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여행 100일째, 2015년 9월 28일(월), 애틀랜타 비/흐림
천일여행 100일째, 2015년 9월 28일(월), 애틀랜타 비/흐림
오늘이 천일여행 100일째 되는 날이네
대학 4학년 여름방학 때(어쪄면 3학년 때) ROTC 병영훈련을 들어가거든
4주 동안 훈련을 하는 건데 힘들어 하루하루 달력에 ‘X’를 표시했다
그런데 훈육관이 그걸 본 거야
“세상에서 가잘 멋지고 늠름한 대한민국의 육군 장교가 될 후보생이
4주 밖에 안 되는 훈련 때문에 달력에 하루하루 표시를 하냐?
너희들은 장교가 될 자격이 없어 운동장에 빤스 차림으로 집합!!!“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빤빠라”라는 기합으로
정말 트렁크 팬티만 입고 운동장을 구르고 기고 뛰고
동료들과 어깨동무하고 오리걸음을 하고
어깨동무 한 상태 그대로 뒤로 누워서 김밥 말 듯 끝에서부터 말아오면
제일 안에 들어간 사람은 터지는지 이겨지는지 모르면서 숨 쉬기 힘들고
그러다 보면 땀은 범벅이 되고 여기저기 모래가 살에 박혀
쓰리고 상처 나며 피 흘리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달력에 낙서 하는 거 절대 없고 날자 세는 거 잘 안 했지
그런데 천일여행을 하면서 달력에 표시는 하지 않지만
하루하루 손 꼽아가며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다 100일이 되어
기뿐 나머지 장교후보생 시절의 옛 추억이 절로 떠 오르네
길벗이 그랬다
천일여행을 한다고 하니 많은 걱정을 하면서도
잘 이겨 낼 거라는 격려와 함께 100일을 열 번 만 보내면 천일이라는 설명도 곁들였지
오늘이 그 열 번 중에 하나를 마친 거고 홀로 여행을 시작한 지 30일이 되는 날이다
나 혼자라도 축하파티를 해야하는 건가?
그건 너무 어린아이 같은 생각이겠지?
아직은 갈 길이 멀고 더 힘들 수도 있겠지만
내가 담배를 끊을 때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했던 것이
25년이 된 것 같이 천일여행도 잘 할 수 있을 거야
천일여행 이후로 특이나 홀로여행 이후로 삶이 많이 단순해졌다
집, 회사, 골프장, 가끔 마트, 그리고 또 가끔 모임
그런데 이렇게 사는 게 좋다, 정말 좋아
사람들 적게 만나고 하니까 외로울 것 같지만
어차피 외로운 건 외로운 거고
삶이 복잡하지 않고 깔끔해
다른 사람들과 아귀거리 없고 뒷담화도 없고
나 만 정리정돈을 하면 되니까 불편함을 주거나 받는 일 없고
정말 좋아
오늘은 오후에 Home Depot에 갈 거야
밤에 잠자는 데 도움이 되면서 집안에 향기를 풍길
라벤더를 찾아봐야 하겠어
내가 싫어하는 냄새가 흔히들 이야기 하는 ‘홀애비’ 냄새
그게 결국은 남자들 땀 냄새인데 세탁을 잘 하고 관리를 잘 해도
가끔 그 냄새가 신경 쓰이게 한다
특히 Closet에서 나는 것 같아 촛불을 켜고 라벤더 향수를 뿌리기도 하는데
없어졌다가 다시 나곤 하는 것 같다
하나하나 냄새를 맡아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다시 빨곤 하는데도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또 나는 것 같아
Mothball을 넣어도 되지만 옷 입을 때 냄새가 나면 머리 아프고
다른 사람들 한데 냄새풍기면 기분 나쁠 수도 있잖아
그래서 생각한 것이 라벤더를 집 안에 키우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야
그리곤 Costco에 가서 도시락에 넣어야 하는 닭과
말릴 양송이버섯 몇 팩을 사려고
어째 며칠 조용하다 했더니
오늘 세일즈맨 한 명의 컴퓨터가 퍼졌다
컴퓨터에 발목 잡힌 나는
오후 계획의 거의 다 일그러져 버렸고 컴퓨터와 씨름한다
내용을 알고 보면 별 거 아닐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이것저것 다운로드 받고
이메일 오는 것 중 이상한 것은 안 열어 봐야하는데
퍽퍽 열어 컴퓨터 복잡하게 만들어 놓고는 늘 하는 말
“난 아무것도 안 했다”
그런 사람들 기준에 의하면 컴퓨터는 손대지 않아도
지 멋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받을 것 안 받을 거 가리지 않고 받고
혼자 알아서 모든 것을 해야 하는 데
암튼 그렇게 컴퓨터와 씨름하는데
어째 나이가 들수록 자꾸 귀찮아지고 조금만 손대면 피곤해 지는지
천일여행의 100일째를 그렇게 보냈다
그럼에도 앞으로 남은 900일을 기대하며 내일도 힘차게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