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 여행

천일여행 983일째, 2018년 2월 27일(화) 애틀랜타/맑음

송삿갓 2018. 2. 28. 11:02

천일여행 983일째, 2018227() 애틀랜타/맑음

 

아침 기온이 뚝 떨어져 50도 아래로 내려갔고 클럽지역은 40도 중반,

바람까지 강하게 불어 아침엔 다시 겨울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한기를 느꼈다.

겨울옷을 거의 다 빨라서 정리를 했기 때문에 조금 더 따스한 옷을 챙겨 입어야 했음에도

연습장에서 느끼는 몸은 차가움에 경직되어 조심스럽게 스윙을 했다.

이런 날 잘 못해 담처럼 결리기 시작하면 여러 날 고생하기 때문이었다.

연습을 마치고 Eric과 함께 Stables를 출발하여 몇 홀 지나지 않아 바람이 덜 부는 곳에서

맞이한 햇살은 따스하다 못해 그냥 바닥에 눕고 싶을 정도로 포근하였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차가운 공시를 뚫고 살갗을 데우는 해가 창 고맙게 느껴졌다.

출발 직전에 Eric은 오늘 9홀만 걷고 가야 한다며 미안함을 이야기 했었지만

속도가 빨라 14번 홀까지 마치고 클럽하우스에서 보내온 카트를 타고 떠났고

나머지 4홀을 혼자 걸었지만 걷는 속도가 떨어져 뒤를 따르던 정 선생이 종종 기다리곤 하였다.

충분한 물기와 햇살을 머금은 잔디가 촘촘히 건강해서 느낌이 꼭 스펀지 위를 걷는 것 같아

무릎에서 느끼는 보드라움, 혹은 탄력이 기분을 더욱 좋게 하여 천천히 걸었기 때문이었다.

운동을 마치고 샐러드를 Togo해 사무실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는 잠시 쉬는 시간도 즐겼다.

 

어제 대학 ROTC 동기 양인식을 생각했었는데 오늘도 이어야겠다.

동기 모임의 현 회장인 안경렬이 카톡에 이런 글을 남겼다.

<토요일 인식이와 몇몇 동기와 함께 피마골 빈대떡집에서 막걸리 마시며,

인식 동기로부터 느낀 감정은 많이 변했다는 것..

반공주의자, 극우.. 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는 것이 팩트입니다.>

내가 인식 동기를 마지막 본게 언제지?

군을 제대하고 알찬 중견기업인 신토리코에 입사한 사회초년시절 때 보고 안 봤나?

아마도 30여년은 보지 못했으니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가 없다.

지난 주 동기들과 찍은 사진을 보면 겉모습이 변했다는 생각은 많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연유로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친구가 같은 계통의 회사를 다니다

지금은 보험회사의 생활설계사가 되었는지,

그리고 불교의 광신자라고 느꼈던 그가 크리스천이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지난 2~3년 카톡을 통해 주장하고 글을 올리는 글을 보면 뭔가 변한 건 확실한 것 같다.

대학시절 그를 생각하면 일반적이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기와 의견이 다른 동기들과 덜 친화적이며 조금은 달랐었다.

가끔은 혼자 살겠다는 듯이 얌체처럼 빠져나가는 경우도 있었던 것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럼에도 같은 과, 같은 그룹에 대해선 애착과 집착도 강했는데 극단 편향적인 기억은 없다.

해서 그가 극우라고 표현한 안경렬의 글에 쉽게 찬성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어 카톡을 빠져 나갔었는데 그 때 명예위원장 출신 주홍이의 표현이

직업을 바꿨는데 실적이 뚜렷하게 좋지 않아 조급한 마음이 그렇게 표현되는 것 같다.’였다.

주홍이의 표현에 자꾸 마음에 걸렸고 해서인지 이번 카톡방 초청도 주홍이가 했는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같은 사단이 나서 그는 나갔고 남은 동기들은 극우니 하는 표현에

카톡방에 초청한 주홍이는 미안함에 어쩔 줄 물라해 하게 된 것이다.

카톡방에서 경조사 말고는 눈팅만 하는 내가 이렇게 마음이 쓰이는 것도 오지랖인가?

어쩌면 학창시절에 동기 중 간부를 했다는 책임감의 잔상이 이러는지도 모르고

뭐든지 순하게 잘 들어야 한다는 이순(耳順) 앞에 나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인지도 모른다.

대학 3학년, 그러니까 우리들 말로 ROTC 후보생 1년차 때 간부를 하면서

동기들이 뭔가를 잘못하면 그 책임을 떠안고 벌을 많이 받았기에

또한 내가 선배 입장이라면 어떻게 할까?’라고 수 없이 돼 뇌이던 습관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같은 방식으로 반복하며 나를 다졌던 것들로 인해

지금의 동기들이 그러는 모습에 마음이 쓰이는 것 같다.

잠깐 생각에 인식이가 삶이 얼마나 힘들고 고독하고 외로우면 그랬을까?’하는 생각 말이다.

어쩔 수 없는 일, 그리고 그 일 말고도 내 앞에 수시로 스쳐가는 여러 가지들을 생각하며

인생을 사색하고픈 마음이었다고 위로하며 안타까움을 달랜다.

 

Jonas는 여전히 감기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어 내가 점심을 마치자 사무실을 떠났고

뒤뜰의 공사는 오늘 콘크리트를 까는 것으로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Christian의 말로는 내일이면 펜스 작업을 마치는 것으로 끝낼 수 있다기에

내주 월요일 Slabs를 옮기는 것으로 협의하였다.

 

집에 들어와 지난 주말에 세탁기 돌려 말렸던 옷가지를 정리해서 Closet에 넣고

조금 이른 봄맞이로 Master bedroom의 겨울 이불을 걷어내고 얇은 이불로 바꾸면서

침대, 이불, 베개 등의 커버까지 몽땅 바꾸고 일부를 세탁기에 넣고 돌려 널었다.

그리고 목욕탕의 샤워커튼 두 가지도 세탁기에 돌려 널었더니 집안에 세재냄새 진동,

묵은 때 냄새가 사라지고 새롭게 느껴지는 분위기를 크게 바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녁을 먹고 쉬는 내내 다른 집에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하였다.

원래는 다음 주 아해에게 가기 직전에 하려던 것을 생간 난 김에 하나씩 정리하는 게

나중에 뭔가 빠뜨려 아쉬워하지 않는 지혜라는 자위를 하였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저물어 간다.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