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여행 773일째, 2017년 8월 1일(화) 애틀랜타/맑음
조금 늦게 퇴근해서 저녁까지 먹고 난 지금 시각이 7시 12분,
머릿속은 텅 빈 것 같고 기분은 많이 꿀꿀하다.
오늘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보냈는지 그냥 백지,
이대로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설거지에 내일 아침 마실 커피 Setting, 그리고 이도 닦아야 한다는 생각,
참, 저녁 먹은 지 얼마 안 지났으니 소화도 좀 되어야 한다.
기억을 더듬어 왜 이렇게 꿀꿀한 지 찾아야 한다.
모닝콜에 일어나 커피에 아침 먹고 스트레칭, 그리고 샤워, 출근
그래, 그건 거의 매일 하는 순서, 그렇게 했지.
출근해서 시스템 백업하고 골프장으로 갔고
연습하다 Eric과 함께 18홀을 마치고 샤워한 것 까지도 똑같다.
다르기 시작한 것은 샤워 직전에 샐러드를 주문하면서
“오늘은 Togo가 아니고 여기서 먹겠다.”
맞아 여기서부터 달랐다.
앉아서 점심을 먹으며 인터넷을 뒤지며 공부를 했다.
오늘 비뇨기과에 예약되어 있기 때문에 의사와 나눌 기본적인 단어를 찾았다.
한 번도 ‘전립선’이 영어로 뭔지 필요한 일이 없었기에 생소한 단어다.
알게 된 것이 ‘Prostate’
작은 혹은 뭐라고 하지, 하고는 찾아 낸 것이 'Plum'
지난 12월에 년 말 피검사를 하러 갔을 때 의사 왈
“1년에 한 번 하는 정기검진을 하지요”라는 말에 그러라고 했지만
석원희가 아니고 여자의사라 조금 망설였지만 어쩌랴.
그 때 손가락을 항문에 넣어 전립선을 더듬고는
‘왼쪽에 조금만 혹이 만져지는데 전문의한테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며
대장내시경도 8년 되었으니 둘 다 가라고 하였다.
해서 대장내시경은 예약을 하여 1월에 마쳤지만 추천한 비뇨기과에 예약이 쉽지 않아
뒤로 미루다 가지 않게 되었다.
그 때 피검사에서 백혈구 수치가 약간 낮다며 3개월 뒤 다시 검사하자 했고
지난 3월에 검사를 하곤 나쁘지 않지만 혹시 모르니 3개월 뒤 또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7월초 백혈구 확인을 위한 피검사 예약을 하곤 석원희를 찾았다.
“대장 내시경은 조그만 혹이 세 개 나와 조직검사를 했지만 이상 없지만
혹시 모르니 3년 뒤 다시 하라는 결과가 왔고, 비뇨기과 검사 결과는 없네?“
“안 갔는데요?”
“왜요?”
“예약을 하려고 시도하다 잘 안 돼서 괜찮겠지 해서요”
“아니요. 꼭 가야해요. 이번에 다른 의사를 소개 할게요. 거긴 그런 일 없을 겁니다”
“네”하고 대답했지만 별 관심이 없다가
예전에 대통령 후보였었던 존 매케인이 전립선암 수술 받았다는 뉴스를 듣곤
바로 예약한 비뇨기과 방문이 오늘 오후2;30.
골프를 마치고 클럽에서 점심을 먹은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어제까지도 비뇨기과 가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였지만
막상 가는 날이 되니 은근히 걱정되었다.
예약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해서는 처음 가는 병원 늘 그렇듯이
복잡한 서류를 작성하는데 거의 30분을 시험 보듯 어렵게 빈칸을 매워야 했다.
잠시 기다리니 이름을 불러가는 데 한국인 간호사
대부분을 한국말로 하니 미리 공부한 게 별 필요가 없는 듯하였다.
작성한 서류를 근거로 한 참을 묻고, 대답하고 다시 확인하곤 혈압까지 재는 것 거의 동일,
간호사가 나갔다 의사와 함께 들어오는데 중동사람 비슷하다.
이름도 복잡해 기억하기 매우 힘든 <Derek Prabharasuth>,
와! 이걸 어떻게 발음하지?
데렉 프랍하라스?
실은 이것도 다음 주 가야하는 예약 표에 있는 것을 보고 적은 것이다.
간호사와 했던 말을 반복하지만 서툰 영어로 설명하자 찰떡같이 알아듣는지
몇 가지 묻고는 바지 내려 엉덩이 까고 침대에 엎어져
이거 손으로 전립선 검사 한다며 고무장갑 끼고 젤 바른 다음 항문을 쑤시는 거다.
1년에 한 번씩 하는 검사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다.
조금 차가울 거라는 말과 함께 푹 쑤셔서 검지손가락으로 구부렸다·폈다·돌렸다 하는
의사들이 하는 말로 촉수검사를 하더니
"Dr. Kim이 이야기 했던 대로 조그만 혹이 있다“며
피검사 결과 중 뭔가를 묻는데 도저히 모르는 것,
그래서 모른다고 하니 몇 가지 검사를 하고 다시 보자더니 휴지를 건네주며 항문 닦으란다.
의사가 간호사와 함께 나가더니 다시 간호사 혼자 들어와
“심전도 해 보셨죠?”
“네”
“이것도 그것과 비슷한 건데 가슴이 아니고 아래를 검사하는 겁니다”
“네”
“바지 무릎까지 내리고 침대에 누우세요. 무릎을 구부릴 겁니다”
침대에 누웠더니 정말 심전도 할 때 비슷한 패치를 몇 개 붙이고
한 참을 검사하고 “네 잘 끝났습니다. 기다리시면 피검사 하러 갈 겁니다.“
또 한 참을 기다리니 다른 간호사가 와서 어디론가 데려간다.
피 뽑는 곳, 그들의 말로 Lab
앉으라는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데 뭘 그리 하는지 또 한참
그러는 사이 냉장고에 붙인 몇 가지 문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Lab 안에서는 음료나 음식을 들고 다닐 수 없다.
-Lab 안에는 음료나 음식을 보관할 수 없다.
-Lab 안에서는 츄잉 껌을 씹을 수 없다.
-Lab 안에서는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다.
그걸 몇 번을 읽을 동안 간호사는 등을 돌리고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린다.
한 참 만에 돌아서 피를 담을 시험관, 붙일 레이블, 주사기, 닦을 거즈, 피 뽑고 붙일 밴드
제사 지내는 듯 경건하듯 정말 답답할 정도로 느릿느릿, 한 가지씩 준비를 마치더니
마지막으로 팔을 붙들어 맬 넓적한 고무줄을 손에 들고는 주먹을 쥐란다.
기다린 시간은 30여분, 피 뽑고 밴드 붙이는 시간은 1분
이런 젠장 헐~
다시 원래 방으로 가란다.
또 한 참을 기다리니 한 간호사가 나를 따르라며 길잡이를 한다.
문을 나서는 데 아까의 한인 간호사기 보이기에 “가는 겁니까?” 물으니
“아니요, Utla Sound"
‘아참! 맞아 그거 한다고 했었지?’
피 뽑던 Lab을 지나 제법 큰 방에 침대가 있고 뭔가 기계가 많다.
길잡이 간호사가 Lab의 간호사에게 나를 인계하니
"I'm sorry for waiting. Too busy"
그리곤 침대에 바로 누우라더니 바로 다시 옆으로 누우란다.
숨을 크게 들이 쉬어라, 멈춰라, 다시 크게 들이 쉬어라, 멈춰라.
한 참을 그렇게 하곤 반대쪽,
또 한 참후 바로 누우라더니 또 한 참
그 사이 옆구리와 배에는 젤을 잔뜩 발라 문지르니 끈적거리는 것 같은 불쾌함
다 되었다고 이러나라더니 페이퍼타올 한 뭉치를 주며 잘 닦으란다.
그리곤 다시 원래 방으로 가서 기다리면 의사를 만날 수 있다는 친절한 안내,
이 때가 병원에 도착한지 거의 두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다.
10여분 넘게 책을 읽으며 기다리는 데 의사와 한인 간호사 노크하며 등장
Derek 선생님이 그림으로 설명하는 게 좋겠다며 White Board에
얼굴, 상체, 그 안에 신장, 방광, 전립선을 그리더니
신장과 방광은 이상 무,
와 거기까지 기분 좋았다.
하지만, 잠시 멈추더니 “소변보는 데 별 문제없느냐?“고 묻기에
“겨울엔 좀 그렇지만 지금은 문제없다”고 대답하니
일반사람의 전립선이 25~30이라면 나는 35쯤 돼서 조금 크단다.
‘뭐~ 일반적으로 나이 들면 커진다고들 하니 그쯤이야’하는데
손에 만져지는 혹이 문제니 조직검사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지만 피검사를 보고 결정 하잔다.
순간 ‘안 좋은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걸 읽었는지
대체적으로 별 일 아니라는 말을 편하게 한다.
1주일 같은 시각에 다시 찾기로 예약을 하고 병원을 나섰다.
집으로 바로 갈까 하다가 오후에 Sales Office 바닥 공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사무실로,
사무실에 도착하니 Christian이 맞이하며 바닥은 다 뜯어냈지만 젖어서 내일 공사할 예정이고
Gutter를 청소 중이라 마칠 때릴 기다리고 있었다.
청소하는 사람 인건비 수표를 발행하고 내일 아침에 할 몇 가지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데
어찌나 기분이 찝찝하고 꿀꿀하던지, 집에 가서 밥 먹는 것조차 귀찮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귀에서 윙윙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크게 잘 못 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음악을 틀고 ‘괜찮을 거야’를 반복해 보지만 홀로 된 것 같은 멍함이 떠나질 않는다.
나 자신을 달래며 닭백숙을 데우고 김치를 썰어 저녁에 포도로 후식까지 먹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기분은 계속 꿀꿀하다.
하루가 긴 것 같고 뭘 했는지 감감하기도 하고 빨리 잠들고 싶은 마음이다.
별 일 없겠지?
그치?
오늘 하루도 이렇게 간다.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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