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여행 889일째, 2017년 11월 25일(토) 한국용인/흐림, 오후/저녁/비
어제와 비슷한 5시를 조금 넘겨 일어났다.
어머님이 무엇을 하시는 지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한 참을 듣고 나서야 몸을 일으켰다.
콩과 호두 간 것에 인삼 한 뿌리 먹곤 잠시 시간을 보내다 다시 침대로 향했다.
1시간 조금 넘게 누워 있었는데 잠깐 깜박 잠도 잤다.
다시 몸을 일으켜 어머님과 아침을 먹었다.
오늘 아침의 특별메뉴는 아욱국,
어제 낮에 오랜만에 장에 가서 아욱을 비롯해 몇 가지를 사 오셨단다.
다시마와 멸치로 국물을 내곤 된장을 푼 뒤 끓이다 아욱과 바지락을 넣고 한 참을 더 끓이셨다.
이럴 때 어머님의 자주 하시는 말씀
“나는 고깃국 보다 이런 게 좋다.”
국에 밥을 말아서 제대로 씹지도 않고 후루룩 드시면서 그러신다.
이어 나오는 말씀은 외할머니가 시금치나물무침을 좋아하셨단 이야기까지 마쳐야 한다.
“고깃국 못 해줘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한 그릇 뚝딱 해치우신다.
그래도 아직은 대체적으로 소화에 큰 문제가 없는 듯하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침식사에 이어 Mix 커피까지 먹고 나서는 채비를 차리고 집을 나선다.
이태 전까지만 해도 어머님과 둘이 함께 아침을 걸었지만 작년부터는 못 나가신다.
용인천을 한 시간 가까이 걷는데 영하의 날씨를 충분하게 느낄 정도로 차갑다.
집으로 돌아오니 방울토마토와 귤, 사과를 한 접시 준비해 놓으시곤
과일 먹으라고 성화를 하신다.
화장실, 샤워에 이어 자리를 잡고 과일 먹는 것으로 아침을 보냈다.
센트럴시티
말로 듣고 몇 번인가 슬쩍 지나쳐 보기만 했던 곳에서 오늘 오후와 저녁을 보냈다.
점심시간 무렵 아해와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었던 것은
‘무식한 사람이 용감하다.’는 말을 그야말로 실감케 하였던 무모하고 아찔한 시도였다.
내 머릿속에 있는 여러 노선이 교차하는 조금 복잡한 역 ‘고속버스터미널’이 아니었다는 의미다.
그곳에서 만나자는 약속만 하고 집을 나서 거의 도착할 무렵
먼저 도착한 아해로부터 전화가 왔고 “1번 출구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대체적으로 그런 약속을 하면 출구 번호만 보고 찾아가면 쉽게 만나기 때문이다.
20여분을 헤매다 겨우 만났고 아해를 만나려 찾다 우연히 지나친 굴국밥 전문 식당,
한 참 줄을 서서 기다리다 비집고 자리한 곳에서 매생이굴국밥에, 굴전으로
만나지 못해 헤매던 애타던 마음을 달래며 점심을 푸짐하게 잘 먹었다.
그 때까지도 그곳이 그렇게 넓고 복잡하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지만
돌아다닐수록 많은 사람들과 복잡함은 내가 어디를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갔던 길을 돌아 왔음에도 처음 보는 듯한 느낌과 분위기에 사로잡혀
길눈 밝고 촉감 좋기로 유명한 나는 유령이 되어버렸다.
잠시 쇼핑하자고 돌아다녔지만 북적이는 사람들에 떠밀려 다니는 듯 했다.
그러다 한 곳에서 털모자 한 개와 뜻하지 않은 조끼를 선물 받고
봐 두었던 곳에서 팥빙수 먹으며 마음을 가다듬으며 쓸어내려야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아해가 귀국길에 샀던 내 생일 선물은 압권이었다.
전혀 기대도 못했던 <몽블랑 만년필>
하루 종일이라도 찬양하듯 읊어낼 수 장점의 만년필을 선물로 받으니
이리저리 헤매는 와중에도 만년필을 빨리 써보고 싶은 마음이 두둥실 떠 다녔다.
내일 잉크를 가져오겠다는 아해의 말이 야속하게 들릴 정도로 말이다.
나 혼자였더라면 잉크를 사러 다니느라 정신없이 돌아다녔을 게다.
짬만 나면 꺼내 보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지만 혹여나 떨어뜨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그러지도 못하고 누군가 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 자꾸 등에 있는 가방을 보았다.
예전에 소매치기들이 돈 있는 가방을 냄새 맡는다는 이야기가 오늘의 내 행동 같았으리라.
오늘 만남의 주 목적 중 하나인 아해의 한복을 맞추기 위해 이동하였다.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 역에 도착해 밖을 나가려니 주룩주룩 비가 많이 내린다.
스타벅스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다 조그만 우산에 의지해
한복집으로 이동하여 자리를 하였다.
한 참 설명을 듣고 결정해서 결재를 하는데 횡재한 기분이 들었다.
원래 생각했던 것 보다 절반 정도의 가격에 두 벌을 주문했으니
나는 물론 아해도 놀라워하며 그곳을 떠났다.
비가 계속내려 조그만 우산에 둘이 의지하려는 모습을 보며
그곳의 원장이 아담한 우산을 하나 선물하기에 받아 들고 썼다.
다시 센트럴 시티로 와서는 아까 보다는 더욱 놀라야 했다.
비가 와서 더 그런지 더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며 어느 한 곳 엉덩이 붙일 곳 찾기가 어려웠다.
의자 비슷하게 생긴 곳은 만원,
한 참을 돌다 조그만 카페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것을 보며 잽싸게 들어가 앉을 수 있었다.
커피를 주문하여 마시면서 만년필을 다시 꺼내 보다
내일 잉크를 가져 온다는 아해에게 집에서 잉크를 넣어오라며 잠시 이별하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저녁을 위해 이탈리안 식당으로 가서 30여분을 기다리고 나서야
겨우 테이블 하나가 우리 차지가 되었다.
샐러드와 파스타, 그리고 아해는 맥주 한 잔을 주문하여 즐겁게 저녁을 먹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좌불안석이 되어 가는 게 또 떨어져야 한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럼에 도 어쩔 수 없는 일,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몸을 일으켜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몸이 고단하기는 한데 함께 보낸 하루가 즐거워 기분 좋은 고단함으로 바뀌었다.
지하철을 타고 역에서 빠져 나오니 아까보다 잦아지긴 했지만 비는 계속 내렸다.
집에 도착해 샤워를 하고 어머님과 잠시 이야기를 하다 잠자리에 들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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