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지중해의 기억 -페르낭 브로텔-

송삿갓 2017. 10. 2. 22:16

지중해의 기억 -페르낭 브로텔-

 

지금까지 내가 읽은 역사를 기록한 책 중

가장 재미있게 그리고 겸손하게 쓴 서적이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역사책에서 저자들은 단호하고 확실하게, 때로는 불변의 지식처럼 기록하였지만

브로텔은 역사는 언제든 새로운 발견이나 연구로 다른 의견이나 확실성이 있음을

그래서 자신의 연구는 추론일 수도 있다는 것을 수시로 주지시켰다.

이 같은 것을 어떤 사람은 그렇게 불확실한 것을 왜 썼어?’라며 불만을 가질지 모르지만

그의 주장과 겸손은 사실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기의 전기(傳記) 조차도 잘 못 기억하고 있는 것도 많은데

수백 년 혹은 3·4천년이 지난 역사를 어찌 확실성을 가지고 주장 할 수 있겠는가?

누군가 글로 남긴 역사라 할지라도 과장하거나 축소 할 수도 있고

또 주관적인 판단이나 생각으로 기록할 수도 있는 것을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적지 않은 문제가 있는데도 역사가는 사실처럼 묘사하는데

브로텔은 그러지 못함을, 때로는 질문으로 다른 견해가 있을 수도 있음을 서술하였다.

 

그럼 브로텔이 지은 이 책은 왜 재미가 있는가?

저자는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재주를 가지고 있겠지만

중심 주제를 풀어나가는 확실한 기준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이 책과 비슷한 시기에 썼던 역사서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와 지중해 세계>의 서문에 이렇게 설명하였다고 한다.

역사를 풀어나가는 중심주제는 지리적 구조, 사회, 개인인데

지리적 시간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 시간이다.’

인간을 에워싸고 있는 주위 환경과의 관계 속에 있는 인간의 역사이기도 하다.

서서히 흘러가고 서서히 자신을 변화시키며 자주 완강히 되돌아가기를 고집하는가 하면

끊임없이 다시 시작하는 주기들로 이루어진 역사이다.

사회의 시간은 지리적 시간과는 별개로 존재하지만, 이 긴 시간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집단 및 집단 형성의 역사가 존재하는 것으로 지리적 시간은 회의 시간에 영향을 준다.

마지막으로 최상층에는 개인의 시간이 존재한다.’

개인들이 만들어내는 사건의 시간이기도 하다. 이 시간은 짧고 급격하며

작은 충격에도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 자체로서 모든 시간 가운데 가장 정열적이고 가장 인간적이지만

동시에 가장 위험한 시간이기도 하다.

 

브로텔의 지중해 연구는 이전까지와는 명백하게 다른 역사학을 보여주었다는 평이다.

전통적인 역사학이 위대한 개인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사건들의 역사를 연구했다면,

브로텔의 역사학은 다양한 역사적 세력들로 구성되는 전체사를 지향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흥미를 느낀 것은 최근 몇 년 동안

지중해의 일부를 방문하였기도 하지만 세계사의 문외한이었던,

특히 유럽사를 알고 싶었던 나에게 서양(西洋)이라고 표현하는 선진국의

흔적을 탐구하고 싶은 작은 열정이라고 해 두자.

 

미국 대륙을 제외한 선진국의 대부분은 유럽의 나라들을 말한다.

그럼 그들이 어떻게 잘 사는 나라가 되었고 어떤 극적인 계기가 되었나?

내 조국 대한민국은 오천 년의 장구한 역사를 가졌음에도 왜 일찍이 선진국이 되질 못했나?

 

이 책을 읽고 지중해의 역사 속에 수많은 나라가 없어지고 탄생하면서

지금의 유럽강국이 되었다는 사실을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이집트, 그리스, 로마에 이어 프랑스와 스페인 그리고 이어 진 영국과 독일 등

이 모든 나라가 선진국이 된 근원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만나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지중해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에서 강국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건 내 주장일 수도 있고 이 책과는 다르기에 지중해만 따져보다.

 

그리스는 동양인가? 아님 서양인가?

동양에서는 별 관심이 없지만 유럽 국가들은 당연히 서양이라고 못을 박는다.

?

로마가, 서양의 뿌리가 그리스이기 때문이다.

철학의 발원지가 그리스라고 하면서 현존하는 최 상위 학문이 철학으로 떠받든다.

그럼 그리스를 융성하게 만든 원천적인 곳은?

동지중해의 작은 섬 에게 해의 남쪽 크레타

이 책에서 가장 많이 할애한 부분, 가장 많은 지명을 서술한 곳이 크레타다.

크레타가 융성할 때 이 책은 유럽을 이렇게 표현했다.

야만인

크레타 문명이 바다를 건너 그리스로, 이탈리아에서 카탈루냐로

지금의 스페인인 에스파냐와 이집트는 그 문명을 지탱해주는 은과 밀 생산지, 노예의 국가로

너무 단정적인 내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받은 감은 그렇다는 이야기로

이 책을 읽은 다른 사람은 나와는 동떨어진 주장을 할 수도 있다.

(이건 순전히 이 책의 저자 브레텔과 비슷한 표현이다)

 

하지만 로마 이전에 지중해를 지배한 국가는 없었다는 게 옳다.

천 년의 역사 로마는 B·C 5백 년 동안에는 성장하는 국가였다고 한다면

이후 5백년은 누리고 저물어가는 국가였지만 이 책에선 끝부분에 살짝 서술하였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로마가 그리스를 멸망시키고 많은 그리스인들을 로마로 데려와

시민권을 주고 원로의 자리도 내 주면서 그리스 문명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많은 로마의 문명이나 유적이 그리스의 것이 많은 것은 물론

그를 기반으로 자체문명으로 발전시킨 것은 분명한 듯하다.

 

책의 저자 브로텔은 이런 주장도 하였다.

역사의 세 층위, 즉 물질문명·경제·자본주의는 역사적 시간을 만들어내는 세력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를 분석, 연구하는 것이 유럽이 선진국이 된 것을 더욱 쉽게 알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지난 20여 년간 시오노 나나미 지음의 <로마인 이야기>일 읽기로 작정하였다.

물론 지중해의 기억을 읽고 나서 그리스 이후에 로마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졌기에

작심한 일이다.

이렇게 유럽의 역사에, 아니 지중해의 역사에 조금 더 깊이 빠져 보기로 한 것이다.

 

October 2,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