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 여행

천일여행 596일째, 2017년 2월 5일(일) 용인·수지/흐림, 눈 비

송삿갓 2017. 2. 6. 08:22

천일여행 596일째, 201725() 용인·수지/흐림, 눈 비

 

어제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멜라토닌과 Advil을 먹었다.

시차 때문에 고생할 것을 대비해 조금이라도 더 깊이 자고픈 생각에서였다.

깊이 자다 깬 것이 한 시 사십 분경, 그러니까 거의 다섯 시간을 잔 것이다.

그 이후론 자다·깨다를 반복하면서 가능한 버티다 여섯 시쯤에 몸을 일으켰다.

어머님이 내가 깰까봐서 자리에 누워계신 것도 몸을 일으키게 한 한 몫이 되었다.

일어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콩과 들깨를 우유에 넣고 간 것과 인삼 한 뿌리를 주신다.

평상시에 거의 먹지 않으시는 우유까지 준비하셨으니

아들 온다고 신경 쓰신 어머님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밖을 확인하니 밖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어제 밤에 대충 감을 잡기는 했었지만 많은 눈이 내려 대부분 녹기는 했지만

여기저기 희끗하게 남은 부분이 많다.

사전에 확인했던 일기예보로는 오늘 눈이 온다고 하여

아버지를 모신 묘원을 갈 수 있을까하는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이 오늘 아침 예보에는 눈 소식은 없어 어머님과 다녀오기로 하였다.

 

준비를 마치고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고 병점에 도착했다.

역에서 빠져나오니 간간이 해가 보였던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있으면서 살짝 비까지 내린다.

집에서 출발 할 때 우산을 챙겨 가자는 어머님의 말씀에 귀담아 듣지 않았던 일기예보와

내 감각으로 비가 오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었기에 그냥 가자고 하였던 내 실수다.

다행이 많은 비가 내리지 않아 그런대로 다닐 만 했지만 만일 더 많이 온다면 낭패다.

예전의 기억과 경험만 가지고 택시를 쉽게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벌판이었던 역 주변은 아파트라도 지으려는 지 온 통 파 해쳐 공사 중이었고

공사판에 출입을 막으려는 드 온통 높은 가림막을 쳐 시야를 가려 갑갑하기만 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택시는 없고 마을버스만 많던 버스정류장에는 시내버스가 꼬리를 문다.

조금씩 오는 비라도 자꾸 맞으면 축축해질 것 같아 지붕이 있는 버스정류장에

일단 어머님을 계시게 하고 나는 50여 미터 뒤에 있는 택시타는 곳에 서서

애타게 택시를 기다리는 사이 어머님이 손짓을 하며 얼른 오란다.

아버지를 모신 공워묘원에 가는 버스가 도착해서 잡아놓고 나를 부르시는 거다.

얼른 달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어머님은 운전기사와 실갱이를 하고 계셨다.

어머님 생각에 번호는 분명 맞는데 안 간다고 하니 이상하다며 오도 가도 못하게

열린 문을 부여잡고 나를 부르고 계셨던 거다.

어머님은 앞뒤 없이 납골당 가는 버스 아니냐?“고 묻는 것이고

기사는 어떤 납골당?”이냐며 얼른 가야하는 기사와 꼭 타겠다는 어머님의 팽팽한 대립이었다.

내가 아버지를 모신 납골당의 이름을 대며 그곳 가는 것 이냐?”고 하니까

기사는 그렇다며 얼른 타라고 재촉한다.

 

버스에 몸을 싣고 자리를 잡은 어머님은 그게 그거지 뭘 버티고 있어?‘하면서

내가 도착할 때까지 잡고 있었던 것에 대한 뿌듯함의 흥분된 목소리를 토해내셨다.

 

버스를 타고 이리저리로 가는데 길눈이 밝아 빠꼼이라고 했었던 나는

많아진 아파드와 건물, 그리고 내 생각에 일 분에 한 번씩 멈춰야 하는 신호등에

어디가 어딘지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 나도 나이들어 길둔이 어두워졌나?’하는 자책을 하면서

창밖을 바라보는 데 비는 눈으로 바뀌어 술취한 사람의 갈지()자 걷드 느릿느릿 자유낙하,

그걸 바라보며 버스정류장에서 공원묘원까지 한 참을 걸어야 하는 마음에 걱정이 가득하다.

 

거의 도착할 무렵이 되었는지 어머님이 다음 정류장인가 아님 그 다음인가?“라며

자꾸 밖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나 이상으로 길눈이 밝았던 어머님의 첫 이상한 징조였다.

어머님은 예전에 한글을 몰라도 본인의 기억과 감각으로 서울시내 곳곳은 물론

지방도 잘 찾아다니던 분이신데 버스 내릴 곳을 긴가 민가 하시는 모습을 거의 처음 보았다.

버스에서 내리니 눈발에 제법 굵어져 우산을 못 챙기게 한 내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하였다.

걱정과 후회를 하는 내 말에 어머님은 날씨가 따스해 쌓이지는 않을 것 같다라는 말로

내 걱정에 위안을 주시며 거친 숨소리와 함께 종종걸음으로

어여 앞서 가 뒤 따라 갈게라며 나라도 얼른 가서 눈을 덜 맞게 배려하신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아시기에 내 속도에 보조를 맞추려는 듯 움직임은 빨라지지만

오히려 내가 속도를 늦추며 어머님의 챙겨본다.

 

죽어 뼈만 있는 사람이 오면 오는지 가면 가는지 아니?”라시던 어머님은

제법 굵게 내리는 눈발을 보며 애비야! 아버지가 네가 오는 줄 아나보다. 인사를 하네라며

함께 온다는 것에 마음의 편안함이 크신 것 같다.

어머님 말씀으로는 설을 새고 바로 오려고 했었지만 마음이 당기지 않은데다

눈까지 내려 미끄러운 것을 핑계로 봄에나 가야겠.’ 했었는데

뜻하지 않게 나와 함께 오게 된 것에 마음에 걸리는 것을 해결했다는 개운함이 있는 것 같았다.

 

이상하리 만치 사람이 많았다.

아마도 설 이후 맞이한 첫 일요일이니 그런 것으로 생각되었다.

조그만 관에 갇힌 납골함 주위에 생전에 아버지가 보시던 조그만 성경책, 돋보기에

의자에 앉아 있는 사진, 작은 인조 꽃병은 예나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애비야! 나 죽으면 아버지 뼈와 함께 빻아서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곳에 부려다오

아버지 납골을 가루로 빻지를 않았다.

임종을 못 지켰다는 마음과 죽은 사람의 뼈를 쇠망치로 두드리는 것이 잔인한 생각이 들어

화장을 했을 때 내가 하지 못하도록 막았기에 그랬던 것이었다.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한국서 살지 않고 주변에 많이 알리지도 않았을 뿐 더러

마지막 통화에서 떼를 써서라도 병원에 가게 했었더라면 하는 것들이 잘못으로 생각되어

장례식 하는 동안 내 주장을 거의 하지 않고 동생들의 판단과 결정에 모든 것을 맡겼지만

유일하게 내 의지를 심은 것이 분골(粉骨)을 막은 것이다.

 

방명록에 흔적을 남기고 밖을 보니 눈발이 더 굻어져 있다.

정말 아버지가 나 오는 것을 반기는 걸까?’

가당치도 않은 자위에 피식 웃음이 나올 뻔 했다.

 

안내 Desk의 도움으로 택시를 불렀다.

1분도 되지 않아 전화가 와서는 어디에 있냐?“고 묻는다.

밖을 나가니 정말 개인택시 한 대가 눈발을 가르며 나타난다.

기사 말인 즉, 손님을 태우고 왔다가 막 나가려는데 배차 연락이 왔단다.

공원묘원에 갈 때와는 다르게 지하철을 타고 수원으로 가서 버스를 타기로 하였다.

어머님이 그게 빠르다며 원하셨기 때문에 그럼수원역에서 점심을 먹자며 어머님 말씀을 따랐다.

수원역을 빠져 나오니 예전과 너무도 달라진 모습에 놀라움 그 자체였다.

현대식으로 지은 역사의 크기는 몇 배로 커졌고 역 주변은 말끔하게 정리되었지만

마라톤대회에 선수들이 출발선으로 천천히 이동하듯 수 많은 차가 질서를 지키며 움직인다.

내가 생각했던 점심은 제법 그럴싸한 큰 식당에서 구운 갈비 혹은 푸짐한 갈비탕이었다.

오늘 아침에 셋째 동생이 전화가 와서는 어머님 갈비 사드리라는 주문이 있었기에

그럴 요량으로 역 앞의 골목을 들어서는 순간 기대를 접었다.

빽빽이 들어선 건물에 촘촘히 자리 잡은 상점들 사이에 옆에서 가위질을 해 주는

근사한 식당이 들어서 유지한다는 것은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을 듯 했다.

일요일을 맞이해 그런지 눈발이 날리는 속에도 사람들은 바글바글

겨우 조그만 지하 식당에 자리하여 어머님은 해물순두부, 나는 부대찌개로 점심을 먹었다.

많이 맵지는 않았지만 자극적인 맛에 집에 도착할 때까지 헛 트림에 고생을 했다.

 

한 시를 넘은 시각에 점심을 대한지라 어머님은 시장했었는지 제법 많이 드신다.

어머님의 절대 변하지 않는 신념, 그래서 나도 흔적이 뚜렷한 습관이

어디를 가든 밥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어머님은 배가 부르다 하면서도 밥공기에 늘어 붙은 밥알을 손가락까지 동원해서 뜯어 드셨다.

 

버스를 타고 집 근처에 내려 하이마트라는 곳을 방문하였다.

한 달여 전 TV가 고장 나 일주일을 친구 없이 살면서 불편해 하셨던 어머님께

조금 더 큰 새로운 TV를 사 드리기로 했는데 실은 리모콘이 고장 났었던 거라

수리를 해서 지금은 잘 나오고는 있지만 오래 된 거라 어머님의 만류에도 불구 그러기로 했다.

버스를 내려 굽이굽이 잘 찾아가 TV와 고장나 불편하다는 Mixer를 사고 나오는 데

에이구 바보.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 사는 건데라고 자책을 하신다.

Mixer가 사용하기 어려워져 하나를 사고 싶었지만 비싼 것으로 생각되어 아까운 마음에

불편함을 감수하며 사용하고 있었는데 오늘 이 만원에 새로운 것을 샀기에

그걸 몰랐다며 가슴을 치며 한탄을 하시는 거였다.

 

보통 Mixer 가격이 5~6만 원은 하는데 판매원이 아주 좋은 것 필요가 없으면?”하며

안내 한 것이 Display했던 모델이 있는데 가격이 2 만원, 그런데 새것을 그 가격에 준다는 설명.

어머님께 새로운 모델을 사자고 하였지만

다 그게 그거고 혼자 사는 노인네가 새로운 기능이 뭔 필요가 있냐?며 굳이 그걸 선택하셨다.

 

실은 아침에 오늘 오후에 TV를 사자고 하니까

언제 죽을지 모르는 데 새 것을 사서 뭐하냐?”기에

내 앞에서는 그런 말 절대 하지 말라고 당부를 드리며 다짐을 받았기에

믹서를 사면서 우회적인 표현으로 그렇게 말씀하시며 고집을 부린 거라 그냥 그것을 샀는데

대단치 않은 가격의 믹서를 아들의 손을 빌려 사야 했던 것을 후회하는 것이었다.

 

나는 대체적으로 어머님이 하시고자 하는 대로 따르는 편이다.

때로는 다른 방법이 있거나 틀림이 있어도 대세에 영향이 없는 한 군말 없이 따른다.

갑자기 돌아간 아버지에 대한 맺힌 마음이 있지만

그 보다는 얼마나 사시기에라는 말 못할 안타까움에 그렇다.

 

TV는 화요일에 배달·설치하기로 하고 믹서는 끈으로 묵고 나오며

어머님 이 근처에 e-Mart 있지요. 거기 들렸다 가지요

?”

김치통 사게요

김치통은 왜

한국 김치통이 좋아서 사 가지고 가려구요

집에 있는 것 가져가지

그건 너무 커서요

콘도에서 사용하는 김치통을 H-Mart에서 샀는데 너무 큰데데 허접해서 이번 기회에 사려했었다.

그래 잘 되었다. 나도 무지방유유를 사야하니 가자며 앞장을 서는데

길눈을 밝은 어머님을 앞장세워 따라 가는데 자꾸 엉뚱한 곳으로 가신다.

이 방향이 아닌 것 같은데하면서도 동네를 잘 아시는 어머님을 따르지만 의문만 더해간다.

어머님 이쪽 방향이 맞아요?”

그래 나만 따라와라며 당당히 걸어가시는 데 한 참 공사하는 곳으로 깊이 들어간다.

한 참을 가도 나오질 않고 어찌하여 공사구역을 벗어나 길을 걷는 학생에게 물으니

어머님이 가르키는 정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한단다.

두 번째로 어머님의 방향감각에 의구심을 갖게 된 것이었다.

 

학생이 알려 준 방향으로 가는데 어머님이 내가 왜 이러지?”하며 자책을 하시기에

어머님 미국 아들 산속으로 끌고 들어가 비싸게 팔아먹으려고 그랬지요?”하자

내가 왜 귀한 아들을 파나.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화제를 돌려 어머님의 자책에서 빠져 나오게 하고 찬찬히 걸어 e-Mart를 찾았다.

 

어머님의 무뎌진 길눈에 강한 걱정을 하게 된 사건이 장을 보고 난 후 집으로 향할 때였다.

그곳은 어머님이 조그만 수레를 끌고 수시로 장을 보시는 곳이다.

장을 마치고 나오는데 반대편 문을 향해 앞서신다.

저 쪽이 아닌데?’하는 의구시심이 있었지만 나 모르는 다른 길이 있나보다따랐다.

문을 나서더니 왜 이리로 나왔지? 여기가 아닌데하며 다시 들어가 반대쪽 문을 향해 가신다.

내가 알고 있는 방향의 문이 맞아 건물을 나오자 어머님이 멈춰 서신다.

애비야! 여기가 어디냐?”

“???”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지?”

어머님 저쪽이요하며 길을 건너든 신호등을 가르키자 가다 멈칫 하더니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묻는다.

어떻게 물었는지 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 사람이 가리키는 곳은 내가 가자고 했던 방향이다.

여러 번 주의를 드렸음에도 신호등을 건널 때면 거의 뛰다시피 걷는 분이

그 길을 못 믿겠다며 주춤주춤, 그래도 건너야 하니 발은 쉬지 않는다.

길을 건너고 한 참을 걸어서야 맞다. 이쪽이 맞다하시더니 몇 걸음 가지 않아

애비야! 조금 쉬었다 가자며 길옆의 조경 돌에 앉는다.

어머님 차가운데, 덜 젖은 곳에 앉으세요

그래, 그러마

자리를 하고 고갤 떨구는 어머님을 보며 예전의 어머님이 아니다하며

감각이 둔해진 것에 이를 어쩌나?’하며 고민을 하였다.

나중에 동생들과 상의를 해 봐야 할 것 같다.

 

몇 번을 쉬며 집에 도착했다.

어여 저녁을 먹자며 준비하시는 동안 막내이모와 통화를 했다.

엄마의 엔돌핀 큰 아들이 왔으니 우리 성 신났겠네하며 내일 오후에 방문하기로 약속하였다.

 

밥을 다시 하신다기에 어제 먹던 닭백숙 먹자며 겨우 말려 식탁에 마주 않았다.

애비랑 둘이 밥을 먹으니 더 맛난다를 연발하시더니

다 치우고 나서는 너무 많이 먹었다는 말씀과 함께 TV 앞에 자리 하신다.

그 앞에 앉으면 내 역할을 별로 없다.

빨려 들어가듯 어울리는 게 가장 친한 친구인 TV를 보시는 어머님을 보는 게 다다.

조금 앉아 있으려니 잠이 쏟아진다.

여섯 시까지는 버텨 보자고 했지만 그러질 못하고 10여 분 전에

어머님 저 잘래요하며 잠자리로 향한다.

 

애비야! 새로 산 TV는 이 많큼 꽉 차겠지?”

연신 큰돈을 쓰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시던 어머님은 새로운 친구 맞이할 마음에 들떠있다.

에구, 진즉에 사 드릴 것을

이렇게 어머님과 한국에서의 첫날을 마무리한다.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