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 여행

천일여행 680일째, 2017년 4월 30일(일 애틀랜타/오전/흐림/비, 오후 맑음

송삿갓 2017. 5. 1. 09:39

천일여행 680일째, 2017430() 애틀랜타/오전/흐림/, 오후 맑음

 

아침부터 잔뜩 흐렸지만 당장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았다.

일기예보에서도 비 소식은 없어 편안한 마음으로 연습을 마치고 운동을 시작했다.

내 시간에 Paul L Frederickson이 들어와 함께 걷기로 되어 있었지만

출발 전 다가 와서는 나 보다 5분 전에 출발해도 좋으냐기에 그러라 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걷기로 마음을 먹은 터라 세 번째 홀에서 뒤 따라오는

다음 Group의 두 사람을 Path Through 시키고 걷다보니

다섯 번째 홀 중간에 그 다음 GroupDaniel Boyle, Mary Boyle 부부가 따라 왔다.

여섯 번째 홀 그린에서 따라오는 Boyle 부부에게 자리를 내 주며 앞으로 보냈다.

이들은 주말이면 꼭 함께 플레이를 하는 데 내가 부러워하는 Couple이다.

남자는 아내를 보일 듯 말 듯 챙겨주고 여자는 그런 걸 보란 듯 즐기는 모습이 보인다.

때로는 여자가 남자를 챙겨주는데 내가 볼 때 그 또한 가끔 한 번씩 선심을 쓰는 듯 즐긴다.

두 사람의 모습에 허전함이 찾아들어 다음 홀부터 급격히 안정감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10번 홀부터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안개비라 하기엔 조금 굵고 가랑비라 하기엔 겸연쩍게 내리는 비였다.

느낄 듯 말듯 바람이 부는 한적한 공원에 사랑하는 연인이 조곤조곤 속삭이는 것 같은

참한 비였다.

 

어릴 적부터 이 정도의 빗속을 걷는 것을 꽤나 좋아했다.

선물이라곤 받을 수 없는 시절이라 하늘의 선물로 생각 했는지

아님 내성적인 마음에 느껴지는 촉촉함이 좋아 그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빗속을 자주 즐길 수는 없었다.

갈아입을 옷이 마땅치 않아 한 벌로 며칠을 입어야 하는 어린 시절

비를 맞아 구질구질하고 냄새가 난다며 어머님께 야단을 맞아서

어른이 되어서는 청승맞다는 구박이 싫어 그냥 보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오늘은 한 껏 즐겼다.

 

눈에도 잘 보이지 않듯 내리는 물기가 살갗에 닿으면 따끔거리듯 차가움을 느꼈고

시간이 지날수록 물기를 머금은 어깨가 촉촉이 젖었다.

가슴과 등줄기를 흐르는 땀이 어깨의 촉촉함과 어우러져 짜릿한 쾌감으로 발걸음을 가볍게 하며

사랑을 나누며 절정을 향해 치닫듯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조금 촉촉한 그립을 잡으면 아무리 휘둘러도 돌아가거나 빠지지 않을 것 같아

더욱 자신감 있게 스윙을 하고 볼이 떨어지는 자리에 튀겨지는 물을 보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런 날 운동을 마치고 누군가와 함께 따스한 우동 한 그릇 먹으면 참 좋을텐데...

비를 좋아하는 아해와 나중에 꼭 하겠다는 다짐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운동을 마칠 무렵 해살이 조금 비치더니 개운하게 샤워를 끝내고 나오니

햇살이 환하게 비치며 열기가 촉촉한 잔디를 내리 쬐니 김이 모락모락..

 

아해와 통화를 하며 집으로 돌아와 빵과 커피를 먹고 한 숨 자 보려는데

가슴이 저리며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몇 번 마음을 다잡으며 자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저린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 포기,

단추가 떨어져 나가 고장 난 아이언 커버의 플라스틱 단추를 달고

오늘 신어 젖었던 골프화를 닦고 왁스를 발라 말리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하고도 다시 잠을 청해 봤지만 역시나 안 되어 또 포기

결국 멀뚱히 앉아 아해와 통화하기를 기다렸다 얼굴을 보자 울컥하였다.

 

아해가 몸살기가 있다고 하며 힘들어한다.

낮에 걸으며 느꼈던 건데 아해와 가까워지기 전 자주 앓아서 고생을 해는데

요즘은 앓아눕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프면 안 된다는 엄명이 있어 건강관리에 더욱 힘쓰고 있기는 하지만

조금 아픈 경우는 있지만 그건 나이 들어 내 나이 때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고

생활 패턴이 단순해지고 저녁에 외출을 거의 안 해서 그런가?’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끙끙 앓아누워 하루 이상을 가지는 않는다.

대신 아해가 추위가 들면 가끔은 앓아누워 날 걱정하게 한다.

내일이 쉬는 날인데 말끔하게 일어나 운동 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오랜만에 닭볶음탕을 해 먹었다.

지난 번 많이 샀던 감자와 양파가 있었고 어제 Costco에서 두 마리의 닭을 샀기 때문에

재료는 충분하여 오늘 저녁 메뉴로 선택이 되었다.

많이 먹으라는 아해의 말대로 밥과 오이무침, 닭볶음탕만으로 저녁을 푸짐하게 먹었다.

빨래를 두 번이나 해서 널고 전에 했던 침대커버 등의 빨래를 정리하고 저녁을 쉬는데

어제 밤잠을 설친데다 낮에도 잠을 자지 못해 그런지 쉬지 않고 하품을 하였다.

 

오늘은 푹 자겠지?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