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 여행

천일여행 1129일째, 2018년 7월 23일(월) 애틀랜타/오전/흐림, 오후/맑음

송삿갓 2018. 7. 24. 09:23

천일여행 1129일째, 2018723() 애틀랜타/오전/흐림, 오후/맑음

 

무장해제

어릴 적부터 많이 들었던 소리

너는 장남이다.”-주변 친척들, 할머니-

너는 종손이다.”-할머니-

형은 아버지를 대신한다.”-어머님

그런 소리를 듣고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특히 사극) 장남이나 종손은 어떠해야 된다는 것을

나도 모르게 흠모(?)하거나 따라하고 싶은 생각(?) 내지는 상당한 마음이 부담으로 자리하였다.

가능한 몸가짐이나 행동거지를 바르게 하여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 말조심도,

하지만 자라면서 배경 없고 돈이 없으니 이대론 따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게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내가 그것을(가문?) 만들어야 하는 데

능력은 따르지 않으니 남들보다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중압감이 나를 지배하였다.

불평불만을 토로하거나 힘든척해도 안 된다는 주문을 끊임없이 나에게 하며 살았다.

아파도 안 아픈 척, 기뻐도 안 기쁜 척 등의 속내를 들어 내지 않아야 함은 물론

약한 척 하면 절대 안 되고 나는 강하게 살아야 한다며 나를 옥죄었다.

어느 순간 남들이 나에게 강하고 똑똑하다는 말을 할 때 부터였던가?

나는 무조건 강한 사람이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무조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삶의 신념처럼 보이니 다른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렵고 급기야 까칠한 사람으로 포장되었다.

물론 삶 또한 그렇게 살면서 모자란 부분을 채워야하니 공부도 열심히 한 것도 사실이다.

나는 아버지처럼 절대 무르게 살지 않을 것이고 내 아들에게 이 어려움을 물려주지 않겠다.’

내 생활을 온통 지배하던 한 문장의 삶의 지표가 되어버렸다.

어릴 적부터 투정이나 어리광 등의 응석은 아예 부려보지도 못했고

남들보다 이르게 아버지가 되다보니 나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까지 더했다.

장남, 종손, 가장

고통과 어려움을 토해내면 안 되는 단어들처럼 지배하기에 좋은 것 표현도 가능한 숨겨야 했다.

몸이 고장 났지만 그건 물리적인 것이고 의사가 찾아내 주어 알게 되었지만

마음이 더욱 깊이 병들어가는 것은 알 수가 없었다.

너무 힘들어 절규하듯 몸부림을 쳐보았지만 대부분은 혼자 숲속에서 하였다.

물론 간혹은 가족들 앞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지만 이내 밀려드는 후회로 나에게 매질하였다.

그 매질 또한 나의 마음에 또 다른 상처를 만들면서 병으로 키웠는지도 모른다.

거기다 어쩔 수 없이 한국을 떠나게 만든 좌절은

내 몸과 마음 전체를 치료하기 힘든 환자가 되었다.

가족과 가정의 평화만 이루면 나는 어떻게든 관계없다?

내 자신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사치며 인생의 낭비다?

대한민국의 아니 지구 전체의 4~50대 남성들은 비슷비슷하다?

내가 취미를 갖는 것조차도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고 삶의 투쟁이다?

이 모든 것에 나는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답하였고 그것이 나를 병들게 만드는 것을 몰랐다.

내가 혼자가 된 것에 내 잘못은 1도 없다는 생각은 절대 안 한다.

내가 만들었고 그래서 내가 선택하기 전에 버려졌고 그것으로 인해 화를 낸 적도 없다.

내 삶과 잘못에 대한 반성, 그리고 후회?

전혀 안하고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빨리 수긍하고 받아들였다.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었고 후회한들 바뀔 가망성이 없고 돌이킬 수도 없었기 때문,

그리고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는 게 더욱 적절했다.

 

아해를 개인적으로 처음 만난 날,

점심 한 끼 하자고 만났는데 5시간을 쏟아냈다.

무얼 어떻게 털어냈는지 지금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러다 아해에게 내 몸과 마음의 미래를 기대고 싶어 했을 무렵 나는 깨달았다.

겉으로 보이는 몸 말고 마음이 깊이 병들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기대질 못하였다.

내 병이 너무 커서 미안해서 짐이 되기 싫어서·······

 

나는 아해로 인해 무장해제 되었다.

근엄할 필요가 없고 강한 척 할 필요가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표현하고

응석부리고 싶으면 그냥 응석부리고 울고 싶으면 그냥 울고

속과 겉이 같게 행동하고 말하도록 무장해제 되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표정이 밝아지고 생각이 더욱 날아다닌다.

때론 그게 아해를 힘들게 하는 것도 알지만 그렇게 한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옆 사람도 더욱 사랑한다는 것을 깨우쳤기 때문이다.

나에게 물었다.

너는 아해를 왜 좋아하니?’

나에게 대답했다.

그냥 좋아, 모든 게 다 좋아. 기댈 수 있어서, 그리고 언제든 응석도 부릴 수 있어서.’

너무 이기적이라고?

아니 그렇게 나를 사랑해야 내 사람을 마음껏 줄 수 있으니까?

오늘 마음껏 사랑할 수 있으니까.

언젠가 이런 대화를 했다.

내가 잘 해 줄게.”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잘 해줄 건데?”

대답을 못했었다.

이젠 대답할 수 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널 사랑할게. 그걸 매일매일 느끼게 할 거야.”

무장해제가 되면서 내 마음의 병이 치료되고 있다.

아직도 남은 상처가 있어 몸으로 표현되어 어려운 순간도 있지만

그래서 가끔, 아주 조금 처지는 순간도 있지만 마음의 평온은 굿!

오늘도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게 만들고 마음껏 즐기며 살 거다.

하루하루를 이렇게 사는 나에게 최근 읽은 책에서 보았던 이스라엘의 현자 랍비 힐렐의 말

내가 나를 위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위해 줄 것인가?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할 날이 있겠는가?‘

 

오늘은 외출을 하지 않고 종일 사무실에서 일을 했다.

딱히 나갈 일이 없었지만 지난 금요일에 있었던 지갑분실(결국 착오) 사건으로

모든 Credit Card 사용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자동차 Gas가 떨어지면 현금으로 넣어야 하고

은행에 Deposit조차 할 수 없는 상황(손으로 써서 입금하는 방법이 있지만 아주 불편)이라

Credit CardDebt Card가 도착할 때까지 가능한 사용할 일을 안 만들기 위함이다.

물론 꼭 필요한 일이 있으면 해야겠지만 덕분에 절약하는 한 주가 될 것 같은 생각이다.

암튼 오전 내내 일을 하고 사무실에서 점심 먹고 오후까지 사무실 지킴이가 되었다.

덕분에 조금 소홀히 했던 일들을 점검하며 시어머니처럼 조근조근 따지며

직원들을 당황시켰다.

이러니 직원들이 내가 사무실에 있는 걸 싫어하나?

 

조금 이르게 집으로 향했고 아해와 30여분 넘게 영상통화를 하다 내일부터 출장을 가야하는

아해는 잠자리로 나는 잠시 쉬다가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오늘의 메인 메뉴는 중탕 계란찜, 계란 3개과 새우젓으로만 간을 하여 만드는 계란찜이다.

비트짱아지와 조개젓, 김 등으로 구색을 맞춰 저녁을 먹고는 자몽에 카모마일로 입가심을 하고

설거지에 Package Pick up, 그리고 구름 많은 하늘과 햇살이 거둬진 건너편 숲을 보며 명상,

높은 곳에서 숲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이 참 좋다는 기분을 만끽하였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잘 저물어 간다.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