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당신들의 천국(天國) - 이청준

송삿갓 2024. 12. 22. 22:15

당신들의 천국(天國) - 이청준

 

이 소설에서 자주 언급한 자유와 사랑나와 당신이라는 어우러져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대칭적인 상황을 그려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른 면으로는 사랑이 없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는 의미를 쏟아내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 책의 본문을 읽을 때는 생각지 못하다 해설을 읽는 중간에 초판발행일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이 책이 쓰여 진 시점의 시대상황이 궁금해서였을 게다.

 

이 소설은 1974년부터 1975년 사이에 신동아에 연재되었고 19765월 책으로 발행되었다. 197210, 대통령을 종신을 할 수 있도록 한 흔히 말하는 ‘10월 유신헌법이 공포되었다. 이전에도 그랬겠지만 10월 유신에 대한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서 투쟁을 했다. 그 때 내가 고등학생이었고 등교나 하굣길에 대학의 정문에서 투쟁하는 대학생, 막아서는 경찰, 그리고 최루탄 냄새로 토하듯 기침하던 버스의 승객 등이 내 추억에서 끄집어내어졌다.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을 위한 헌법이고 국민의 삶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며 공권력이라는 힘으로 누르던 시기에 이 소설이 연재되고 책으로 출간된 것이다. 저자는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묵시적인 항거의 의미로 소록도라는 섬을 무대로 쓴 소설이 아니었을까?

 

이 소설의 제목은 [당신들의 천국]이다. 내가 아니고 왜 당신들의 천국이었을까? 저자 이청준은 개판본을 다시 꾸미면서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소설의 제목 '당신들의 천국'은 당시 우리의 묵시적 현실 상황과 인간의 기본적 존재 조건들이 상도한 역설적 우의성에 근거한 말이다. 그러면서 나는 어느 땐가 그것이 '우리들의 천국 '으로 바뀌어 불려 질 때가 오기를 소망했고, 필경은 그 때가 오게 될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아마도 그때가 오게 되면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사시적(斜視的:한자의 내용은 비낄 사, 볼 시, 과녁 적) 표현이나 그 책의 존재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나로서는 참으로 어려운 말이다. 묵시적, 역설적, 사시적 등 21세기의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라 쉽지 않다. 하지만 전체적인 뉘앙스는 무언가를 직접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한두 번 비틀어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소설의 본문 곳곳에 사시적 표현이라고 내가 느꼈던 부분들을 간추려 보았다.

 

사자(死者)의 섬중에서

하기야 사람의 허울을 뒤집어쓰고 난 자 어느 부처님이라고 자신의 동상을 품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것인가. 누구에게나 가슴속의 깊은 곳에는 그런 동상이 하나씩 숨겨지고 있게 마련인지 모른다.

 

사자(死者)의 섬중에서

옳은 말씀입니다. 아닌게아니라 이 섬에선 죽은 자들만이 말을 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살아 있는 사람들은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은 사람들이 이미 모든 말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들만이 가장 정직한 말을 하니까요.

 

낙원(樂園)과 동상(銅像)’ 중에서

문제는 명분이 아니라 그것을 갖게 되는 과정이었다. 명분이 과정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명분이 재물을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천국이 무엇인가. 천국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마음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 구하고 즐겁게 봉사하며, 그 천국을 위한 봉사를 후회하지 말아야 진짜 천국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출소록기(出小鹿記)’ 중에서

공사장 일은 겨울 추위에 상관없이 강행되었다.

그것은 참으로 길고도 위태로운 싸움이었다.

그것은 스스로 인간을 용납할 줄 모르는 비정한 바다와의 싸움이었고, 길고긴 겨울 추위와의 싸움이었고, 사람과 사람이 상대방에게 대한 자신의 신뢰를 마지막까지 시험해보고자 하는 인내력과의 싸움이었다.

 

배반(背叛)중에서

그건 이 섬에서야말로 자유라는 것보다도 더욱더 귀중한 다른 무엇으로 행함이 있어야 하기 때문엔 게야. 자유보다도 더 귀하고 값진 것이 무엇 인고 하니 그게 바로 사랑이거든. 이 섬에선 자유보다도 사랑으로 앞서 행했어야 한다는 말씀이야.

 

배반(背叛)중에서

그야 물론 사랑이어야겠지. 이제 이 섬은 자유로는 안 된다는 걸 알았으니 다시 또 그런 자유로만 행해나갈 수는 없을 게야. 자유라는 건 싸워 빼앗는 길이 되어 이긴 자와 진 자가 생기게 마련이지만 사랑은 빼앗음이 아니라 베푸는 길이라서 이긴 자와 진 자가 없이 모두 함께 이기는 길이거든.

 

천국(天國)의 울타리중에서

이정태는 오히려 그 원장의 광기 속에서 그의 소망과 괴로움을 볼 수 있었다. 외로운 침묵 속에 얼마나 많은 말들이 참아져오고 있었던가를 알 수 있었다. 입을 다물고 견딜 수밖에 없는 그의 진실이 얼마나 힘겹고 외로운 것인가를 알 수 있었다.

 

천국(天國)의 울타리중에서

원장님이 아무리 섬사람들을 생각하고 섬을 위해 노고를 바치고 계셨다 해도 원장님은 결국 그 섬사람들과 같은 운명을 사실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원장님께서 꾸미고자 하신 섬사람들의 낙토가 원장님과 섬사람들의 공동의 천국은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유와 사랑

10월 유신을 발표하는 대통령과 정부는 궁극적으로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제 3자적 입장, 혹은 국민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아닌 당신(대통령이나 정부 등 권력자)을 위한 것이라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잘 못되었다.’라는 대신 소설이라는 글로 간접적 표현이 묵시적이고 사시적, 혹은 역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와 권력자를 규탄하는 민주화투사가 북한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어떤 사람이 "북한이 그렇게 좋으면 네가 북한에 가서 살래?"하면 그러겠다는 민주화 투사가 있을까? 그러한 게 역설적인 게 아닐까?

 

소설 후기에서 이러는 게 한참 어긋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의 무대인 나환자의 섬 소록도, 그곳을 그들이 자유로운 천국을 만들겠다며 나환자와 건강인들 사이의 철망을 철거하고 영원한 안식처로 살 수 있도록 하겠다면 농토로 만들 간척지를 만드는 게 과연 그들, 그러니까 나환자들의 천국을 만드는 것인가? 이는 국민을 위해 정치하고 북한도 우리의 국민이니 적으로 만들지 말자며 포용하자는 자들과 묘하게 닮은 것 같지 않은가?

 

이 소설 자체가 시대적 상황을 간접적인 항거의 의미로 느꼈으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문학이라는 의미로 너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문학을 잘 모르지만 해설에 이런 글이 있어 소개하는 것으로 내 후기를 마친다.

 

문학은, 인간을 자신의 생존 욕망 속에서만 갇혀 있는 포유동물과 구별하게 만드는 변별적 장치 중의 하나이다. ~중략~ 문학이 없어지는 날, 감히 말하거니와, 인간다운 삶도 없어진다고 할 수 있다. -초판해설 '자유와 사랑의 실천적 화해 '(김현)- 중에서

 

December 21 2024

'책을 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낮은 데로 임하소서 -이청준 지음-  (1) 2024.11.24
모순-양귀자  (2) 2024.11.10
은빛 비 -아사다 지로-  (2) 2024.11.02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김지수 지음-  (1) 2024.10.30
아주 오래된 농담 -박완서  (5) 2024.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