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 여행

천일여행 597일째, 2017년 2월 6일(월) 용인·수지/맑음

송삿갓 2017. 2. 7. 08:03

천일여행 597일째, 201726() 용인·수지/맑음

 

어제 저녁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자리에 든 시각이 610분 전

처음 잠에서 깬 시각이 1130분경,

그러니까 적어도 다섯 시간 이상은 잔셈이니 나쁘지 않았다.

이후에는 거의 한 시간 간격을 깨서 한 시간 이상을 버둥거리다 어찌 다시 잠이 들었다.

코를 골며 곤히 주무시는 어머님이 깰 세라 조심조심 화장실에 가고 물을 마시며

몇 번을 반복한 끝에 다섯 시가 되었을 무렵 다시 잠을 청하려다 손가락을 헤아릴 것도 없이

생각해보니 잠들겠다고 누워있는 시간이 11시간을 넘긴 거다.

스스로 이 정도면 아주 충분히 잠자리시간을 보낸 거니 일어나도 된다는

자신의 당위성을 합리화하여 몸을 일으키지만 어제 하루 종일 돌아다녔던 어머니는 곤한지

여전히 코를 골며 움직임이 없다.

 

긴 시간을 누워 있어도 이럴 때 내 의지와 관계없이 나를 흔드는 친구는 두통이다.

자면서 두통이 있을 경우 약을 먹어도 잘 다스려지지 않는다.

심해서, 혹은 약의 효용이 이런 것에는 대비하지 못했던 것으로 위안을 삼지만

한 편으로는 약을 먹고 바로 눕기 때문에 소화가 잘 되지 않아 반응 할 수 없다는 뜻으로

내가 해석하기도 한다.

너무 심해서 때로는 두세 번 먹는 경우도 있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두통이라는 것이 있지도 않았다는 듯 깨끗함에

밤새 먹은 두세 번의 약이 한 번에 소화 되서 그럴 거야하는 의사 같은 판단에서

소화가 잘 되지 않는 다는 것을 다스려지지 않는 이유에 추가하였다.

때로는 집안을 거닐어 소화를 시켜보려고 하지만 그것도 도움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다.

아마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하면 두통은 사라질 거라는 생각과 의지를 담는다.

 

그럼에도 조금 전에 먹은 약이 도움을 주려는지 아님 밤도깨비로 가장한 편두통이

다가오는 아침에 힘을 잃어가기 때문인지 조금은 나아짐을 몸은 느낀다.

 

기왕 자리에 일어나 움직이지 못하고 침대에 앉아 있으니 오늘 할 일을 점검한다.

일어나면 어머님은 콩과 들깨를 넣고 간 우유를 주실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침을 먹자 하실 거다.

난 아침을 잘 먹지 않는 생활습관이 있지만 어머님은 꼭 드셔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아침식탁에 마주하여 어머님과 같인 시간동안 식사를 할 거다.

아침을 먹으면 Mix 커피 한 잔 또한 어머님의 기호품이다.

그걸 마셔야 아침 먹은 것이 소화되는 것은 물론 상쾌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습관이시다.

 

어머님과 함께 집을 나서 우선 우체국에 갈 것이고

은행에 들려 환전하여 어머님 생활비를 통장에 넣어 드릴 것이다.

이어 어머님은 집으로 들어가시라 하고 나는 피부과에 가서 레이저로 얼굴을 지질 것이다.

오전만 해도 그렇게 많은 일들을 하고 집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는

막내이모 댁으로 움직이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게 오늘 하루 일과다.

연일 그렇게 움직여도 어머님이 괜찮으시려나?

나와 함께라면 어디든 무엇이든 괜찮다 하시지만 뚜렷이 느껴지는 둔해지신 움직임과

어제 느꼈던 총명하였던 길눈에 총기를 잃어가는 것에 무리는 아닐는지.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배려하겠다는 마음을 다져본다.

 

자리에 누워 계속 버둥거리고 있는데 어머님이 일어났는지 Mixer 돌리는 소리가난다.

내 아침 준비를 하긴 모양으로 나 역시 몸을 일으켜 아침인사를 한다.

오늘도 검은콩과 깨를 넣은 우유 한 잔에 홍삼 한 뿌리를 주신다.

어제 먹은 것이 소화가 덜 되어 불편하기는 하지만 기꺼이 받아 맛있게 먹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님과 마주 앉은 아침식탁,

쏟아 내는 것 보다 먹는 것이 많으니 속에 부담이 되어 거르고 싶은 간절함도 있지만

그럴 수 없어 어머님 밥 조금만하면서도 차려주신 정성과 어머님 드시는 동안

장단 맞추듯 먹다보니 속은 더부룩해짐을 더하였다.

식사를 대 했을 무렵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되어 내가 먼저 나가고

어머님은 뒷정리를 하고 은행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피부과의 10시 예약을 맞추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했다.

준비를 마치고 캐리어에 아해에게 부칠 짐을 싣고 우체국으로 향했다.

아침에 춥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따스하게 차려 입었음에도 바깥 날씨는

애틀랜타에서 거의 느낄 수 없었던 차가움이 얼굴을 얼얼하게 한다.

10여 분을 걸어 우체국에 도착하니 사람이 많다.

이 또한 내가 전혀 예사하지 못했던 상황이다.

무작적 포장테이프를 찾아 걸어가는 데 뒤 따라 오던 여자가 번호표 한 장을 건넨다.

하마터면 Packing을 마치고서야 깨달을 뻔 했고 시간이 더 치체 되었을 거다.

받으며 감사의 인사를 하고 두 개의 Package에 마무리하지 않은 Tapping을 하고

순서를 기다리는 데 마음은 초조하다.

피부과 예약이야 조금 늦으면 어때?‘하는 호기스러운 생각을 해 보지만

예약시간에 나타나지 않는 무례함을 범하면 안 된다는 신사적(?) 강박이 나를 초초하게 한다.

 

짐을 부치고 서둘러 은행으로 갔다.

환전을 하면서 어머님 드릴 생활비를 제외하곤 내 통장에 넣는 어쩌면 간단한 절차가 더디다.

일단 외국인으로 분류되어 있는데다 비거주자 신분이기에 절차가 더 많기는 했지만

일을 처리하는 은행원은 내 다급함에는 관계없이 자기들 상품에 연결시킬게 없는지

꼼꼼히 확인하면서 더디게 일을 처리한다.

 

은행 일을 마치고 어머님과 만나기로 한 농협으로 가는데 신호등 앞에 어머님이 서 계신다.

툭 치며 왜 여기에 계시냐?”고 하자 농협에서 기다리다 내가 오질 않자 참지를 못하고

우체국엘 다녀오시는 길 이란다.

그러다 길이 어긋나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씀드리자

그래봐야 먼 길도 아닌데 뭘 그러냐?”며 길에서 만났음을 반가워 하신다.

농협에서 Deposit을 하는 동안 어머님 전화 벨이 울린다.

받아보니 일주일에 한 번씩 집으로 방문하는 생활관리사라며 한 시간 뒤 집으로 온단다.

독거노인을 위해 나라에서 보건소의 간호사는 물론 생활관리사를 보내

삶의 상태의 점검은 물론 말동무도 해 준다니 세상 참 좋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피부과에 가도 될 것을 바래다 주신다며 굳이 뒤를 따르신다.

명목은 목이 칼칼하다며 바로 옆에 있는 내과에 사람이 많지 않으면 진료를 받는 것이다.

피부과에 도착한 시각은 예약보다 35분 늦었다.

미안함을 이야기하고 돈을 지불하자 바로 시간하는데 그 사이 내과에 가셨던 어머님은

사람이 많아 진료를 받을 수 없으니 얼른 집에가서 치워야겠다며 집으로 가셨다.

 

약간의 맛사지와 마취약을 바르고 윙윙 기계소리 나는 진료실에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아

따끔따끔하며 살을 지지는 소리에 이어 다다닥하며 살 타는 냄새까지

내가 좋아할 수 없는 소리와 냄새를 거의 30여 분을 맡아야 했다.

그리곤 검버섯 태운 곳을 덕지덕지 테이프로 붙이고 항생제 처방전과 주의사항을 듣고 나왔다.

 

약국에서 항생제를 사고 집에 도착해 잠시 쉬었다 선물을 들고 막내이모 집으로 향했다.

중간에서 어머님의 고집으로 딸기 한 Box를 사고 지하철과 버스로 도착했을 때

이모님 부부가 정거장을 향해 걸어 오신다.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를 탔을 때 사전연락을 하기로 약속되었기에 시간에 맞춰 나오신 거다.

허리를 다쳐 한 달 동안 병원에 있다 퇴원해 회복 중이라 엉거주춤 걷는 이모

이 년 전 Stroke이 와서 불편해진 몸을 기우뚱 대는 이모부

포옹으로 재회의 반가움과 안쓰러움이 교차한다.

바로 밥 먹으러 가자하였지만 딸기와 이모의 선물을 두고 가자며 집으로 향했다.

송파위례 신도시, 몇 년 전 왔을 때만 해도 비어 있던 공간에 새로운 건물이 한 참 공사 중이다.

 

이미 두 시를 넘겼기에 늦은 샤브샤브를 곁들인 야채뷔페에서 점심을 먹었다.

집으로 돌아와 어머님과 이모의 옛 추억을 여행하는 사이 가만히 듣고 있었다.

간간히 내가 함께한 시간과 추억도 있었고 들었던 이야기도 있었지만

상당히 많은 것은 나와 동떨어지고 내 기억엔 없는 것들이다.

자매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주고받으며 기억에 서로 다른 것은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거나 얼버무려 마무리 하기도 한다.

보통은 어머님이 이모님 댁에 가면 한두 시간이면 가야 한다며 몸을 일으켰단다.

하지만 오늘은 탁구공 주고받듯 끊이질 않자

에궁, 엔돌핀 아들 왔다고 우리 성 마냥이네하며 자고 가란다.

절대 그럴 수 없다며 손사래 치는 어머님께 그럼 저녁이라도 먹고 가라하자

아픈 사람이 무슨 저녁, 그리고 점심을 늦게 먹어 소화도 안 되었다고 마다하신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 해가 저물자 가볍게 누룽지 끓여먹자는 선에서 타협이 되었다.

나는 있는 것을 끓이는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이모는 있는 밥을 눌려 끓여 냈다.

조기구이에 오징어젓, 김치에 씨래기멸치 무침을 곁들여 가볍게 저녁을 먹고

상을 물리지 않고 한 참을 더 추억의 공방이 이어졌다.

조카 나 참 수다스럽지?”하는 이모의 말에

정말 그렇게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처음 보는 모습이다.

상을 치우자는 어머님 말씀에 상 치우면 갈 거지?”라며

누룽지 먹은 대접이 마르도록 시간을 보내다 여덟 시를 넘길 무렵

어머님은 지하철 끊기기 전에 가자며 몸을 일으키신다.

지하철이 그리 일찍 끊길 리 없지만 일어설 구실을 궁색하게 붙이신 거다.

다시 자면서 밤새 이야기하자는 이모의 인사치례 같은 간절함을 단호히 뿌리치고

서둘러 채비를 하고 앞장서신다.

애비 내일 아침에 친구들 만나러 간데라는 게 어머님이 붙이신 이유다.

 

칼바람이 부는 버스정류장에 마침 다가오는 택시에 몸을 던지듯 올라탔다.

지하철을 탔을 때 눈꺼풀에 추를 달아 놓은 듯 자꾸 감기고 몸은 늘어진다.

집으로 오는 한 시간 정도가 어찌 그리 길게 느껴지던지?

 

집에 도착하자 베란다에 내 놓은 메주를 들이는 동안 씻고 자라는 어머님의 말씀에

대충 물만 끼얹고 다 마르기도 전에 침대로 올랐다.

 

오늘도 하루 참 잘 보냈다.

고단하다.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