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테무진

송삿갓 2012. 8. 9. 00:19

징기스칸,

징기스칸은 우리 한글식으로 부르는 이름이고

몽골에서는 “칭기스칸”이라고 한다.

칭기스칸의 원래 이름은 “테무진”이고

칭기스는 두 가지 설이 있다고 한다.

 

그 하나는 늑대라는 뜻의 치노에서 변화 되어 칭키스가 되었다는 설과

푸르른 하늘을 뜻하는 말이라고도 하는 설이 있다.

‘칸(Khan)’은 동북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지도자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암튼 테무진은 칭기스칸에 두 번 추대 되는 데

한 번은 몽고족의 왕이 되었을 때이고

두 번째는 몽골을 통일하고 등극하게 된 때였다.

 

이 칭기스칸이 태어나고 몽골을 통일하는 과정을 자세히 알고 싶으면

딴지일보(http://www.ddanzi.com/)에 가서 “테무진”이라고 검색을 하거나

그것도 귀찮으면 요 아래

(http://www.ddanzi.com/page/2?cat=3&search_type=title&search_value=%ED%85%8C%EB%AC%B4%EC%A7%84) : 1~ 4편,

5~23편(http://www.ddanzi.com/?cat=3&search_type=title&search_value=%ED%85%8C%EB%AC%B4%EC%A7%84)을 꾹 누르면 24편의 대작을 만날 수 있다.

참 착하기도 하지.

 

잠시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딴지일보에 대해 소개를 하고자 한다.

인터넷 신문인 딴지일보는 원래 조중동(조선, 중앙, 동아일보)을 무지 싫어하는 사람들이

조선일보를 딴지 걸고 세태를 풍자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인터넷 신문으로

예전에는 홈페이지에 가면 “똥고 깊숙이~”라는 곳을 정확히 눌러야 들어 갈 수 있었는데

가끔은 기성세대들이 좋아하는 글들도 있다.

 

다시 칭기스칸 이야기로 돌아가자.

칭기스칸에 대해 얼마나 대단한지 딴지일보의 소개를 인용해 보면 이렇다.

10년 전, 21세기를 앞두고 세계의 유력 언론사들은 <지난 천 년간 가장 위대한(중요한) 인물>을 선정했다. 언론사마다 선정한 인물들과 순위가 제각각이었지만, 1위는 예외없이 테무진이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테무진은 역사상 생물학적으로 가장 성공한 수컷이기도 하다. 전 세계에 테무진의 후손이 6000만 명이라고 한다(오타 아니다). 세계인구의 1/100이 단 한 사람의 후예인 것이다

 

이제부터는 칭기스칸을 본명인 테무진으로 칭하고

그가 몽골을 통일해 나가는 과정에 아주 중요한 두 사람이 등장한다.

한 사람은 ‘옹칸’이라고 하며 테무진의 양아버지이며 테무진을 밥먹듯이 배신을 하는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자무카’라는 사람으로 테무진과 피를 나눈 의형제이며

테무진보다 훨씬 지략가로 전투도 잘 하고 카리스마도 넘치고

늘 테무진이 부러워하는 인물이지만 여러 번 전투를 하고

테무진이 마지막 몽골을 통일할 때의 상대이기도 하다.

시대는 1200년대의 몽고벌판 유목민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들에게 중요한 네 가지가 있다.

 

요즘 한국의 개콘에서 이야기하는

“인기 없는 남자”

“촌놈”

“키 작은 남자”

“뚱뚱한 남자”

(다른 사람은 다 남자인데 왜 촌사람은 ‘촌놈’이 되었을까?)

가 아니라 “피”, “늑대”, “말”, 양(가축)“이다.

 

여기서 “피”는 그들에게 영혼을 뜻한다.

그래서 중요한 순간에 피를 섞어 영혼이 같음을 표시하였고

앞에서 이야기 하였듯이 “테무진”과 “자무카”가 피를 나누며 형제애를 맺은 것은

영혼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당시에 몽고족은 피가 섞이지 않으면 남녀가 아무하고나 몇 번이고 결혼하였다.

아버지의 후처나 형제들의 부인, 혹은 친구의 부인과도 피가 섞이지 않으면

결혼을 하였듯이 그들은 피가 섞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두 번째는 “늑대”로 남자의 상징을 뜻하는 것이다.

작은 집단의 우두머리를 늑대로 표현하였고

칭기스칸의 칭기스가 늑대(치노)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설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세 번째는 “말”로 군대나 힘을 뜻한다.

군대에서 “말”을 담당하는 사람은 대장의 측근이거나 믿을 만한 사람을 두는 것도

유목민에게 그리고 군대에서 말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예다.

 

네 번째는 “양(가축)”으로 재산이며 식량이기 때문에

유목민들에게 중요한 네 번째에 속한다.

몰론 사냥을 하고 그것으로 식량을 하기도 하지만

새끼를 낳는 기간인 겨울 등에는 사냥을 금지하고

또 먹을 것 이상의 사냥을 금지하였기 때문에

주로 양으로 이루어진 가축은 중요한 자산이다.

 

테무진은 태어나기 이전부터 그러니까 그의 부모부터 극한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몽고에서는 데릴사위 제도가 있었는데

남자가 여자의 집에서 몇 년을 노동해야

딸을 주는 형태의 데릴사위로

한 소년이 몇 년의 노력 끝에 결혼을 하기 위해 집으로 가는 도중

한 집단의 공격을 받아 여자를 빼앗기고

그 집단의 한 사람과 강제결혼으로 테무진이 태어났다.

 

그리고 성장하여 결혼할 나이에 데릴사위로 갔다가

아내를 빼앗겨 다른 부족의 남자와 강제결혼 후 자무카와 연합으로

전쟁을 하여 다시 찾는 우여곡절을 격기도 하였다.

 

그러다 한 부족의 대장이 되었지만 의형제 자무카에게 패하여 쫄닥 망하고

옹칸의 도움으로 다시 재건하여 번성하는 듯 하였지만

옹칸의 배신과 다시 자무카에게 패하여 또 쫄닥 망하는 신세가 되는 등

고난과 역경이 쉬지를 않았다.

 

테무진이 자무카에게 두 번째 패하면서 쫄닥 망한 신세가 되는 전투가

‘카라칼지드 사막 전투’인데 이 전투에서 패하고 도망을 가면서

많은 부족들에게 식량과 말을 주면서 살 길을 열어주고

처참하게 패하고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도착한 곳이 “발주나 호수”다.

호수랄 것도 없는 작은 웅덩이 같은 곳에 도착해

주변을 보니 자신을 포함해서 남은 인원이 총 19명,

떠나라고 해도 같이 죽자고 쫒아 온 인원으로

식량은커녕 맑은 물조차 남아있지 않은 실패자. 너무나 비참하고 쓸쓸했다.

 

여기서 딴지 일보의 소설에서의 이 상황을 또 인용해 보자.

테무진의 곁에는 살 길을 찾아 떠나라는 명령을 끝까지 거부한 19명의 전사들이 남아있었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아무 생각도 없었다. 이 시점에서 테무진이 재기할 확률은 고민할 것도 없이 0%였다. 그는 그냥 실패자도 아니고, 실패한 ‘노인’이었다. 아무 조건 없이 함께 죽을 생각이었다는 얘기다. 상식적인 상황에서라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이보다 더 마법적인 것은 19명 각각의 캐릭터였다. 19명 중에 테무진의 친족은 친동생 카사르와 벨구테이 뿐이었다(벨구테이는 없었을 수도 있다.). 나머지 17명 중 최소한 4~5 명은 ‘네 마리 말’과 ‘네 마리 개’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3~4명은 가족을 돌보게 하기 위해 초원에 남겨뒀을 수도 있고, 정신없는 패주길에 통신이 끊어져버렸을 수도 있다. 어쨌든 17명이 누구누구였는지, 각각의 인물은 기록되어있지 않다. 전해진다고 할지라도 모두 구전역사라 정확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사실은 분명하다.

 

19명의 전사들은 출신 종족, 출신 계급, 종교가 각자 달랐다. 이들을 묶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었다. 역사는 이들이 9개 종족(부족) 출신이라고 기록한다. 모국어도 몽골어, 타타르어, 투르크어, 위구르어, 아랍어 등 중구난방이었다. 종교로 가면 더 가관이다. 예나 지금이나 종교는 각종 분쟁의 주요 원인이고,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가장 흔한 기준이다. 그런데 이 19명엔 테무진처럼 무속(텡그리즘)을 믿는 이는 물론 불교도, 기독교도, 이슬람교도까지 있었다.

 

얼마나 처참했으면 전쟁의 승리자인 자무카도 추격을 포기했을까?

여기서 테무진이 죽었으면 더 이상 칭키스칸은 없었다.

세계적 역사의 한 영웅이 극적인 반전을 맞이하는 곳이 바로

발주나 호수의 “발주나 맹약”이다.

 

딴지일보의 저자도 이야기하였지만 삼국지에서의 도원결의가 있었다면

칭기스칸인 테무진에게는 반전의 계기가 “발주나 맹약”이다.

동물 한 마리를 잡아 돌을 뜨겁게 달궈서

그 돌을 뱃속에 채워 고기를 익혀 먹음으로

배고픔에서 해방된 19명의 사내들은 테무진에게 영원한 충성을 맹세한다.

테무진은 잠시나마 생각을 하고 그의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에 건배를 제의한다.

 

술도 술잔도 없이 발주나의 흙탕물을 두 손으로 받쳐 담고

동시에 머리위로 높이 올리고는 원삿으로 ‘발주나의 맹약’이

성립되었고 테무진을 재기를 하여 며칠의 준비 끝에 역사적인 몽골을 통일하고

그야말로 ‘칭기스칸’이 된다.

 

에궁~

망했다 몽골을 통일하는 데 한 줄로 끝냈냐고 뭐라 뭐라 할 사람들은

딴지일보에 가서 “테무진”을 읽어 보시기 바란다.

다 읽을 시간이 없어 극적인 것만 읽고 싶다고?

그럼 재미없지

그래도 시간이 없어 꼭 그렇게 하고 싶은 거시기는

17편과 20편을 읽으면 느낌이 확~ 온다.

 

이건 내가 야그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추천 한 것이니 믿어도 된다.

그럼 전투능력이 조금 떨어진 테무진이

무슨 실력으로 몽골을 통일 했냐고?

삼국지에서 유비 곁에 재갈량이 있듯이 테무진 옆에 지략가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조조처럼 꾀와 처세술이 능했던 것도 아니다.

그럼 뭐가 뛰어났냐?

이게 내가 할 일이었다.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며 비즈니스를 하고

모임을 이끌어가는 지도력에 꼭 필요한 것이기에

요약을 하니 잘 기억해 두었다고 사용하기를 바란다.

(실은 내가 쓰려고 요약했던 건데 공짜고 제공하는 바이다)

 

1. 테무진은 남의 말을 잘 듣는다.

테무진은 자기가 무엇을 하기 전에 남의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청취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이미 Go~ 했어도 다른 의견이 있으면 또 듣고

자기가 잘 못한 것을 깨닫는 순간 잘못을 시인하고 방향을 수정한다.

모르면 모른다고 했고 권위적이지도 않았으며

수했을 때는 아랫사람에게도 즉시 미안하다고 했다.

어머니나 아내가, 그리고 부하가 지적을 해도 즉시 고치는 잘 듣는 사람이다.

 

2. 테무진은 베푸는 사람이다.

이를 거꾸로 이야기하면 착취하지 않고 자기 욕심을 줄이고 베풀 줄 아는 사람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카라칼지드 사막 전투’에서 패하고 도망을 가는 순간에도

백성들이 살아갈 길을 터주고 보내주며

부하들에게 끝없는 사랑을 베푼다.

 

전쟁을 하여 적을 무찌르고 발생한 고아들을 챙겨

먹여주고 재워주는 등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 같은 사랑은 테무진이 몽골을 통일하고 죽은 후에도

중앙정부에서 준비하는 아침식사가 만 명분이었다고 하는 것을 보아도

그의 베푸는 마음이 이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직을 이끌어 가는데 베푸는 중요한 요소는

평등정책, 공정한 분배, 복지를 추구하였다.

 

여기서 잠시 몽고, 몽골 등의 헷갈리는 분이 있어 정리를 한다.

테무진은 원래 몽골족이다. 그러니까 몽골부족의 일원이라는 것이다.

그러다 발주나 맹약 이후에 몽고평원을 통일하고 만든 국가가 “몽골”이다.

 

몽골이라는 명칭에 대해 딴지일보의 내용을 다시 인용해 보자.

테무진의 칭기스칸 등극에 의해 출범한 나라의 국호는 '예케 몽골 울루스'이다.

'예케'는 '크다'는 뜻이다. '울루스'는 독자여러분도 익히 아시다시피 백성, 혹은 그 백성이 모인 집단을 뜻한다. 울루스는 원래 다양한 형태의 사회집단을 의미한다. 나라뿐 아니라 부족, 씨족, 부족연합체도 울루스라고 한다. 그래서 앞에 '예케'라는 말을 붙여 사이즈를 키워 놓은 것이다.

 

예케 몽골 울루스는 '대몽골'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우리는 그냥 '몽골'이라고 하면 된다. 이제부턴 '몽골인'과 '몽골족'을 헷갈리지 말자. 몽골족은 테무진을 배출한 작은 부족에 불과하다. 몽골인은 테무진이 칭키스칸으로 등극할 당시에 초원에 살던 유목민 전체이며, 예케 몽골 울루스의 국민이다.

 

그렇다면 테무진은 언제부터 이런 국가건설의 꿈을 키웠을까?

테무진이 처음 쫄닥 망하고 재기를 위한 준비를 하는 과정에

“모전벽의 사람들”이라는 용어를 썼다고 한다.

그들이 사는 천막을 게르라고 하는데 이 천막을 모전, 즉 펠트로

모전벽의 사람들이라는 것은 '게르에 사는 유목민' 전부를 뜻한다.

삶의 방식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요즘 말로 하면 '문화공동체'로 정확히 번역된다고 한다.

이후에 발주나 맹약에서 몽골제국의 정체성이 시작되고 성립되면서

사회가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완전한 사상적 정립을 이룬다.

테무진은 바로 발주나에서 비로소 완성된 사상가이자 혁명가, 정치가로 성장한다.

 

두 번째 쫄닥 망하는 카라칼지드 사막 전투 패배가 테무진에게 학습의 끝,

마침표였다고 한다면 발주나 맹약 이후

테무진은 흡사 전술의 신이라고 부를 만한 능력을 발휘한다.

테무진은 테무진 개인의 ‘지도력’이 아니라,

그가 만들고 관리한 시스템에 의해 성공한 것이라고 한다.

다시 테무진의 능력을 이어가 보도록 하겠다.

 

3. 테무진은 사람을 중용하였다.

당시에 유목민들도 귀족과 평민, 노예계급 등이 있었다.

그러나 테무진은 지위나 신분을 고려하지 않고 능력이 있으면 중용하였다.

테무진이 몽골을 통일하는데 가장 충직한 부하 4명이 있었는데

“네 마리 준마” 와 “네 마리 개”가 있다.

준마, 개 하면 어감이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

(앞에서 소개하였듯이 몽골족에게는 중요한 네 가지를 상기하기 바란다.

단, 여기서 개는 늑대와 같다는 뜻이다.)

 

그 들은 천민과 노예 출신도 있고 자기를 배신했던 사람도 있다.

몽골을 통일하는 과정에 마지막 전투가 자무카와 나이만 부족인데

나이만에는 위그르에서 초빙한 타타통아라는 있었는데

통일을 하고 그를 몽골의 재상으로 중용하였고

몽골 문자를 만들도록 하였다.

 

물론 세종대왕처럼 세종대왕처럼 전혀 새로운 형식의 문자치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타나통아의 본국인 위그르 문자를 초원사람들의 발음에 맞게 개량한 것이다.

조금 어긋나지만 이렇게 몽골 문자를 만들도록 한 테무진은 죽을 때까지 문맹이었다.

노력을 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결국은 문맹으로 운명을 하였다고 한다.

테무진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에 대해

"테무진은 가슴에 재능이 있다."고 하였다.

이는 자신과 관계를 맺는 사람들을 대하는 데

남다른 면모가 있다는 얘기로

누구도 억울하게 하지 않고,

누구한테나 같은 원칙으로 대하는 공정하다는 뜻이다.

 

4. 테무진은 약속을 깨지 않고 끝까지 상대를 믿는 사람이다.

자기 아내가 납치를 당할 때 반듯이 찾겠다는 약속을 하였고

적군과 강제결혼하여 임신까지 하였지만 다시 찾아

첫 번째 부인으로 맞이하여 평생을 살았고

양아버지 옹칸의 끝없는 배신에도 그를 믿고 지원하고

또 속아도 믿어주는 우직한 사람이다.

 

눈뜨고도 속고 속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쉽지 않겠지만 서로 믿고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기에

테무진의 네 번째 능력으로 등록시킨다.

'책을 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君君 臣臣 父父 子子  (0) 2012.09.19
사장이 알아야 할 모든 것  (0) 2012.09.04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0) 2012.07.31
왕멍의 인생철학(나는 학생이다)  (0) 2012.04.11
나는 학생이다  (0) 2012.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