그에 훨씬 못 미치지만 말이다.
골프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왜 골프를 하지 않느냐?”라고 물으면
이유가 만 가지는 된다고 한다.
그런 것을 듣고 내가 생각하는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분별하는 방법
골프를 해야 하는 이유가 만 가지고 안 할 이유가 백(百)가지 인 사람은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
골프를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만 가지고 해야 할 이유가 백 가지 인 사람은 골프를 안 한다.
다시 비 이야기로 돌아와서 9번 홀을 마쳤을 때 빗줄기는 가늘어져 거의 그쳐가고 있다.
멈춰야 하는 이유가 당장 사라졌고 백 9을 마쳐야 하는 이유가 만 가지는 되었다.
‘나는 운동을 해야 한다’
‘이대로 집으로 가 봐야 늘어지기만 한다’
‘지금 멈추고 집에 갔다가 비가 오지 않으면 너무 속상할 것 같다’
‘5월 첫 주에 있을 토너먼트 대비 연습을 더 해야 한다’
‘······’
‘···’
골프에 빠지는 것은 마약과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나 역시 그런 말을 종종한다.
골프는 머릿속에 그린 그림대로 항상 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티샷이 페어웨이 샷이나 벙커 샷 등의 거리와 방향이
그리고 퍼팅을 했을 때 또한 마음속에 그려 놓은 대로 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다운스윙 직전에 뭔가 잘 못을 느꼈을 때 멈춰야 한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그대로 친 볼이 생각했던 곳 보다 50야드도 넘게 왼쪽으로 갔을 때
‘왜 나는 멈추지 않았을까?’하는 후회
그린에서 아슬아슬하게 홀을 비껴갔을 때 절로 터져 나오는 탄식과 잘 못 한 것에 대한 아쉬움
얼 만큼 띄워서 어떻게 구를 것이라는 바람과는 관계없이 어뚱한 방향으로 갈 때의 탄식
제대로 안 된 이유가 만 가지는 된다.
그럼에도 골프를 다시 하게 되는 이유는
잘 될 것 같아서
어쩌다 실수를 했음에도 내가 생각했던 방향이나 거리에 비슷하게 갈 때의 Good miss
하지만 가장 큰 환각은 내가 생각하고 내가 그린 그림대로 볼이 하늘을 가르고
그린을 굴러 빨려 들어가듯 홀 퐁당 했을 때의 통쾌함은 전율을 느끼게 하며
몇 십번이고 머릿속에서 Replay하며 잊혀지지 않는 것이야 말로 골프채를 어루만지게 한다.
그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10번 홀로 이동하였다.
백 9을 돌기로 한 것이다.
궂은 날씨임에도 한 홀씩 건너 벙커에 들어가고 있음에도 그리 나쁘지 않게 하고 있었다.
2주 전부터 치기 시작한 아이언과 점점 친해지면서 예전에 가깝게 거리가 늘고
방향성도 점점 좋아지면서 조금만 더 연습하면 마음에 꼭 들것 같은 느낌이다.
트러블 샷 같은 것도 크게 욕심만 내지 않으면 그린 근처에서 Recovery가 되니
점수에 큰 문제가 되질 않으며 나름 만족스럽게 13번까지 마쳤다.
14번 홀(파4) 드라이버 티샷 한 볼이 오른쪽 꽃밭으로 들어갔다.
오늘 최대의 위기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걷고 있는데 Mary Ann이 다가온다.
‘11시에 간다고 했던 사람이 아직도 일을 하네?‘하며 앞으로 가다 만났는데
클럽하우스에서 말하길 “11시에 Thunder Storm이 온다”고 했다며 얼른 가란다.
시각을 확인하니 10시 44분,
‘16분 남았으니 이 홀을 끝나고 다음 홀 중간 쯤 오겠구나. 그럼 세 홀 이상은 못 하겠네’
하는 마음이 들면서 한 홀이라도 더 해야겠다는 조급함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한 편으로는 ‘이미 13번까지 했으니 운동으론 충분하다‘며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며
나를 달래보기도 하지만 빨라진 발걸음은 조절 기능 상실한 자동차 같았다.
드라이버 티샷 한 볼을 확인하니 역시나 꽃밭에 참하게 자리하고 내 손길을 기다린다.
빨리 어떻게 처리하려는 조급함에 샷이 빨라지고 실수를 거듭한 끝에
어쩌다 한 번씩 하는 Triple 보기를 하면서 11개 Over로 두 자리 숫자가 되었다.
15번 홀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파로 마무리하면서 하늘을 보니 오히려 맑아진다.
마칠 때까지 큰 비가 올 것 같지는 않다는 마음으로 달래니 조급함이 사라진다.
18번 홀에서 다시 세 번 째 샷이 벙커로 들어가 위기를 맞이하였지만 잘 마무리
네 홀 연속 파를 하여 아우디를 달성, 14번 홀의 조급함의 실수가 아쉬웠다.
Air로 카트를 청소하기위해 클럽하우스로 향하는 데 빗방울이 다시 시작하였지만
자동차에 도착해 수집한 볼과 카트, 골프백을 정리할 때까지 많은 비가 내리지는 않았다.
골프 볼,
오늘 수집한 아해의 볼은 32개, 내가 치는 Prov1까지 합치면 족히 40개는 된다.
남이 치던 볼을 주워 아해에게 주는 것을 늘 미안하게 생각한다.
때문에 줍는 다는 표현 보다는 수집한다는 표현을 하면서 몇 가지 절대적인 원칙이 있다.
일단 컬러 볼은 무조건 들어 올려 너무 낡거나 흠집이 있는 것 말고는 수집한다.
2 Piece 볼은 절대 수집하지 않는다.
땅위에 있든 아님 물속에 있든 멀리서도 어떤 종류의 볼인지 50%까지는 알 수 있는데
이 때도 너무 낡거나 2 Piece는 건드리지 않는데 약간 먼지가 많거나 물이 흐릴 때는
분간이 어려워 일단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들어 올리거나 건진다.
확인 했을 때 아해가 좋아하는 볼이고 더욱이 흠집이 없는 새 볼일 경우 안도함,
이는 수집한 볼을 줘야 하는 미안함을 덜어내는 순간이다.
‘에궁 못난이 같으니라고’
오늘도 이리 고르고 저리 고르면서 모은 볼이 32개니 본 것은 50개를 훌쩍 넘고
그렇게 하루하루 모은 볼이 집에 천 개가 넘는다.
샤워,
골프를 마치고 따스한 물로 샤워를 하면서 미끄덩거리는 몸을 씻을 때
따스함이 살갗을 통해 뼈까지 전해졌을 때 나른함과 쾌감이 뒤엉키는 것도
골프를 해야 하는 만 가지 이유 중의 하나다.
샤워를 마치고 Parking lot으로 나오는데 그 사이 제법 많은 비가 내렸는지 촉촉하다.
집에 도착,
치즈를 듬뿍 얹은 빵, 에스프레소, 시리얼 어제와 같은 메뉴지만 질리지 않는 것은
골프를 했다는, 그리고 아해와 통화를 한다는 근사한 토핑을 더했기 때문이다.
낮잠,
거실에서 말고 홀딱 벗고 침대에서 뽀송뽀송한 침대커버, 이불과 애무하며 한 숨 즐겼다.
일어나서는 빨래를 돌리고 건조기에 침대커버를 돌려 바짝 말려 잘 개서 옷장에 보관하고
차에서 가져온 짐을 정리하면서 박일청 사장에게 줄 볼을 정리했다.
처음엔 300개만 주고자 했던 볼을 두 배인 600개로 늘려 박스에 잘 넣어 차로 옮겼다.
전부 아해를 주고자 모은 볼인데 너무 많아서 궁색하게 주워 골프를 하는 선배에게 선물.
그러고도 800여개가 남아 있다.
그것도 아해가 좋아하는 볼, 좋아하기를 바라는 것들로만 600여개가 남았다.
내가 치는 볼?
ProV1 100여개, 적어도 3년은 칠 수 있는 볼이지만 내년 되면 또 누군가에게 선물할 거다.
머릿속을 굴려보니 1년에 내가 새 볼을 치는 것은 20여개 정도면 충분하다.
저녁
어제 삶아 손으로 갈라 보관했던 배추에 된장, 고추장, 마른새우를 넣은 배춧국
있는 오징어젓에 푸른고추를 잘게 설어 참기름과 무쳐 재 탄생한 오징어젓
냉장고에 잘 보관되어 있던 돼지고기야채볶음과 오이무침
천천히 꼭꼭 씹어서 잘 먹었다.
집에 도착한 후 오후 내내 줄기차게 비가 많이 내렸다.
그쳤다 싶으면 기계 세차장의 마지막 거품을 씻어내는 물줄기처럼 쏴~ 하며 쏟아지고
조금 지나치다 싶으면 적셔진 땅에서 멈춰 낮은 곳으로 물줄기를 만들며 사라지고
달리는 자동차를 따르는 물보라가 사라진 듯하면 다음 물쇼를 위해서 또 내리기를 반복하다
저녁을 먹고 쓴맛과 떫은맛이 함께하는 Maple 차의 향기를 음미할 무렵
비는 그치고 살랑살랑 부는 바람과 함께 어둠이 찾아들면서 물방울 춤추던 도로는 말라갔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저물어 간다.
잘 보낸 일요일이다.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