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여행 1871일째 2020년 8월 3일(월) 애틀랜타/대체로 맑음, 오후에 소나기
녹차
내가 차를 좋아한 게 언제부터 어떤 계기였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달달한 믹스 커피도 두 개씩 넣어 마시던 때 미국 출장을 왔을 때 원두를 갈아
내려 마시는 커피를 먹어보곤 ‘뭐 이런 물이나 커피라 할 수 없는 밋밋한 것을 마시지?‘라고
했었던 기억은 있다.
단지 20대 때 인스탄트 커피를 마시면서도 젓비린내 같은 게 싫어 블랙으로 마시긴 했었다.
그러다 미국에 와서는 한국의 믹스 커피는 비싸고, 인스탄트 역시 한국의 것에 비하면
약하고 내리는 커피와 별 차이가 없어 전향하듯 묽은 커피를 마시곤 했었다.
그러다 아해를 만나고 수동식 에스프레소를 만들어 마시는 게 재미있고 맛도 좋아
간혹 마시다 지금은 아침엔 내리는 커피, 오후엔 네스프레소 한 잔 마시는 게 커피의
취향이 되었고 가끔은 원두를 많이 갈아 수동식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건 아주 가끔...
커피는 그렇게 기억이 나는 데 차는 별 기억이 없다.
단지 녹차의 향이 좋아 사무실에서 마시긴 했었는데 아마도 우려내는 시간과 찻잔,
그리고 멋스러움 때문에 언젠가부터 즐기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쓰고 어떤 날은 너무 약해 차를 배우고 싶은 생각에 책을 구입해 연구를 하고
정해진 절차와 시간대로 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게 분명하다.
책과 인터넷으로 다양한 차를 실험하듯 다양한 시간과 물의 온도로 마시다 내 나름의
최고의 적점을 찾은 게 물을 끓여 2분여 식히고 차를 넣고 3분 우려내면 되는 것으로...
그렇게 하면 떫지 않고 너무 약하지도 않은 실패할 확률이 낮은 걸로 찾아낸 방법이다.
요즈음은 단순한 루틴의 생활 때문에 차 마시는 것도 거의 루틴화 되었다.
아침에 내리는 커피를 조금 진하게 만들어 출근길에 마시고 오후에 들어와 점심을 먹을 때
Yellow Pau d' Arco tee bag으로 우려낸 차를 마시는 것은 전립선에 좋다며 아해가
추천해줬기 때문이고, 식사를 마치곤 네스프레소 한 잔을 마신다.
저녁을 먹고는 후식과 함께 카모마일을 마시는 것은 Clam해지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
그러다 보니 다른 차 마시는 횟수가 급격히 줄어 많은 종류의 차들이 아우성을 친다.
아니 그러기보단 몸에서 녹차나 다른 차들도 마셔보자고 애걸복걸 함에도 루틴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전립선과 Calm이라는 건강 우선의 생각에 그러는 데 두 가지 차가 정말
건강에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한 번 시작하면 바꾸기 싫어하는 성격상 그렇다.
그럼에도 오늘 들어 아침부터 녹차의 향이 그리웠다.
아니 녹차의 향이 아니라 아해가 준 고급 진 녹차의 그리움이라는 게 더 옳다.
아침 사무실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샤워를 하곤 제대로 녹차를 즐겼다.
물을 끓여 잠시 식히고 아해가 인사동에서 샀다는 청자 잔에 그물망을 넣고 중국
녹차를 나무로 된 스픈으로 덜어 담고는 물을 따르는 데 점점 높은 곳에서 떨어지도록...
이는 물에 산소포화도를 높여 차의 향을 깊게 만드는 과정으로 물이 적당한 온도로
내려가는 것도 한 몫을 한다.
3분짜리 모래시계로 시간을 맞추고 그물망을 들어내고 잔을 입 가까이로 가져가며
코로 먼저 향을 느끼고 따뜻한 차로 입술을 적시자 절로 반응하는 몸의 수축에 이은
이완, 내가 여유롭고 멋있다는 상상의 나래로 기분까지 차에 취해 조용히 음미하였다.
점심을 먹고 족욕을 하며 오후를 쉬는데 번쩍번쩍, 우르르 쾅쾅 하더니 하늘이 캄캄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운타운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굵은 소나기가 내렸는데
창을 때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한 참을 멍 때렸다.
오랜만에 배추되장국을 끓였다.
퇴근길에 H-Mart에 들려 배추와 무, 콩나물과 냉동생선 등 몇 가지를 샀는데
그중 배추를 손질해서 오후에 쉬는 동안 푹 삶아 찬물에 담가놓았었다.
소고기 한 덩어리로 육수를 만들어 Brown 버섯을 잔뜩 넣고 한 참을 끓였다.
배추와 된장, 고추장 등을 넣고 거의 2시간을 끓여 배추가 흐물흐물 해졌다.
임연수를 구워 무생채, 양상치쌈 등으로 천천히 음미하듯 저녁을 먹었다.
카모마일과 포도로 후식을 하며 출근준비를 하는 아해와 통화를 했고 편안하게 쉬다가
마음수련, [Daily Clam]의 ‘부러움’을 하곤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오늘을 마무리한다.
오늘하루도 이렇게 잘 보냈다.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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