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메의 컬럼과 글

둥구나무

송삿갓 2016. 10. 13. 03:49

둥구나무

 

내가 태어난

외할머니 댁 동네 어귀 지킴이

오가는 외지사람들과 만남·이별의 장소

둥구나무

 

몇 개의 큰 돌이

의자며 탁자로 준비된

시골동네 모든 이의

쉼터

 

작렬하는 태양의 여름 뙤약볕

그늘 만들어

아이들 소꿉놀이터

 

크기 다른 작은 돌 다섯 개

조막만한 손의

여자아이들의

공기놀이터

 

기력이 쇠약해

농사 거들지 못하는 할아버지

낮잠 자는 그늘

 

돌 위에 패인 장기판에

모자란 장기 알은

큰 돌은 차()

작은 돌은 졸()

그것도 부족하면

너는 넓적한 풀

나는 좁은 풀

시원한 바람 불면

흩날리는

어른들의 나눔 터

 

대처로 나가는 자식 배웅하고

숨죽여 기도하고

오늘 올까 기다리며

아낙네의 발걸음

멈칫 잡는 곳

 

학교에서

무상으로 받은 강냉이 죽

책보 위에 바쳐 들고

잰 걸음 가노라면

학교가고 얼마 후부터

목 빠져라 기다리는

동생의 기다림 터

 

나이 들어 찾았을 때

세월 무게 이고지고

힘겨워 기우뚱해

긴 가지는 쇠기둥에

먼저 간 이 혼이 도와

겨우겨우 버티면서

추억을 이어주던

친근한 친구

둥구나무

 

그게 벌써 몇 해 전

지금도

잘 버티고 있으려나?

 

October 1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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