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여행 1110일째, 2018년 7월 4일(수) 애틀랜타/맑음
“운동을 많이 했으니 점점 더 튼튼해져 이 정도 높이는 가뿐해야 되는 거 아닌가?”
오늘 골프를 마치고 클럽하우스로 올라가는 언덕을 걸으며 박 사장에게 했던 말이다.
“그러게요.”
“운동을 하면서 근육이 단단해 지는 것보다 나이 들며 약해지는 게 빨라서 그런 건가?”
13번 홀을 마치고 다음 홀로 걸어가면서 박 사장이 했던 말
“송 선생님, 만일 카트를 타고 골프를 했더라면 여기서 그냥 돌아갔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힘들어요?”
“15번 홀 파5를 걸어 올라갈 생각을 하니 아찔합니다.”
그 소리를 듣고 15번 홀을 걸어 올라갈 때 더욱힘들게 느껴졌다.
‘에궁~ 그 소리를 안 들었으면 좋았으련만.’하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바지까지 땀으로 흠뻑 젖은 박 사장은 15번 홀을 어렵게 마치고 16번 홀로 갈 때
걸음이 거의 갈지(之)처럼 걸으며 힘들어하기에
“박 사장 작년에 나와 만나 처음 걸을 때 14번 홀만 가면 힘들어 포기하는 적도 많았는데.”
“그러게요. 그 때는 정말 힘들었는데요.”
정말 그랬다.
잘 따라 걷다가 후반으로 가면 더욱 힘들어하다 때로는 스윙도 제대로 못하다 포기하곤
“저는 그냥 걷기만 하겠습니다.”하는 경우가 있었고
또 어떤 때는 9홀만 마치고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하고는 그냥 간 날도 있었던 사람이
가을 쯤 되었을 땐 걸어서 몸무게도 10파운드 이상 빠졌고 엄청 건강해졌다며 좋아하곤
이후론 그리 힘들게 느끼는지 몰랐는데 오늘은 유난히 많이 힘들어하였다.
나도 덩달아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17번 홀에선 티 샷을 쪼루내고 그는 짧게 치며 허우적거렸다.
18번 홀에선 오히려 내가 체력이 빠르게 급 하강 휘청거리며 골프를 마쳤다.
내가 처음 골프를 어떻게, 왜 시작했지?
30대 초반에 한 참 열심히 일을 하면서 승승장구 할 때
‘이 정도면 나도 골프를 하는 게 좋겠지?’하는 자존감, 아님 자만심?
아니 어쩌면 직급이 올랐을 때 뒤 떨어지지 않기 위한 미래를 위한 투자였는지도 모르겠다.
‘뭔가를 하려면 철저히.’라는 삶의 철학에 걸맞게 시간과 경제적인 투자로 이어졌다.
그러다 여건과 경제적인 뒷받침이 따르질 않아 쉬다가 미국으로 왔고 그냥 그만 둘 줄 알았다.
미국 살면서 골프할 생각을 거의 하지 않다가 건전하게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게 골프?
가까운 사람들 대부분이 골프를 하니까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한 수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일을 하면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 특히 백인친구들에게 내세울 만한 게 없었다.
내 머릿속에 든 것이 많고 헤쳐 나갈 수 있는 게 많다고 한들 언어장벽 말고도
모르는 분야의 비즈니스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적으니 내세울 수가 없었다.
‘인상적인 것을 보여주자.’
미국 살면서 대부분의 백인들이 좋아하고 즐기는 것 스포츠, 야구, 농구, 풋볼, 골프 등.
골프를 빼곤 모두 단체 운동이라서 모여 앉아 먹고 마시고 떠들고,
거기에 끼기에는 원래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중계도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는 아니다.
그렇다고 골프를 내세울 수 있을까?
그것도 힘인데 그걸 어떻게 이겨?
그럼 없잖아!
골프에서 “드라이버는 쇼, 퍼팅은 돈”이라는 말이 있다.
‘어차피 쇼는 어려우니까 돈 쪽으로 가자.‘
꼭 어떠한 목표를 세우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어떤 날은 몇 시간이고 퍼팅을 연습하고
거의 거르지 않고 매일매일 퍼팅연습을 했다.
“나는 있잖아 그린 주변에만 가면 Lob Wedge로 다 해결해.”
골프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미국에 출장 왔을 때
지금은 뉴질랜드에 가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동기 오중균이 함께 골프를 하면서 했던 말,
해서 Lob Wedge 하나 사서 한국으로 돌아가 실전에 사용한 날 ‘이건 아니야!’하면서 접었다.
그 친구의 말대로 그린 주변에서 시도를 하면 볼이 높이 떴다가 거의 제자리에 떨어져 망신.
집안에서 퍼팅연습을 하다 중간에 할 수 있는 연습이 가까운 거리 어프로치 밖에 없어
사서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Lob Wedge로 연습을 하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공이 떠서 스핀 때문에 역회전하는 게 신기하고 자랑스러웠다.
물론 높이 떠서 멀리가지 못하던 볼은 조금씩 멀리 가는 것도 가능해졌다.
골프를 하러 필드에 가서 연습을 하면서도 다른 것 보다는 두 가지에 연습을 집중하였다.
그러다 느낀 게 매 번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Public의 빈자리를 찾아다니지 말고
괜찮은 곳에 홈그라운드를 만들다.
대신 가능한 남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골프장을 찾자며 쇼핑을 하다 찾은 곳이 Sugarloaf다.
내 사정으론 조금 무리였지만 기왕이면 폼 나게 부르고 멋지게 놀자는 생각에서였다.
골프를 다시 시작한지 2~3년이 되었고 연습 때문에 실력도 상당히 늘었을 때였다.
Sugarloaf가 좋은 것, 코스를 Open하는 날이면 무제한 연습이 가능하고
퍼팅, 칩샷, 아이언은 물론 우드에 드라이버까지 몽땅 다 매트가 아니라 잔디에서.
틈만 나면 가서 연습하였고 골프를 하는 날도 1시간 이상 미리 가서, 마치고도 또 1시간 이상,
손에 물집이 생기고 장갑이 떨어질 정도로 어깨와 허리가 아파 펴지지 않는 날도 있었다.
Sugarloaf Member가 되고 1년도 지나지 않아
"Kenny Song이 골프를 엄청히 잘 하는 데 그와 함께하면 Sugarloaf에서도 칠 수 있다.“는
말이 손님들 사이에 퍼졌고 이전에 실력이 그저 그런 떠돌이 때와는 다른 대우를 받았다.
물론 그로인해 비즈니스로 연결 된 건도 적지 않았다.
아해를 만나 미래를 생각 할 때
‘어쩌면 골프를 그만 두거나 예전보다 줄여야 할 수 도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일단 아해가 골프를 하지 않았고 골프를 하는 것이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클럽에서 ‘Player of Year’까지 해 봤기에 여한이 없다는 생각으로 자위를 하면서 말이다.
아해와 함께하는 미래에는 골프가 차지하는 비율이나 범위가 아주 작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해가 골프를 시작하겠다는 말을 했을 때 좋으면서도
한 편으론 ‘그러다 말겠지.’하는 생각을 갖기도 전에 “나는 하면 제대로 한다.”는 선언을 했다.
그게 나 때문이라는 데 뭐 다른 생각을 하겠어?
그럼에도 처음엔 지켜보자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손이 까지고 다쳐서 휘고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음은 물론 늪에 빠지듯 점점 깊이를 더해가는 모습에
아해와 함께하는 미래의 그림에 골프가 크게 한자리를 차지한다.
나이 들어도 함께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운동이 골프라고 하는 데 우리의 미래에 당연한 거였다.
요즘 나에게 골프란,
내 건강을 제일 잘 지켜주는 운동이고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가장 건전한 오락이고
아해와 함께할 수 있다는 미래를 신나게 즐길 수 있는 투자이기도 하다.
“요즘 운동 너무 많이 하는 거 아니야?”하는 아해의 걱정 어린 염려를 듣기도 한다.
그럴 때면 ‘정말 그런가?’하면서 생각을 하고 필요에 따라선 줄이는 등의 조절을 하고는 한다.
중국의 작가 왕멍이 주장한
‘나이 들어 반드시 가져야 할 세 가지, 일, 친구, 취미’를 아해와 한다는 생각에
무리하지 말고 마음껏 즐기자는 다짐을 하며 오늘도 걸었다.
오늘은 독립기념일,
오전에 골프를 마치고 집에 도착한 시각이 1시를 조금 넘겼다.
점심과 저녁을 혼밥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마냥 쉬었다.
미래의 어느 날부턴 이런 날을 아해와 함께 할 것을 꿈꾸면서 하루를 보냈다.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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