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 여행

천일여행 119일째, 2015년 10월 17(토) 애틀랜타 맑음

송삿갓 2015. 10. 18. 10:28

천일여행 119일째, 20151017() 애틀랜타 맑음

 

밤이 무한정 길게 느껴진다

불을 끄고 눈을 감아 보기도 하고

불을 켜고 눈을 감아 보기도 하고

음악을 틀어 놔 보기도 하고

사진을 띄워 놓고 보기도 하고

울어보기도 하고

웃어 보기도 하고

일어나 서성거려보기도 하고

화장실 변기에 앉아 가만히 있어보기도 하고

그런데 뭘 하고 있는지 금방 잊어버린다

그렇게 밤을 보내다 두 시간쯤 잤나?

일어나지만 나가야 할 이유와 말아야 할 이유사이에서

초단위로 반복하는 갈등을 한다

그럼에도 늘 먹는 아침을 대하는데 몸이 강하게 거부반응을 한다

하지만 나가려면 억지로라도 먹어야 한다는 생각

정말 나갈지 정하지도 못했으면서 말이다

마시다 말고 화장실로 뛰어간다

어제 밤 그렇게 토했음에도 또 넘어오려 한다

변기에 머리를 처박고 있다 앉아 있는데 주룩주룩

체중계에 올라본다

순간, 믿기지 않아 다시 올라 보지만 최근 들어 가장 가벼운 체중이다

 

다시 배속이 요동을 친다

화장실로 직행, 일을 마치고 거울을 보니

헬쓱한 얼굴에 코가 간질거리더니 오른쪽에서 빨간 빛이 보인다

여간해선 코피가 나지 않는데 거봐라하는 식으로 주르륵 흐른다

결국은 나가야 할 이유가 가지 말아야 할 이유를 누르고 집을 나선다

망설이다 나서는 통에 조금 늦었음을 느끼고 갈 길을 재촉한다

 

하늘이 맑고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좋은 날 골프를 한다는 것 때문인지 뭔가를 많이 주고받으며

모두가 밝은 모습이다

 

하지만 나는 철저히 소외된 것 같다

그들은 뭔가 끊임없이 떠들고 있는데 윙윙 거리는 잡음으로 들리고

움직이는 모든 것이 내가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나와 전혀 관계없는 다른 세상의 사람을 보듯 한다

내가 그들을 관찰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다른 세상에서 온 나를

동물원 같은 철장에 가둬놓고 웃고 떠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카메라 조리개 같은 것이 내 몸을, 목을 조여 오는 것 같으면서

그들을 따라 움직이고는 있지만 그들은 내가 보이지 않는지

자기들끼리만 계속 뭔가를 주고받는다

 

결국은 중간에 그들을 따라가는 것을 멈추고 주저앉아 버렸다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나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들 끼리 떠나 버리고 만다

갈증이 나고 다리는 후들거리고 마음은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클럽하우스의 소파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지만

나무로 된 천장이 거기에 왜 있는지 조차 가늠이 되지 않고

수많은 날파리들이 윙윙 소리는 내는 것 같은 환청이 들린다

 

클럽하우스의 소파에 몸을 뉘어 쉬어본다

잠을 잔건지 아님 꿈속을 돌아다닌 건지 정신이 차려져

집으로 향한다

저녁 모임이 있어 다시 올라와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혼자 클럽하우스에 있으면 자꾸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아

불편함을 감수하고 집으로 향한다

 

점심으로 말간 누룽지를 끓여 먹고서야 나름 맑은 정신을 찾는다

 

천일여행을 시작한 이후에 오늘 처음으로 우울함을 느낀 날이다

그럴 겨를도 없었다는 게 맞는 것 같다

사무친 그리움에 눈물이 나고 아프긴 했어도 우울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오전 내내 우울했다

천일여행이래 처음으로 말이다

이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아니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다

하루 참 길었다. 오늘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