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 여행

천일여행 1213일째, 2018년 10월 15일(월) 강화/맑음

송삿갓 2018. 10. 17. 08:23

천일여행 1213일째, 20181015() 강화/맑음

 

한국도착 5일차

어제 잠자리에 든 시각이 9시를 넘겨 그런지 오늘 몸을 일으킨 시각도 조금 늦어 4,

이전에 깨긴 했지만 누워서 빈둥거리다 어머님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조금 지나 어머님표의 콩물에 인삼을 먹고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저녁을 맞이한 아해와 통화를 하면서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곤 누워 책을 보는데

잘 들어오지 않는 것은 졸립긴 한데 잠은 오지 않는 몽롱한 상태라 그랬을 것이다.

좀 더 자서 고단을 풀고 싶다를 외치며 잠을 청해보지만 잠을 이룰 수 없다.

결국 어머님이 뭔가를 하시는 소리에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으로 합리화를 시키곤

일어나 분주한 어머님과는 다르게 빈둥빈둥.

 

어머님과 이른 아침을 먹고 커피에 빵으로 후식까지 마치고 잠시 쉬다 샤워 들어간 사이

둘째가 도착하여 서둘러 외출 준비를 마치곤 집을 나섰다.

사무실까지 이동하는 1시간여를 어머님을 잘 보살펴 주는 동생에게 고마움의 이야기 등으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 사이 이번 방문에서는 동생과 적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제법 많이 가졌다는 생각을 하였다.

전에는 몰랐는데 동생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리고 나 대신 어머님을 보살피면서

많이 성숙해 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어쩌면 나에겐 어린 시절의 기억만 존재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밀린 일이 많아 바쁘다며 급히 일에 매달리는 동생을 보며 영등포역으로 출발했다.

오늘은 김무현 사장을 만나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었다.

 

영등포의 타임스퀘어에 있는 교보문고에서 김 사장과 만났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찾고 있었던 시오노 나나미의 <그리스인 이야기 3>

몇 가지 도서를 구입하였다.

한국에 오면 꼭 하는 일이 김무현 사장을 만나는 것 그리고 몇 권의 책을 구입하는 거다.

아해는 더 이상 책을 사지 말고 집에 있는 것 읽으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한국에서 책을 산다는 것은 내 즐거움 중의 하나인데 신간을 구입한다는 것 이외에

내가 원하는 책을 얼마든지 살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되었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이다.

어린 시절엔 책을 많이 읽지 않았지만 갖고 싶어도 경제적 여유가 되질 못해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경제적 여유가 생길 때마다 책을 구입하는 것은

희열을 느끼며 사치를 부리는 것 같은 즐거움 중의 하나인데

미국 살면서는 정가의 두세 배를 주고 사는 것은 망설여지는 경우가 많기에

한국을 방문하면 바빠 서점에 갈 시간이 없으면 공항에서라도 한두 권이라도 꼭 사는

사치를 누리는 나만의 행복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 나를 잘 아는 김 사장은 약속장소를 서점으로 잡은 것 자체도 고마음 중의 하나다.

내 가족이나 친척 말고는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김무현 사장이다.

90년대 초반 누군가의 소개로 내 부서의 직원을 채용하여 분신처럼 나와 함께 하였으니

30여 년이 다 되는 그는 나의 일하는 스타일, 성격은 물론 가족사까지 대부분을 안다.

내가 가장 어려운 시절인 몇 가지의 송사가 진행되는 동안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에 등을 돌리거나 모르는 체 하였지만 그는 내 곁을 지켜줬고 회사 안에서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고 거의 자발적으로 법정의 증인으로 나를 변호한 사람이다.

이후에도 내가 한국에서 필요한 것들을 나를 대신해서 시간과 노고를 아끼지 않기에

나의 후배이긴 하지만 동지이자 친구로 생각하고 한국 방문 시 꼭 만난다.

다른 이들에게 내가 가진 것 다 달래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소개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책 몇 권을 골라 읽고 있는데 그가 나타나 악수를 청하기에 책값을 지불하곤

면을 잘 한다는 식당으로 옮겨 메밀국수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곤 커피숍에 앉아 적어도 3시간 이상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직장생활 이후에 어떤 회사에 투자를 하고 사장으로 들어가 앉았는데 사업이 신통치 않아

큰 활개를 펴지 못하고 결국은 투자한 돈을 회수 할 때까지

이자 형식으로 조금씩 받기로 하고 거의 나가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회사 형편이 녹녹치 않아 원금회수는 쉽지 않을 것 같고

두 아들 결혼할 때까지, 그리고 교직에 있는 아내의 정년까지 그렇게 살다

고향인 거제로 내려 갈 참이라는 말에 마음의 안쓰러움이 가득하였지만 도울 방법이 없다.

누구보다 성실한 친구인데 말년에 잘 풀리지 않는 것을 보면 행복총량의 법칙을 믿는 나로선

노후에 어떤 행복이 오려고 그러는지 자못 궁금하다.

430분을 넘기고서야 저녁을 해 놓고 기다릴 어머님이 걱정되어 자릴 털고 일어나

지하철 5호선 영등포시장역까지 10여분 걷고도 아쉬워 내가 타는 곳까지 따라와 헤어졌다.

한참 연애하는 사이처럼 헤어짐이 아쉬워 지하철을 타고서도 몇 번의 손을 흔들었다.

 

5호선 송정역에 내려 1번 출구로 나가 강화로 향하는 3000번 버스를 20여분 가까이 기다려

탔더니 좌석이 없어 서서 한 참을 가야했다.

갈 길이 급한 버스는 퇴근 시간과 맞물려 급정거와 급출발을 반복하며 시내를 빠져 나가

1시간여 만에 강화대교를 건넌 첫 정거장 현대아파트라는 곳에 내렸다.

한 번도 걸어 어머님 집으로 간 일이 없기에 Google Map에 의지하여 가는데

경로를 찾을 수 없다는 메시지만 되풀이 나와 감을 잡고 앞으로 향하지만 모르는

길만 반복되고 엉뚱한 곳으로 향해 불빛이 없는 벌판에 덩그러니 멈추기도 하였다.

등줄기와 모자를 쓴 머리에 땀줄기가 베인 것이 얼마만이지 하는 생각은 잠시

당황하며 길을 찾아 헤매다 결국 동생에게 보이스 톡을 연결하여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길을 잃었다 찾으면 늘 그렇듯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목적지를 두고 빙빙 돈 턱이 되었다.

동생과 통화 후 10여분도 채 지나지 않아 집에 도착하니 거의 50여분을 헤맨 꼴이었고

어머님은 무슨 일이 있을까 걱정과 조바심을 하며 기다렸노라며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죄송한 마음에 옷도 제대로 벗지 않은 채 간단하게 손만 씻고 어기적거리며 저녁을 먹었다.

많이 시장했나 보다. 천천히 먹어라.‘하며 애처롭게 바라보시는 어머님께 씩씩함을 보이고자

더 열심히 빠르게 먹어야 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서야 샤워를 하고 잠시 어머님과 TV를 보며 시간을 보내다 잠자리에 들었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는 오랜 친구 강문수, 나의 분신 같은 믿음의 동지 김무현 모두에

책까지 넉넉하게 구입한 계기가 되었다.

내일은 어머님과 둘이 오붓하고 보내는 날로 정했으니 여유롭게 보내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 한다.

오늘도 참 열심히 잘 보냈다.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