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여행 837일째, 2017년 10월 4일(수) 애틀랜타/맑음
천일여행 837일째, 2017년 10월 4일(수) 애틀랜타/맑음
추석날을 마쳤을 어머님이 걱정되어 전화를 또 걸었다.
목소리는 다행히 어제 보다는 훨씬 좋아졌지만 아직 평상시 같지는 않았다.
“다들 떠나서 서운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아니 시원하다”라는 비장한 듯한 말씀을 하신다.
그리곤 제사는 내년까지만 하겠노라고 선언하셨단다.
아마 그것 때문에 시원섭섭함이, 그래서 비장한 목소리가 되신 듯하다.
어머님 말씀대로 내년에 정말 마칠지 아직은 모르지만
‘지난 달 아프시면서 얼마나 고생이 심했으면 그러셨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매 번 힘들긴 하지만 당신이 가족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를
내려놓으시겠다는 선언이 마음의 허전함 클 것으로 예상되었다.
아마 한동안은 그 선언에 대해 후회를 하면서 마음의 고민이 적지 않을 것 같다.
하기야 50여년을 지켜온 그것을 선언하셨지만 실감이 나진 않을 것 같다.
돌아가신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아버지가
저녁이면 문을 열고 들어 올 것만 같은 날이 있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지금 살고 계신 집을 쉬이 떠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과 비슷할 것 같다.
암튼 어머님의 상심을 생각하니 나도 조금 처지긴 한다.
오늘은 혼자 9홀을 걸었다.
진행 속도가 빠르고 점심 약속이 있어 어제와 같이 한 번 더 돌 생각을 하였지만
9 번 홀 그린에 다다랐을 때 1번 홀에서 동양인 두 명이 여러 개의 티 샷에 이어
다음 팀도 3명이 대기하고 있어 포기하고 샤워를 마친 후 사무실로 내려왔다.
어제 Credit Report 회사인 Transunion에 내 생년월일이 잘 못 되어 고치려니
전화나 이메일로는 안 되고 Fax 혹은 메일로 보내라기에 사무실에 들어와 서류를 만들어 보내고 바로 점심 약속을 위해 다시 사무실을 나섰다.
고영준,
오늘 점심을 함께한 ROTC 동기인 친구다.
미국에 와서 애틀랜타에서 만난 동기는 다섯,
그 중 가장 먼저 알게 되었고 그래서인지 나름 가장 가깝게 지낸 친구다.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니는 등 많은 것이 비슷하게 이어졌기에
서로를 좋아했기에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 통하는 것이 제법 많아서 종종 만나기도 했지만
서로의 삶이 달라지면서 뜸해져 1년에 한두 번 연락하는 것 말고는 잘 만나지지 않게 되었다.
그를 만나는 것이 왜 미안하게 생각되었는지, 아니 어쩌면 그의 부인에게 면이 서지 않아서였다.
암튼 그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 점심을 하며 달리 가는 삶의 푸념을 늘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아니 주변의 어느 누구와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하지 않는 것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시간을 보냈다.
물론 아해나, 내 몸 안의 동거하는 달갑지 않은 녀석 이야기를 빼고 말이다.
천천히 점심을 즐기며 한 참을 이야기하다 각자 먹던 것을 싸들고 헤어졌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한 달에 한 번은 보자는 그래서 다음번이 내 차례고
오늘 점심은 자기가 내겠다고 우기는 통에 마지못해하며 지갑을 다시 챙겨 넣었다.
그와 헤어지곤 두어 시간 함께 하면서도 왜 다른 동기들에 대해선 한 마디도 안 했을까?
둘이 있으면 우리 이야기만 하는 그와 나의 성격 때문일까?
오랜 만에 친구를 만난 여운을 즐기며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준이도 오늘 만나서 반가웠다는 카톡 메시지를 보내왔다.
오늘 저녁은 간편하게 먹기로 하였다.
점심을 조금 많이 먹어 그런지 저녁 생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알찌개를 생각하고 냉장고에서 꺼내 뚜껑을 열어 봤더니 상해서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음식 버리는 것을 싫어하는 내가 정성스럽게 만든 것이 못 먹게 되었을 때 속상하기에
한 번 먹을 양을 만들려 노력하지만 그게 쉽지 않아 대체로 남기게 되고
매일 다른 것을 먹으려 이것저것 만들다 보면 간간히 이런 일이 생기기도 한다.
아깝긴 하지만 할 수 없는 일, 해서 간단하게 먹자는 생각에 오믈렛을 만들고 빵을 구웠다.
식사에 이어 Blueberry로 후식을 즐기며 저녁을 쉬었다.
집에 도착해 아해와 통화 할 때 오늘이 추석 보름달인데 소원을 빌라기에
하루빨리 그곳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빌어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해가 저물고 날이 어두워 수시로 발코니 문을 열고 하늘을 봐도 달이 보이질 않았다.
분명 어제도 달을 보았는데 날이 흐려 구름에 가린 건가?
할 수 없이 밖에 나가 마음에 둥근 달을 그리고 소원을 새겼다.
“하루 빨리 아해와 내가 원하는 곳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도록
일하는 사람들이 더욱 속도를 내라며 엉덩이를 차 주세요”
그러다 안 되겠다 싶어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이리 저리 둘러봐도 달이 보이지 않는 듯하더니
건너편 호텔 뒤편에 둥근달이 손에 잡힐 듯 크게 떠 있었다.
이번엔 마음에 그려진 달이 아니라 직접 보이는 달을 향해 다시 소원을 빌었다.
“제발 아해 마음 그만 졸이게 하고 원하는 곳에 서둘러 발령 나도록 도와주세요”
오늘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