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로마인 이야기 12권 <위기로 치닫는 제국> - 시오노 나나미

송삿갓 2018. 1. 29. 23:38

로마인 이야기 12<위기로 치닫는 제국> - 시오노 나나미

 

12권의 이야기는 서기 211년부터 284년까지 73년간의 이야기다.

이 기간 동안 로마는 공동 황제를 포함 22명의 황제가 있었다.

그 중 발리아아누스 황제는 7년을 통치했지만 전대미문의 산채로 포로로 잡혀 옥사,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2), 타키투스(8개월) 2명의 황제는 병사,

카루스 황제는 사고사로 1년 통치,

고르디아누스 2(보름)와 데키우스(2) 황제는 전사,

고르디아누스 1(보름)와 필리푸스 아라부스(5) 황제는 자살,

그럼 나머지 14명의 황제는?

모두 암살

아무리 튼튼한 제국이라 해도 이처럼 대부분의 황제가 자살과 암살, 전사로 얼룩져 있다면

누가보아도 막장으로 가는 위기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전에도 암살이나 자살한 황제가 많았지만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를 아우르는

로마인 본래의 사고나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지만

3세기 73년 동안은 위기를 극복하기에 급급하여 방황하면서

로마라는 정체성을 잃어가는 위기는 심각할 수밖에 없다.

물론 로마제국이 3분 된 이후 즉위한 아우렐리아누스 황제 같은 경우는 로마에 성벽을 세우고

분리된 갈리아와 팔미라를 통합시켜 제국을 재통합하는 등의 치적을 이루어

이 시기에 연대기 작가가

아울리리아누스 시대의 제국은 행복했다. 시민들은 그를 사랑하고, 병사들은 그를 존경하고,

적들은 그를 두려워했다라고 기록했지만 어처구니없게도 비서에 의해서 암살을 당했다.

 

서기 212년 로마 제국은 카라칼라 황제의 시대다.

11권 끝 부분에 세베루스 황제로부터 차기황제로 지명된 카라칼라는 아버지 면전에서

근위대장을 칼로 찔러 죽였고 황제로 즉위 후 공동황제인 동생을

어머니 앞에서 역시 칼로 찔러 죽이고 단독 황제로 치세하던 중

안토니우스 칙령이라고 불린 법에서 로마 제국에 사는 자유로운 신분의 모든 사람에게

빠짐없이 로마 시민권을 준다.’고 했다.

로마 제국에서 로마 시민속주민의 차별이 철폐된 것이다.

로마 군은 로마 시민의 군단병과 속주민의 보조병이 거의 같은 수로 구성되어있는데

당장은 아니었지만 이젠 그 구분이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에 시민권은 국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차별화 되어 있었다.

그리스의 아테네는 부모가 둘 다 아테네 시민이 아니면 아테네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부모 중 한 명이 아테네 시민이고 다른 한 명이 아테네가 아닌 다른 도시국가 태생이면

아테네 시민이 될 수가 없었지만 로마에서는 테베레 강가에 처음 나라가 세워졌을 때부터

시민권에 대한 사고방식이 아테인과는 전혀 달랐다.

로마인은 시민권을 아테네인처럼 를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이나 의욕과 관련 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전쟁에서 다른 나라를 이겼다고 해도

그 지방의 유력자에게 로마 시민으로 만들었고 로마에서 일하는 교사나 의사들에겐

출신지나 신분에 관계없이 시민권을 주었으며 노예도 해방 되면 2세에겐 시민권을 줬다.

로마군 밑에서 보조병으로 병역에 종사한 속주민이 만기 제대하면 로마 시민이 되었을

정도로 개방 노선을 충분히 따르며 패자동화노선을 바꾸지 않았는데도

카라칼라 황제가 이 차별을 아예 없애버린 것이 안토니우스 칙령이다.

 

그렇다면 이 칙령이 로마 제국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저자는 다섯 가지로 구분하여 문제를 제기하였다.

첫째, 종래의 로마 시민권자는 자신들이 제국의 기둥이라는 기개와 긍지를 잃어버렸다.

이제 누구나 동동하니까 자기만 앞장서서 고생할 필요도 없다.

둘째, 새로 로마 시민 대열에 낀 속주민들은 향상심이나 경쟁심을 잃어버렸다.

이제는 시민권을 얻기 위해 고생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셋째, 로마 시민으로 격상된 속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제국을 짊어지고 나갈 기개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넷째, ‘안토니우스 칙령은 속주민과 시민의 경계를 없앰으로써 로마 사회의 특질인

유동성까지 없애버렸다. 사회의 경직화는 인간의 동맥경화 현상과 마찬가지다.

다섯째, 로마 시민과 속주민의 차별이 없어진 대신, 두 계층이 합한 일반시민 계급이

호네스타스(존귀한 자)’후밀리우스(비천한 자)’로 양분되었다.

이는 비천한 자로 태어난 사람은 로마 사회에서 상승할 기회가 차단당했다.

나중에 저자도 언급했지만 이에 따른 가장 큰 문제는 수입의 10%에 달하는

속주세가 없어짐으로써 로마 제국의 재정에 큰 타격을 주어

전쟁 중에 군사비 조달 등의 필요에 의해 특별세가 많아져

시민의 생활이 어려워 진 것이다.

국가의 정책이란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초래할지 충분히 검토하고 실시해야 하는데

카라칼라는 안토니우스 칙령뿐만 아니라 다방면에서 실책을 거듭한다.

로마 제국 안전보장의 기본 이념은 다민족, 다종교, 다문화에 패자동화정책인데

이는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고장을 지키는 것이 국가를 위한 것이었지만

카라칼라의 정책은 이를 거역하였기에 위기를 더한 것으로 평한다.

 

로마 제국의 성공요인은 자기가 가진 힘을 합리적이고 지속적으로 철저히 활용하는 것인데

3세기 로마 제국의 특징 가운데 하는 정략적인 면에서 계속성을 잃어버린 것으로 평가한다.

이전엔 나쁜 황제로 단죄를 받았더라도 제위를 이어받은 황제도 선제의 정책 가운데

좋은 것으로 판단되는 것은 계속 추진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더욱 발전시키는 것도 주저 하지 않는 등 기본 정책의 계속성은 보장되었지만

3세기 로마는 수많은 황제가 바뀔 때마다 정책이 중단되고 낭비하면서

계속의 힘은 사라지고 가진 힘을 활용하지 못하는 시기다.

 

그리스 시대에 알렉산더 대왕에게 패전하여 흔적을 거의 잃으며 지워진 나라가 페르시아였다.

자리를 대신한 나라가 로마와 숙명적 관계의 국가 파르티아가 세워졌지만

잦은 왕위 찬탈의 어려움을 겼다가 부활한 페르시아에 의해 사라지는 나라가 되었다.

동방의 나라 페르시아는 왕정으로 국가의 존재를 이어가기 위해선 국민단합이 최우선이고

그를 위한 정책 중 하나가 전쟁으로 파르티아를 대신해 로마와 숙명적 대결이 불가피하다.

3세기 로마의 혼란을 틈타 옛 제국 영토의 부활을 호시탐탐 노리던 중

서기 260년 새해 벽두부터 로마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을 만든다.

당시 페르시와 황제는 사르프, 로마 황제는 발레리아누스다.

페르시아 원정을 나선 발레리아누스 황제에 수세로 몰리고 있던 사르프가 정상회담의 제의,

그를 믿고 적은 수의 병력만 거느리고 약속 장소에 갔다가 급습을 당해 포로가 되는

로마 제국 역사상 전례에 없던 사건으로 로마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되어

위기로 치닫고 있음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대목이다.

황제를 잃고 우왕좌왕 하다 포로가 된 로마 병사 들은 페르시아로 끌려가 노예가 되어

페르시아 인프라 공사에 크게 동원되어 도시는 물론 댐을 건설하는 데

그 중 하나인 반디 마이사르(황제의 다리)’라는 근대까지 그 기능을 발휘했다고 한다.

 

계속된 정책의 실패, 황제가 포로가 되는 등의 혼란 속에 로마는 3등분 된다.

오늘날의 프랑스와 에스파니아, 영국 등의 갈리아 제국,

이집트, 시리아 가파도니아 등의 팔미라 제국,

본국 이탈리아를 근간으로 하는 에개해 중심의 아테네 등의 로마 제국 등이다.

이 시대의 로마 황제는 페르시아 포로가 된 발리이아누스 황제의 아들 갈리에누스,

이 시점에 로마는 중대한 법률하나가 탄생하는 데

후세가 한결같이 나쁘게 평가하는 원로원과 군대를 분리하는 것이다.

이전 까지는 원로원이 되면 속주의 총독이 돌 수 있었고

총독은 그 지역에 주둔하는 군대도 지휘하게끔 되어있었다.

또한 군대의 높은 직위 지휘관이 되면 원로원이 되어 제국의 정책에 관여할 수 있었지만

이 법률로 인해 원로원과 군대의 인적교류가 끊기며 아우스쿠스투스로 시작된

제정, 후에 구분하는 원수정 시대의 종말을 예고한다.

 

아우렐이아누스 횡제는 4년 만에 3등분 된 제국을 다시 통합시키는 등의 노력을 하지만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를 근간으로 하는 로마는 비로마화로 위기를 맞이했다고 평하는데

첫째가 속주민에게 준 로마 시민권

둘째가 원로원과 군대의 분리

셋째가 군대의 구성 중무장보병에서 기병으로의 변환 한 것 등이다.

또한 거듭되는 야만족의 살육과 약탈과 방화, 그 결과인 농경지 황폐와 인구 감소,

생산력을 떨어지고 있는데도 늘어나는 국방비를 충당하기 위한 특별세 부과,

때문에 농민들은 농토를 버리고 도시로 몰렸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실업자 증가와

국가재정 약화가 사회복지 약화로 이어져 식량 무료 배급이 줄고 빈곤 가정의 지원은 줄고

부유한 개인의 사회참여도 감소하는 등의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졌다.

기독교의 신은 인간에게 살아갈 길을 지시하는 신이다.

반면에 로마의 신들은 살아갈 길을 스스로 찾아내는 인간을 옆에서 도와주는 존재였지만

사회불안과 경제 불황은 스스로 살아갈 길을 노력하는 것을 포기하는 틈에

평등과 먹을 것을 주는 기독교에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계기가 되었다.

팍스 로마나가 완벽하게 기능을 발휘하고 있던 시기는 신에게 의지하는 삶이 적었지만

로마인의 삶이 힘들어지고 지칠 때 로마의 신들의 설 자리가 없어지면서

신은 강하다고 믿으며 신의 인도에 따르는 기독교에 마음이 움직였다는 것이다.

 

저자의 서술에 의하면 기독교는 로마 제국을 타도할 의도는 갖고 있지 않았고

그들의 의도를 굳이 말한다면 제국을 탈취하는 것이라 한다.

저자는 가르타고 주교를 지낼 때 순교하여 성인이 된 키르리아누스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은 친구 테메트리아누스에게 보낸

편지를 인용하는 것으로 12권을 끝냈는데 일부를 소개한다.

<자네는 말하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불안에 빠뜨리는 많은 불행은 기독교인들에게

원인이 있다고, 우리 기독교가 자네들의 신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신성한 우리 경전을 건드리려고도 하지 않고,

그래서 진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자네도 로마는 이제 늙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걸세. 전에는 대지를 단단히 딛고 서 있던 튼튼한 발도

이제는 늙어서 자신의 몸무게도 지탱하지 못하고 있네.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이것을 명시하지 않았다 해도, 성서가 진실을 증언하지 않았다 해도,

제국의 일몰과 쇠망은 이제 누가 보아도 분면할 걸세.

겨울에도 땅에 뿌린 씨앗이 뿌리를 내리기에 충분한 비가 내리지 않네,

여름이 되어도 태양이 옛날처럼 뜨겁게 내리쬐지 않기 때문에,

밀은 황금빛으로 변하지 않고 수확도 할 수 없네,

봄에도 농작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따뜻한 날이 드물어졌네,

가을에도 가지가 휠 정도로 과일이 열리는 나무를 보기가 힘들어졌네.

채석장에서도 옛날처럼 아름다운 대리석이 나오지 않게 되었네.

-중략-

 

제국은 늙어가고 있네.

제국이 젊고 활력에 넘쳤던 시대와 같은 든든함을 이 늙어가는 제국에 아직도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종말이 다가오면 무엇이든 약해지는 법일세, 일몰이 다가오면 햇빛도 약해지고,

아침이 다가오면 달빛도 약해지지.

이것이 세상의 이치일세. 이것의 신의 섭리일세.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것은 죽을 운명일세.

성숙한 뒤에는 노화가, 늙은 뒤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네.

강력했던 국가도 약해지고, 거대했던 것도 작아지네.

약해지고 작아지다가 이윽고 사라지는 것일세.>

 

나는 이 글을 읽으며 기독교가 말하는 신의 영향이라기보다는 자연의 섭리라는 생각이다.

다만 어떤 시대와 결부하고 빈곤에 처한 사람들에게 작은 끈이라도 잡고 싶은 마음 일 때

들려주면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에는 충분한 수긍이 간다.

 

January 29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