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여행 212일째, 2016년 1월 18일(월) 애틀랜타/맑음, 매우 추움
천일여행 212일째, 2016년 1월 18일(월) 애틀랜타/맑음, 매우 추움
오늘은 마르틴루터 킹(주니어)의 생일이라 국경일이라 은행이나 관공서, 일부 회사는 쉬고
일반회사들의 대부분은 일을 하는데 아마도 흑인들이 많은 회사는 주로 휴일일거다.
거기에 춥다는 날씨 때문인지 도로는 한가하고 조용하다.
아침 출근길에 두툼한 옷에 목도리와 모자에 장갑까지 중무장 하고 출근해서 그런지
뭐 그리 많이 춥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출근해서 2015년 자료 정리한다고 숫자를 많이 봤더니 눈이 어른어른 하네.
예전에 몇 년 동안 한국의 조선일보에서 운영하던 ‘골프조선’이라는
인터넷 골프신문에 객원기자를 했었던 적이 있었거든
미국에서 하는 PGA나 LPGA를 지면 중계하기도 했고
새로운 소식이나 제품 등 골프에 관련된 정보를 쓰기도 하고 칼럼도 많이 쓰기도 했었지.
객원기자가 10명 쯤 되었나 했는데 대부분이 한국 내에 있었고
미국에는 나, 뉴욕, 시애틀, 샌디애고 등 네 명이었던 것 같다.
객원기자들 끼리 자주 연락을 주고받기도 하고 언젠가 모여 골프도 하자 했었는데
어느 순간에 골프조선이라는 회사 자체가 문을 닫았던 것 같다.
이후에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는데 나는 한국과는 거의 단절이 되었고
씨애틀에 있는 분은 나랑 동갑내기라 ‘갑장’이라 하며 지금도 아주 가끔 연락을 하지
그리곤 뉴욕에 계신 분은 워낙 골프를 좋아하는 분인데다
골프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이라 애틀랜타도 오면 한 번 만나자 했는데 아직까진 불발이야.
1년에 한 번 정도 정말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전화를 주시는 데
오늘 한국에 가서 객원 기자하시던 분들을 만났다며 새해인사차 전화가 왔다.
기억으론 연세가 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전히 팔팔하게
골프이야기를 끝없이 하는데 갑자기 ‘나도 이렇게 골프수다를 떠나?’하는 생각이 드는거야.
예전 같지는 않지만 아마도 거의 분명히 그럴 거야, 훗
회사의 공장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전부 히스패닉이다.
두 팀으로 나뉘어져 있어 각각의 팀에 대장 한 명씩이 있는데
한 친구는 부대장을 하다가 대장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바람에 준비도 없이 승진하였다.
처음에는 실수도 많고 말썽도 많이 부리더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어느 시점부터는 일을 잘 하더니 시간이 흐른 뒤 가끔이기는 하지만
나와 파트너를 속이면서 흔히 하는 말로 가지고 놀려고 시도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대부분의 경우는 사전 혹은 사후에 들통이 나서 야단을 맞기도 하고
그것은 내부 문제이기에 그냥 넘어 갈 수 있는 문제지만 손님과의 문제는
회사의 신뢰성이나 사업진로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주의를 주곤 한다.
언젠가 한 번은 내가 아는 분의 집 테이블을 옮기는 일에 투입을 했는데
큰 일이 아니기에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가서 해 주고 현금을 받아쓰라 했다.
손님은 한국인으로 내 선배이기도 한데 거기에 가서 조금 불편하게 한 일이 있었다.
자기가 무슨 높은 사람처럼 행동하기도 하고 조금만 문제가 있어도 시비조로 대하는
일하는 사람들이 심통 부리는 듯한다며 불쾌하게 이야기를 한 일도 있었다.
최근에 회사일이 많아 그 친구 수입이 적지 않았다.
(공장친구들은 월급제가 아니라 매주 일한 만큼 지불하는 순수한 성과급)
전부터 트럭 한 대 사고 싶다 하더니 드디어 중고트럭 한 대를 구입했다는 것을 오늘 알았다.
1만 3천 달러라는 적지 않은 돈을 주고 산 것 같은데 지난 토요일에
9천 달러를 현금으로 주고 나머지 4천 달러는 오늘 주기로 계약을 하곤
트럭은 일단 가지고 가고 타이틀은 오늘 잔금과 교환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오늘 자신의 개인 수표를 주니 현금을 주거나 회사 수표를 달라고 요구한다며
회사에서 잔금의 수표를 발행해 달라는 요구를 하였다.
그걸 꼭 굳이 오늘 해야 하는 것도 모르겠고 은행도 열지 않는 오늘
회사 수표를 가지고 간들 뭐가 차이가 있겠냐며 꼭 그렇게 하고 싶으면
Check cashing하는 곳에 가서 네 수표를 주고 현금으로 받아다 주면 될 것 아니냐는
다른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수표를 현금화 하러 간 곳이 하필이면 내 후배가 하는 상점으로 가서는
자신의 수표에 5천 달러를 써서 현금으로 달라고 하더란다.
그래서 개인 수표로는 너무 커서 안 된다고 하니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인데 왜 안 해주느냐는
고집을 부리다가 결국 그냥 발걸음을 돌아서게 되니 아주 상스러운 욕을 하며 가더라고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고는 ‘이 친구를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곰곰이 생각하는 데 답이 없다.
필요한 돈은 4천 불이라고 하더니 갑자기 5천 달러는 뭐며,
내 이름을 파는 것은 괜찮은데 안 해준다고 욕을 해 대는 것을 어찌해야 하는지?
내가 하는 말 중 'Employee is employee'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을 근거로 ‘불가원 불가근’이라는 원칙도 가지고 있는데
함께 일하는 사람은 영원히 직원일 수밖에 없는 일들이 많아서
직원들의 일에 깊이 관여하지 않거나 정을 주지 않으려 하는 것이
나의 경영철학처럼 되어버렸다.
물론 도움을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이 설 때는 과감하게 하지만 말이다.
점심은 아보카도, 키위, 당근, 말린바나나, 샐러리, 닭가슴살을 넣은 야채샐러드 도시락,
저녁은 현미밥에 된장찌개, 오물렛, 김치 하루를 마친다.
저녁을 먹고 8층 클럽에 운동하러 갔는데
갈수록 사람이 많아지고 것과 운동하면서 큰 소리로 전화를 한다거나
친구와 함께 와서 웃고 떠들면서 예의를 지키지 않는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요즘 ‘불안한 동거’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의 삶이 이어진다.
바로 두통과의 관계인데 지난 크리스마스 때 우여곡절 끝에
게르마늄 목걸이를 선물로 받고 계속 차고 있잖아.
20여일이 지난 지금까지 사막의 고원에서 한 번
타만라셋에서 알제리로 밤 비행기로 돌아온 날 한 번
애틀랜타로 돌아 와서 한 번 등 세 번은 두통이 심해서 분명 약은 먹었지
그런 경우는 머리를 내 몸에서 분리해 내지 않는 한 겪어야 하는 거니가 그렇다 치고
약을 거의 먹지 않고 있다는 거야, 물론 두통이 전혀 없었다는 건 아니고
어떤 날은 아침에 일어나면 두통이 있는데 스트레칭을 하고 나면 말끔해져
목걸이를 하기 이전에도 대체로 그런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몇 번에 한 번 정도는 약을 먹거나 해야 했는데 지금은 거의 그렇지가 않아
오늘만 해도 점심 먹고 머리가 띵해서 약을 먹을까 했지만
목걸이를 믿고 약을 먹지 않고 버티고 저녁 먹고 운동 했더니 괜찮아 졌다.
불안하기는 하지
아프기 시작하는데 약을 먹지 않고 버티다 더 심해져 고생하는 경우가 많았거든
‘지금 먹지 않았다 나중에 더 아파 고생하면 어떻게 하지?’하는 불안 말이야
의사도 두통이 오면 버티면서 고생하지 말고 빨리 약으로 다스리는 게
정신 건강이나 몸에도 좋다고 권고해서 따르긴 하지만 약을 먹는 게 찝찝하잖아
‘목걸이 때문이 아니라 사막탐험에서 살아와 그런가?‘ 라는 다른 생각도 했지만
점점 게르마늄 목걸이가 돕고 있는 거라고 믿음이 깊어진다.
집 안 여기 저기 뒤져보면 두통 때문에 장만 했던 목걸이나 팔찌가
엄청나게 많고 그 때마다 초기에는 효과를 본다며
‘이제 내가 두통을 극복하였다’라고 장담 했다가 좌절 한 게 수 없이 많아서
이번에도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일단 믿음을 가져 본다는 이야기야
목걸이 선물을 준 길벗에게 무한 감사,
“감사합니다. 구~벅~“
오늘도 하루가 저물어 가네
내일도 춥다는 데 야외운동은 안 되겠지?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