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소년이 온다-한강

송삿갓 2025. 6. 24. 18:06

소년이 온다-한강

 

네 중학교 학생증에서 사진만 오려갖고 지갑 속에 넣어놨다이. 낮이나 밤이나 텅 빈 집이지마는 아무도 찾아올 일 없는 새벽에, 하얀 습자지로 여러번 접어 싸놓은 네 얼굴을 펼쳐본다이. 아무도 엿들을 사람이 없지마는 가만가만 부른다이. ······동호야 -본문 [꽃 핀 쪽으로] 중에서-

 

이 책은 19805월 광주에서 일어났던 10일간의 광주민주화운동에서 동호라는 이름의 중학교 3학년이 중심이 된 사실적 소설이다. 위의 본문은 소설의 거의 끝 부분에 있는 소년의 어머니가 서른 살에 낳았던 막둥이가 죽고 난 후에 아들에 대한 사무침과 그리움의 탄식으로 보여 진다. 보관하고 있는 사진이 중학교 학생증에서 오렸다는 것으로 소년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고 아무도 찾아올 일 없는 새벽에라는 내용에 사무침과 그리움이, ‘아무도 엿들을 사람이 없지마는 가만가만 부른다이.’라는 것으로 아들을 살려내지 못했다는 죄인 같은 마음의 표현인 것으로, ‘······동호야라는 내용에 어린 아들을 먼저 보낸 엄마의 미안함이 보인다.

 

저자의 의도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그리고 어떤 평론가는 더 어렵고 고급진 이야기로 더 멋있고 숭고하게 쓸 수도 있겠지만 저자가 이 내용을 소설의 끝에 배치한 것은 책 내용을 가장 함축하고 있는 글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5·18 광주민주화 운동]의 실체는 무엇이며 그 피해는 얼마나 될까?

웬만한 사건과 사고는 지금 같은 정보화 시대에 인터넷을 뒤져보면 대부분 알 수 있고 기간이 길거나 넓은 곳에서의 사건이나 사고는 대략이랴는 단어를 앞장세워 추측하는 데 5.18에 대해서는 지금도 추측조차 못한다. 철저하게 가려졌고 가해측은 물론 피해측도 사실은 이렇소라고 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소년보다 열한 살 많은 큰 형이 다섯 살 아래의 동생에게 따지듯 멱살을 잡고

그 쪼그만 것 손잡아서 끌고 오면 되지, 몇날 며칠 거기 있더록 너는 뭘 하고 있었냐고! 마지막 날엔 왜 어머니만 갔나고! 말해봤자 안 들을 것 같다니, 거기 있으면 죽을 줄 알았담서, 다 알고 있었담서 네가 어떻게!”라며 업치락뒤치락하는데 소년의 작은 형이 했던 말이 이렇다.

 

형이 뭘 안다고······ 서울에 있었음스로········ 형이 뭘 안다고········ 그때 상황을 뭘 안다고오. -본문 [꽃 핀 쪽으로] 중에서-

 

그렇다 그 일이 일어난 10일 동안 광주의 밖에서는 실체를 거의 알 수가 없었다. 물론 광주 안에 있었어도 참혹함을 보고 들을 수는 있었지만 전부 알 수 없는 건 광주 밖에 있는 사람들과 마찬가지였을 정도로 통제와 은폐가 이루어졌고 지금까지도 전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부를 통해서 당시 광주 안에 있던 사람의 마음의 상태는 알 수가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잊은 건지도 몰랐다. 여자들을 도청에 남겨서 함께 죽게 하면 시민군의 명예가 다칠 거라던 그의 말이 어렴풋이 떠올랐지만, 그 말이 정직하게 그녀를 설득했는지 자신할 수 없었다.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죽음을 피하고 싶었다.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에 둔감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더 두려웠다. 입을 벌리고 몸에 구멍이 뚫린 채, 반투명한 창자를 쏟아내며 숨이 끊어지고 싶지 않았다. -본문 [일곱개의 뺨] 중에서-

 

열흘간의 상황 중 거의 끝 무렵 도청에서의 시민군 중 한 명의 이야기다. 진수라는 한 젊은 시민군이 여자들은 돌아가라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남겠다고 했던 한 여자의 죽음에 대한 심정을 표현한 내용인데 당시에 얼마나 처참하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책의 겉표지에 있는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이렇게 썼다.

어떤 소재는 그것을 택하는 일 자체가 작가 자신의 표현 역량을 시험대에 올리는 일일 수 있다. 한국문학사에서 ‘805월 광주는 여전히 그러할 뿐 아니라 가장 그러한 소재다. 다만 이제 더 절실한 것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응징과 복권의 서사이기보다는 상처의 구조에 대한 투사와 천착의 서사일 것인데 ~중략~. [소년이 온다]는 한강이 쓴 광주 이야기라면 읽는 쪽에서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겠다고 각오한 사람조차 휘청거리게 만든다. 이 소설은 그날 파괴된 영혼들이 못다 한 말을 대신 전하고, ~중략~

 

한낮, 유난히 고요한 휴일 오후 해가 드는 창을 보다가 문득 동호의 옆얼굴이 흐릿하게 떠오를 때, 눈앞에 어른거리는 그게 혼은 아닐까. 기억할 수 없는 꿈 때문에 뺨이 젖어 있는 새벽 그 얼굴의 윤곽이 별안간 선명해질 때, 혼이 머뭇거리며 거기 있는 것 아닐까. 만일 혼들의 장소가 있다면 그곳은 어두울까, 어렴풋이 밝을까. -본문 [밤의 눈동자] 중에서-

 

어떤 상황이나 사람의 생각에 대해 적절한 글로 표현한 것을 보고 가슴에 비수를 박는 듯한 짜릿함을 느끼고는 하는 데 너무도 그러면 읽고 지나가고서도 다시 페이지를 뒤로 두 번, 세 번 일고는 하는 데 이 책은 그런 부문이 너무도 많아 더디게 읽으면서 노벨상이 괜히 노벨상이냐?’라는 감탄하고는 했다.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본문 [검운 숨] 중에서-

 

꼭 직접 총을 맞아본 사람처럼, 그리고 사람을 향해 총을 쏘아 본 사람처럼, 총을 쏘라고 명령한 사람인 것처럼 글을 쓴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본문 [일곱개의 뺨] 중에서-

라는 글에서는 한을 담고 살아야 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 보다 애절하게 쓸 수는 없을 거라는 감탄도 했다.

 

눈물이 났다. 본 문을 다 읽고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의 마지막 두 쪽을 남겼을 때 더 읽지 못하고 마냥 울었다. 내 집이 아니라 사람이 많은 곳임에도 창피한 줄도 모르고 많은 눈물을 흘리며 밖을 보았다. 숨고르기를 하던 장마가 다시 북상하며 일으키는 바람에 나뭇가지가 춤을 추었고 보기 좋으라고 해 놓은 물이 일렁거렸다. 광주의 원혼들이 상체를 흔드는 것 같아, 물속에서 절규하며 꺼내달라는 아우성 같이 느껴졌다.

 

19805월 광주에 관한 수많은 글들, 영화는 모두 피해자들에 관한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소년(동호)에게 총을 쏘았던, 상무대에서 수감자들을 장난감처럼 발로 차고 총검으로 찌르던 그 어느 누구도 "내가 그때 그랬오.", "내가 그 부대의 지휘관이었오."라며 "정말 죽을 죄를 지었오."라는 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너무 죄인 같아서였을까, 아님 단죄가 무서워서였을까.

 

나는 19805월 광주에 없었다. 하지만 2년 후 광주에서 군복무를 했다. 당시 19805월 광주의 소용돌 속에 있었던 이들을 군에서 만났다. 나와 동기인 한 친구는 당시 대학생으로 광주에 살면서 겪었던 이야기를 했었다. 그 친구 본가에서 그 친구와 어머님으로부터 당시의 이야기를 듣고 몸부림치며 울어 한 동안 그 동기의 가족으로부터 놀림감이었고, 다른 한 이는 당시에 군인으로 있으면서 가해했던 일을 영웅이야기처럼 쏟아내기도 했었다. 또한 나는 엄청 많은 정보와 이야기를 접했지만 어떤 행동이나 증언도 하지 않았다. 변명으론 내가 듣고 알았던 게 전부가 아니라며 입을 다물었다. 오늘의 눈물은 침묵의 미안 함 때문에 눈물이 난 것은 아닌지. 비슷한 시기에 같은 곳에서 군에 있었다는 것에 가해자들이 하지 못하는 사죄를 대신 하고픈 마음의 눈물은 아닌지. 한 참 눈물을 흘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일렁이는 물에 영혼들로 생각하고 사죄하고는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과 비슷한 본문을 소개하는 것으로 소설의 후기를 마친다.

 

갑작스러운 피로를 느끼며 당신은 고개를 숙인다. 커피잔 바닥에 가라 앉은 적갈색 앙금을 잠시 들여다본다. 대답할 말이 마땅치 않을 때 늘 그렇게 하듯 고개를 들고 미소 짓는다. 여러줄의 가느다란 주름이 당신의 입가에 그어진다. -본문 [밤의 눈동자] 중에서-

 

June 25 2025 송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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