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김용택·도종환·양귀자·이순원 외 지음-
이 책은 1부 내 생애에 가장 특별한 수업과
2부 열여덟 살의 문학수업이라는 제목으로 문인들의 수업이야기다.
2부의 《나의 세 친구와 석사 교사에게》라는 제목의 고형렬이 쓴 글에
풀을 베다가 낫날에 상처를 입고 풀 냄새와 피 냄새를 맡은 소년의
마음을 우둔한 선생은 알 리가 없다. 문학은 그런 섬세한 상처와 기억 속에서
날카로운 풀잎의 색감과 유창보다 단당한 마음을 잊지 않는다.
고 하였다.
느낄 듯 말 듯 살갗을 스치는 바람에 계절의 변화를 알아채고 사색에 잠겼다가
깊이 감춰 둔 마음을 살짝 끄집어 내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아님 2미터도 안 되는 작은 몸에서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상념에 빠져
하늘을 날고 바다를 가르는 마음을 그림처럼 글로 그려내는 것이 문학인가?
맞춤법도 엉성하게 글로 써 놓고 며칠이 지난 뒤 다시 읽어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고 뭘 표현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끄적임만 겨우 할 정도로
문학이라는 것은 나와 다른 세상의 놀이 공간이다.
단지 책 읽기를 좋아해 잡식성의 동물처럼 마구 눈으로 삼키고 머리에 저장하다보니
이건 재미진다, 이건 어렵다, 또 이건 도움 된다, 하는 정도가 문학에 대한 내 지식이다.
그렇다고 굶주려가며 아님 이 책의 한 작가처럼 좋아하는 책 한권의 여백에
원 저자와는 다른 형태의 글을 깨알같이 적어 나갈 의지나 용기도 없다.
여러 문인들이 겪은 과정이나 삶에 대해 조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이 2부라면
1부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내 생애에 가장 특별한 수업》이 뭘까?를 생각하다
학창시절의 담임선생님들을 떠 올리며 이름을 기억해내려고 용을 써봤다.
얼굴이 떠오르면 이름도 기억하는 것이 예의 같아서 그랬던 것 같은데
초·중·고, 12년의 담임선생님 중 기억해낸 이름이 여섯이다.
절반이라도 기억하니 다행이라는 안도함과
기억나지 않은 절반의 선생님들에 대한 미안함이 교차하면서 부족한 나를 질책도 했다.
처음 3년은 아예 모르겠고 나머지 선생님들은 또렷이 얼굴 기억은 나면서 이름은 도통이다.
특별한 수업의 선생님들이 그 분들 중 한분 이었으면 좋으련만 그도 아니라 더욱 미안하다.
이리저리 생각해서 정리한 특별한 수업이 둘,
안타깝게 담임선생님들의 수업은 아니다.
첫째는 중학교 때 수학선생님이셨던 송교섭 선생님 수업이다.
우리 담임은 아닌데도 왜 그러셨는지 모르지만 수학시험 성적이 나빠 야단을 치시더니
“내가 선생을 하는 것은 너희들보다 똑똑해서가 아니라 너희 과정을 지났기 때문”이라며
살아보니 학창시절에 공부 열심히 하는 게 좋은 것이라며 당부하는 말씀이셨다.
나 역시 살아보니 그 나이 때 어떻게 사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는 것을
하나둘 깨우치면서 수학선생님의 말씀이 옳으셨다는 것을 재삼 느끼게 되었다.
둘째는 대학 1학년 때 이한빈 학장님의 채플이다.
매주 수요일 네 번째 시간이 채플이었는데 학점은 없고 그래서 시험도 없지만
출석을 채워서 반드시 이수해야하는 시간이었다.
대게는 외부의 명사들을 초청해 1,2학년 전부가 들어야 하는 시간인데
대학입학 초기의 어느 날 학장이 강사로 등장하셨다.
그리고 하셨던 일갈 "Boys, be ambitious!"
다른 사람의 명언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당시 피가 거꾸로 흐르게 했던 시간이었다.
초등학생시절,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에 가난하여 숨은 듯 살았고
중학교시절, 키가 작아 반에서 만년 2번, 그래서 유도나 웅변을 시도했지만 무 존재감
고등학교시절, 마음에 꼭 맞는 것 찾은 듯 매일 회로와 전기인두 등과 씨름하며
땅이 쩍쩍 갈라지는 듯한 메마른 감정으로 살아도 좋았었다.
단지 삼촌이 읽다 쌓아 놓은 책과 친해져 닥치는 대로 읽고 메모를 했다가
2학년 때 담탱이의 가방검사에 걸려 “학생이 이런 책도 읽느냐?”며 야단맞고는
미성년자 관람금지는 영화만 아니라 책도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게 나의 일탈이었다.
그러니까 야망이나 꿈은 zero
어찌어찌 우리 반에서 유일하게 4년제 대학에 들어가 진도고사라는 것에 허덕이고 있을 때
아님 ‘이렇게 힘들 바엔 군대먼저 다녀오는 게 좋지 않을까?‘하는 고민도 할 때
채플시간에 마음을 울리며 들었던 말이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였다.
내가 생각해 보지 않은 나와는 다른 세상의 말 ‘야망’
그렇다고 당장 흰 띠로 머리 매고 책상 앞에 ‘야망’이라고 써 붙이고 살진 않았지만
적어도 미래를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그 때부터였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론 수업이 아니고 중학교 1학년 때 급훈이다.
지금까지 오래오래 내 삶의 지표로 삼았던 ‘끝도 처음같이, 남도 나 같이’
중학교 때 전교회장 했던 친구가 한 문구 더 있다는 말을 몇 년 전 했었지만
나에겐 그만으로도 충분한 그래서 한 번 시작한 일은 끝을 보려는 내가 되게 하였다.
책의 서문 중 일부에
‘그 기억들은 힘들고 막막할 때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라 하였다.
12명의 담임선생님이 전부 기억나지 않아 미안하고
또 졸업하고 찾아 뵌 분이 거의 없는 것 또한 송구하지만
오랜만에 선생님들을 떠 올리며 아름다웠던 추억을 되새김한 예쁜 책이었다.
August 1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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