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마흔 살이 되었다네.”
박 정달 씨는 공중전화 박스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겨울이었다. 해자지고 있었다.
“오늘이 자네 생일인가?”
“아닐세.”
식어빠진 알루미늄 색 햇빛 한 자락이 공중전화 박스 유리문에 기력 없이 드리워져 있었다.
“내 생일은 벌써 두 잘 전에 지나가 버렸네.”
“잘 안 들리는군. 큰 소리로 이야기하게.”
전화기 속에는 심한 잡음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 것 같았다. 뚜껑을 열고 솔질을 하면 건조한 말의 부스러지들이 바스라진 지푸라기처럼 부스스 떨어져 내릴 것 같았다.
“서른 살 때보다 형편이 나아진 것이라곤 전혀 없다네.”
“감이 너무 멀다니까.”
“마누라도 이제는 너무 낡아 버려서 내다 버리고 싶은 심정이라네.”
“우리 마누라 말인가?”
“아니 우리 마누라 말일세.”
“자네 마누라가 어떻게 되었다는 건가?”
대화가 서로 엇갈리고 있었다.
“아이들도 이제는 내게서 전혀 위엄 같은 걸 느끼지 않고 있다네.”
“아이들이 위험을 느낀다니 무슨 말인가?”
“위험이 아니라 위엄 말일세.”
혼선이 되었는지 점차로 잡음이 심해지고 있었다. 전혀 낮선 음성들이 또 다른 내용의 대화로 통화를 하고 있는 소리도 섞여 들리고 있었다.
“인생은 40부터라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나?”
“뭐라구 했나?”
“인생은 마흔 살에 끝이라구 했네.”
이 때 통화 제한을 알리는 신호음이 몇 번 규칙적으로 박 정달 씨의 고막에다 자극을 가해 왔다.
“이젠 끊어야겠군. 건투를 비네.”
“권투?”
그러나 어느 새 통화는 끊어져 있었다.
1982년 11월에 초판인 이외수의 소설 “칼”은 이렇게 시작한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편지와 전화만으로 사귀는 친구와 공중전화라는 문명의 기계를 이용하여 대화를 시도하지만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공중전화 대신 스마트폰으로 잡음 없이 대화를 하고 문자를 주고받지만 그래서 소통이 잘 될 것 같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소통이 잘 안 되는 것은 기계의 발달이나 잡음하고는 큰 관계가 없는 것으로 여겨져 조금은 씁쓸하기도 하다.
박 정달은 태어나 자라면서 특별하게나 뚜렷하게 내 세울 것이 없는 사람이다. 공부를 특별히 잘 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재주도 갖지 않았으며 운동에 까지 소질이 없어 약간은 주눅이 들어 사는 평범한 사람이다. 고등학교 시절 폭력 써클에서 싸움만 잘 하는 사람보다는 조금은 공부도 하는 대상을 찾던 중 박 정달이 낙점되었고 그들이 폭력까지 행사하며 자신들과 함께할 것을 거절한 박 정달은 자신의 보호 목적으로 과도를 품에 가지고 다니게 된 것이 칼과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칼이 위로가 되지 못해 다른 칼을 그리고 또 다른 칼을 반복해서 찾는 것이 계기가 되어 많은 칼을 소유하게 되었고 칼을 소유하면서 칼에 대한 지식을 공부한 것이 결국은 칼 소집가가 되었다.
그는 여려 종류의 칼을 소유하기 위해 계속 지식을 습득하는 곳은 물론 칼을 찾아 여행을 하고 칼을 갖기 위해 돈을 벌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그의 별명이 칼맨이 되었고 잡지사에 다니는 선배가 그의 칼에 대해 기사를 쓰는 것을 계기로 대한민국의 1인자 칼잡이 아버지를 둔 젊은이와 편지를 하게 되면서 친구가 되었고 신검에 대한 꿈을 갖게 된다.
박 정달은 그저 묵묵한 직장 생활을 하였다. 다른 직원들처럼 불만을 가지지도 않고 승진을 하기위한 권모술수나 아부도 하지 않았으며 연줄을 만들지도 않으며 자기 맡은바 열심히 하는 회사원이었다. 때문에 마흔에 권고사직을 당한다. 신검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던 그가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하자 신검을 직접 만들기 위한 행동을 시작한다. 대장장이 출신의 정군을 조수로 채용하고 편지로 만난 친구를 통해 그의 칼잡이 아버지에 더욱 집중하게 되고 심령과학 연구소를 하는 처삼촌에게 마음 수련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동네의 조그만 정비소를 찾아 대장간으로 개조하여 칼을 만들기 시작한다.
“신검”, 박 정달은 신검을 직접 만들기 위한 각오나 결심은 이 책의 작가 이외수가 밝힌 각오를 보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누구의 가슴 속에든, 칼은 있다. 저마다의 빛나는 칼이 있다. 그러나 좋은 칼은 결코 쉽게 칼집에서 나오지 않는 법이다. 모든 칼은 본능적으로 피를 그리워하는 법이지만, 좋은 칼은 본능을 능히 억제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진다는 얘기다. 그것은 한갓 연장이나 무기로서가 아니라 도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좋은 칼을 갈듯이 펜을 갈겠다.”
그렇다면 비정상적이라고 듣는 박 정달을 따라 신검제작에 동참하게 된 정군은 어떤 마음일까? 신검에 동참하고 신검 만들기가 끝나면 박 정달의 처삼촌이 운영하는 심령과학 연구소에 들어갈 것을 다짐하는 정군의 이런 마음 표현이 있다.
“세상을 살아하는 데는 우선 여러 가지의 욕망과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어느 정도의 야비성이 필요한 법이다. 순박하고 정직하며 가난하고 선량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더러는 형편을 봐서 재빠른 새치기도 할 수 있어야 하고, 적당한 사기도 칠 줄 알아야 하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땅을 사고, 빌딩을 짓고, 망할, 그러기 위해서는 때때로 타인을 잡아먹을 수 있는 힘과 전술도 가지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겸손 따위는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도덕과 양심 같은 건 껍질뿐이다. 법관도 의사도 교육자도 예술가도 성직자도 거지도 거의가 타락해 있다. 그 정도는 그는 이제는 충분히 알 수가 있다. 그런데도 대부분이 타락해 있다고 시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시인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은 별로 없다. 이제는 양심적인 사람일수록 바보 취급을 받게 되었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은 박 정달과 정군은 결국 신검을 만든다. 그리고 그 신검을 사용할 칼잡이를 기다리는 박 정달에게 어느 하루 대장간에 칼의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왔다는 도인 같은 노인이 찾아와 하는 말 “신검은 미완성”이라고 한다. “왜, 그렇느냐?”는 박 정달의 질문에 칼은 “피를 한 번 먹여야 한다.”는 대답이었다.
소설은 이렇게 긑을 맺어간다.
그 날은 금요일.
새벽부터 오십 대 전후의 사내 하나가 우체국 앞에서 시계를 들여다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해가 다 뜰 때까지도 그가 기다리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루종일이라도 그 자리에서 기다리겠다는 듯 몇 시간이고 시계를 들여다보며 서 있었다.
신검을 만든 박 정달 씨가 소설의 시작에 통화를 했던 편지와 전화로만 사귀던 친구와 금요일 새벽 처음으로 만나기로 한 장소가 우체국 앞의 우체통이다. 박 정달은 오지 않고 그 친구는 기다리고만 있다.
물론 소설은 그 뒤 몇 줄의 내용이 있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다. 위에 있는 줄거리만으로도 유추하여 끝을 맺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2012년 마지막 주부터 2013년 첫 주까지 출판이 30년 된 누렇게 바랜 책들 몇 권과 함께하였다. 책장을 넘기면서 마른 종이에서 나오는 소리와 냄새에 훔뻑 취하면서도 작은 글씨 때문에 눈에 피로가 쉽게 왔다. 오래된 많은 책들이 잇는데 더 나이 들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과 함께 훅~ 하고 다가온 것이 있다.
Tablet에서 읽는 전자서적인데 종이 넘기는 소리도 나지 않고 냄새도 없다. 글씨 크기도 내 맘대로 바꿀 수 있고 수백 권의 책을 Tablet 하나에 담고 다닐 수도 있다. 지난 30여년 동안 모은 책이 2천여 권인데 그 보다 많은 분량을 Tablet에 담고 다닐 수 있게 된 문명 기계의 발달에 앞으로 30년 뒤 또 어떻게 변할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럼 책장에 있는 저 책들은 어떻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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