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여행 862일째, 2017년 10월 29일(일) 애틀랜타/대체로 흐림, 저녁/햇살
천일여행 862일째, 2017년 10월 29일(일) 애틀랜타/대체로 흐림, 저녁/햇살
어제 밤 아해는 잠을 거의 못 잤다고 한다.
발령이 임박해 오니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드는 모양이다.
하기야 예전에 한국에 살며 회사를 다닐 때 인사 철이 다가오면
몇 달 전부터 궁금해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물론 조그만 일에도 신경이 쓰였던 것에 비하면
지금의 아해는 그 때의 나 보다 몇 배로 많은 복잡함이 있을 게 틀림이 없으려니
자다 깨면 다시 잠들기 쉽지 않은 게 당연할 게다.
그럼에도 내가 어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안쓰럽기만 하다.
한 가지 옆에 있으면서 속에 있는 말을 들어 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해야 하나?
암튼 수일 내 정리가 된다니 빨리 뚜껑이 열렸으면 좋겠다.
오늘은 아침 기온이 40도 아래로 내려갔고 하루 종일 40도 중반을 넘지 않은데다
강하고 차가운 바람에 세찬 돌풍(Gust)까지 수시로 불어 추위를 더하였다.
집을 나설 때 두터운 내의에 Warm Neck, 바람막이는 물론 기모바지에 털모자까지
한 겨울에도 자주 가끔 하는 복장을 하고 아해에게 사진을 보냈더니
‘와 한 겨울?’하는 답신이 왔을 정도로 중무장을 했다.
연습장으로 올라가며 얼굴의 노출부분을 스치고 지나가는 매서운 바람에
‘오늘 괜히 나왔나, 그냥 돌아갈까?’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연습스윙을 하는데 손이 터지는 것 같은 바람에 수시로 바지주머니에 넣고 녹여야 했다.
Tee sheet에는 Boyle부부와 Van Dau가 있었지만 시간이 되어도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Mr. Song"하는 Jim이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출발하라는 손짓을 한다.
다른 때 같으면 가트를 타고 와서 출발하라는 말을 했을 텐데 추우니까
Starter House 문 앞에서 손짓만 하곤 얼른 들어간다.
Pines 1번 홀 페어웨이 중간에서 두 번째 샷을 하고 그린 쪽으로 걸어가는 데
Cart Path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Van이 부르는 소리였다.
퍼팅을 마치고 올라와 “안 오는 줄 알았다.”고 하니
미리 도착해 Grill에서 커피를 마시다 나와서 Jim에게 물으니 나갔다기에 쫓아왔단다.
집을 나서려는 데 자기 Wife가 오늘 같은 날 골프하는 건 Crazy라며
“아무도 안 나온다.”라며 가지 말라는 말에
“Kenny는 틀림없이 나올 거”라고 말하곤 집을 나섰단다.
출발 할 때까지도 추위를 느꼈지만 몇 홀 걷다보니 몸이 더워지는 게 느껴졌다.
어제 저녁 정어리를 너무 많이 먹어 그런지 아침에 속이 느끼하고 불편했는데
씩씩 거리며 운동을 하니 쑥 내려가는 게 느끼함은 이내 없어졌다.
골프하는 사람이 우리 말고는 보이지 않으니 한산 한 것을 지나 적막함까지 느끼며
9번 홀을 마쳤을 때 Van은 집으로 들어간다며 손을 내민다.
그 때서야 얼굴을 가까이 보니 추위에 입술이 파리해졌고 악수하며 잡은 손은 어름장 같았다.
나는 Push Cart에 벙어리장갑을 걸어 놓곤 밀며 걸을 땐 끼고 한 데다
걸어서 잘 몰랐는데 카트를 타는 그는 한기가 심해 많이 떨었나보다.
‘에궁, 내가 괜찮아 Van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를 보내고 Stables로 이동하기 위해 언덕을 올라가는 데 등에서 땀이 옷을 적시는 느낌에
코끝을 스치는 바람이 춥다기보다는 상쾌하게까지 느껴졌다.
연습장을 지나치는 데 추위에 단단히 준비를 한 두세 그룹이 연습을 마치고 Pines로 이동한다.
Stables를 걷는 동안 앞·뒤로 한 사람도 만나지 않아 코스 전체를 전세 낸 것 같았고
새로 나서 막 자리를 잡아가는 어린 잔디를 밟을 때 폭신함을 느끼며
골프를 하기보다는 내 자신과 대화를 주고받는 여유로움을 즐겼다.
갑자기 불어오는 회오리 돌풍에 원을 그리며 하늘로 오르는 나뭇잎을 보고
‘나도 저 바람에 날려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고
어제 내린 많은 비가 흔적을 남긴 도랑을 보며 깨끗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거센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에 말을 걸어 보았고
바람에 아메바처럼 움직이는 구름에게 ‘거기선 뭐가 보이니?’하며 묻기도 하였다.
추운 날씨와 세찬 바람에도 볼을 한 개도 잊어버리지 않고 18홀을 마쳤을 땐
등줄기엔 땀에 제법 많이 흘렸고 기분 좋은 고단함이 밀려왔다.
뜨겁다 할 정도의 물에 샤워를 하는데 몸이 땀이 났음에도 차가움에
오그라들었던 몸이 서서히 풀리며 느끼는 쾌감에 몸과 마음이 진저리쳐졌다.
느끼하던 속은 괜찮아졌지만 약간 쓰라림이 있어 점심은 초간단 시리얼로 참았다.
일요일 오후면 하는 일, 세탁기 돌려 널고 의장에 앉아 깜빡 졸았다 깨고는
아해와 영상통화를 하였는데 어제 잠을 못 자 그런지 얼굴이 상했다.
안쓰럽지만 “걱정하지 말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했다.
통화를 마치고 아해는 침대로 향했고 나는 의자에 앉아 소일을 하며 오후를 쉬었다.
저녁은 누룽지에 동태찌개, 매실짱아지와 조개젓 속을 편하게 하기 위한 담백한 식단이었다.
하루 종일 바람 불고 구름에 가린 해가 보이질 않더니
저녁 무렵 잠시 햇살을 비추더니 이내 노을로 변신하곤 사라졌다.
꼭 헛것을 본 것처럼 말이다.
짙은 어둠이 든 이후에도 책과 음악을 벗 삼아 보내며 하루를 마무리 한다.
오늘도 잘 보냈다.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