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 여행

천일여행 823일째, 2017년 9월 20일(수) 애틀랜타/맑음

송삿갓 2017. 9. 21. 09:01

천일여행 823일째, 2017920() 애틀랜타/맑음

 

제가 좀 join해도 되겠어요?”

 

클럽의 1번 홀에서 드라이버 티 샷을 하려고 Addressing을 하고 있는데 들린 소리로

Yang Kim 선생님의 말소리가 신기하면서 반갑다.

안 되겠는데요

"Thank you"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늘도 아해의 어김없는 모닝콜에 일어나니

몸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대로고

스트레칭을 하였고

출근을 했으며,

어제와 똑같이 운동하러 골프장에 왔고

골프장이 그대로고

Jim이 인사하는 것 또한 어제와 똑 같다.

 

단지 어제 오후에 의사한테 들어 기억하고 있는 몇 단어

Cancer, MRI, Very low risk······

그 몇 마디 말로 인해 마음이 복잡해졌고 기복도 심해졌다.

그냥 편하게 생각하자고 다짐했음에도

순간 치받치는 의아함 같은 거

이제 즐겁고 멋있고 행복하게 잘 살아보자는 길로 들어 선 것 같은데

그래서 매일 즐겁고 행복하다고 믿고 있었고

적어도 30년은 그렇게 살 수 있을 걸로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어하지만 많이 튀어나오는 단어가 나에게도 쓰여 질 줄이야!

 

어제 의사에게 그 말을 듣고 아해와 저녁과 아침에 통화하고

처음 대화를 하는 사람이 클럽의 1번 홀에서 Yang Kim이었으니

내 몸은 물론 세상이 어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내 몸에 있는 그 친구 역시 어제 아침에도 있었지 않는가?

단지 오후에 의사를 만나고 알았을 뿐인데 어제 아침처럼 생각하자.

 

김 선생과 서로 “Nice Shot”을 주고받으며 골프를 하는데 곽 회장이야기를 한다.

지난 주 토요일 430,

Tee Sheet에 나와 안 사장, 그리고 곽 회장과 김 선생 등 넷이 Booking이 되어 있었는데

18홀을 다 못칠까 걱정되어 안 사장과 둘이 4시에 출발하였기에

우리가 미리 나간 것을 모른 체 두 분이 골프 한 이야기를 김 선생이 하는데

곽 회장이 벙커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도 버거워 할 정도로 건강이 안 좋단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몸이 좋지 않은 노인이 어떻게든 해 보겠다고 운동하러 나오시는데

우리는 함께하면 18홀을 못 마칠까 생각하여 미리 나가 버렸으니 이런 못 된 젊은 친구들!’

 

그냥 몸에 염증하나 있는 체로 산다고 생각해

운동을 마치고 사무실로 내려오는데 아해가 너무 염려 말라며 했던 말이다.

뭔가에 집중하면 본격 연구로 들어가는 아해가 이런저런 이야기 들려주며 위로하고

이것저것 가릴 것과 더 먹을 것,

거기에 당장 Order해서 먹기 시작할 것들을 알려준다.

 

나도 어제 저녁 증상과 치료법 등의 관련 된 자료를 찾기 시작하다 바로 멈췄다.

마음이 복잡한데 혼란스럽고 무서워지는 것이 싫어서였을까?

아님 귀차니즘이 발동한 걸까?

귀에서 나는 윙윙 소리가

공허해지는 마음이

아해에 대한 미안함이

깊어지는 것이 싫어서 그랬던 것 같다.

 

운동을 마치고 샤워하러 들어가는 중에 MRI 하는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다음 주 목요일 오후에 오라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가 8주 후에 하랬다며 1120일로 바꾸잔다.

1120?

아해에게 가 있고 싶은 시기 아닌가?

그 때의 일정을 몰라 바꿀 수 있느냐?“물으니 그렇다기에

일단 "Yes"

 

사무실로 오면서 아해와 통화를 하고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편하게 점심을 먹고 모두 나간 사이 Slabs Delivery가 와서

오랜만에 포크리프트 운전하여 Frame에 내리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아니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각인시키기라도 하듯 오후를 보냈다.

일단 아해의 주문대로 Dr Seok 예약을 위해 전화를 걸었더니

비뇨기과에서 이미 모든 자료가 도착했다기에 월요일 방문 하는 것으로 예약하였다.

 

퇴근길에도 아해와 통화를 하면서 과일이나 우유, 콩 같은 것을 많이 먹어야 하고

집에 보관하고 있는 스팸이나 냉동실에 오래 된 것들을 버리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제 좋은 것 잘 먹고 더 조심해 살면 오히려 더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도 하면서 말이다.

 

집에 도착해서도 아해와 잠시 통화를 하곤 바로 냉동실 정리를 하였다.

가장 아까운 것은 현미와 쑥 가래떡 10팩을 버려야 하는 것이지만

그 또한 오래 되었기에 과감하게 정리하였더니 냉동실에 빈 공간이 많아졌다.

많이 채우지 않고 조금 귀찮더라도 자주 사서 싱싱한 것으로 먹을 것을 작심하였다.

 

알찌개, 삼치구이, 김치 등으로 저녁상을 차려 먹고는 설거지를 하는데

동기인 고영준에게서 전화가 왔다.

애틀랜타지역에 같이 살면서도 몇 안 되는 동기들과 만나는 것은커녕

연락도 자주하지 못하는데 통화를 하면서 지난 번 통화가 1년은 족히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통화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낮에 보다는 편한 마음이었다.

 

어제 잠을 많이 자지 못해서 그런지 밥을 먹고 나니 급 피곤해지는 게 자꾸 눈이 감긴다.

그럼에도 너무 일찍 잠자리에 들면 새벽녘 깰 것이 걱정되어 TV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오늘,

아해 말에 의하면 나는 정말 꾸러기다.

나도 그걸 안다.

그래서 미안하다.

그래도 기댄다.

어려웠지만 아해의 도움과 격려로 잘 보냈다.

내일도 정면 돌파······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