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아프리카 대륙의 일대기 -존 리더 지음-

송삿갓 2019. 1. 31. 23:55

아프리카 대륙의 일대기 -존 리더 지음-

 

겉표지 뒷장의 옮긴이의 글 중에서 이런 부분을 인용하였다.

아프리카의 특성을 한마디로 말하면, 아프리카는 무척 오래된 땅이라는 것이다. 지질도, 식생도, 환경도, 지리도, 인간도 어느 대륙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다. 그러므로 아프리카 역사는 인간과 생물과 지리를 모두 포괄하는 시원(始原)의 역사. 그래서 이 책은 아프리카의 역사를 인간이 아니라 자연으로 시작한다. 지은이는 아프리카 자체를 하나의 인격체로 간주하고 일대기를 기술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아프리카 역사에 관한 상식적이거나 단편적인 지식을 얻고자 한다면 이 책은 적절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런 목적을 위해 이 엄청난 분량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비경제적일 것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에 관한 총체적인 인식을 얻고자 한다면, 아프리카 정체를 통찰하고자 한다면, 이 책은 그 노력의 출발점이자 목적지가 될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 삶의 목적과 목표가 다르고 그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 게 내 주장이다. 책의 후기에 이렇게 엉뚱하게 시작하는 것은 위의 옮긴이 글 중 나와 다른 부분이 있어 그렇다. 특히 아프리카 역사에 관한 상식적이거나 단편적인 지식을 얻고자 한다면 이 책은 적정하지 않고 비경제적이라는 것이 나와 생각이 다르다.

이 책을 읽고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지금까지 내가 알고 믿는 아프리카에 대한 상식이나 단편적인 지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역사에 관해서는 기록하거나 전하는 사람의 입장이나 위치에 따라 크게 달라 질 수도 있는데 내가 알고 있었던 아프리카에 관한 내용의 대부분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기야 내가 알고 있었던 아프리카에 관한 지식이 너무 단편적이고 부분적이라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안 것이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지은이는 앵글로 색슨 백인 남성으로, 런던에서 택시 운전기가의 아들이고 1995718살 생일 전날 로열 앨버트 부두체서 8,000톤 급 화물선을 타고 아프리카로 향했단다. 그리고 케이프 타운에서 8년을 지냈고 나이로비에서 10년간 살았지만 아무리 객관적 관점을 취하려 애쓴다 해도 주관적 영향의 흔적을 지울 수 없다는 고백을 머리말에서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아프리카에 대한 지식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진 내용이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책의 내용이 이런 부분이 있어 소개한다.

 

잠비아에서 한 무명 집단의 추장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내 민족은 1937년 지구 위원이 말해주기 전까지는 솔리족이 아니었다.” 실제로 아프리카에는 식민지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민족적 사고방식-즉 공통의 기원에서 필연적으로 나온 통일성의 인식-(전무하지는 않았어도) 무척 드물었다. 그러므로 민족성(부족주의)은 아프리카의 과거에 깊이 뿌리박은 문화적 특성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에 의도적으로 만들어져 도입된 이데올로기적 전통이었다.

 

옮긴이의 글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역사는 보통 두 가지 방식으로 다루어지는 데 하나는 아프리카를 다른 대륙과의 관계 속에서 설명하는 방식으로 다른 대륙이란 유럽을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바깥에서 본 아프리카이므로 온전한 아프리카 역사라고 하기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아프리카인이 본 아프리카의 역사로 대개 아프리카가 근대 시기 서구에 당한 침탈의 역사가 강조하는 것인데 현 인류인 호모사피엔스의 고향이고 늘 자급자족 체계의 순수하고 순결한 부족사회를 이루고 살아왔던 아프리카가 서구에 의해 강제로 개방되고 속살이 뜯껴나간 역사를 통렬하게 고발하는 식인데 그런 역사를 기록한 아프리카인은 주로 서구로 유학을 가서 진보적 사관을 배우게 된 아프리카 출신이 학자들이 바라보는 역사란 이야기다.

그렇다 해도 아프리카의 눈으로 본 아프리카의 참모습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옮긴이의 글에 나타나 있는데 이는 아프리카를 다양성의 측면에서 보기보다 공동 운명체라는 이데올로기적 축면에서 보기 때문이고 그런 관점은 주로 아프리카의 근대역사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호흡이 짧다는 문제가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 책은 두 가지 방식과 무관한데 지은이는 앞에서 소개하였듯이 열여덟 살 때 아프리카로 건너가 젊은 시절을 그곳에서 살았기에 유럽인도 아프리카인도 아닌 입장에서 그리고 사실 보도를 생명으로 하는 기자(엄격이 하자면 사진기자)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혹은 초연하게 바라보는 그러니까 유럽중심주의나 제국주의 시각에 물들지 않고 아프리카 민족주의 같은 이념에서도 자유롭기 때문에 이 책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으로 아프리카 역사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지질학적인 내용은 지구상에서 아프리카가 다른 대륙에 비해 가장 변화가 적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하 광물이 풍부하고 금광이나 다이아몬드가 많아 중세시대 이후에 유럽인들로 인해 찬탈의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유럽의 침략행위가 흑인 노예의 공급처였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건 부차적인 것으로 설명한다. 아프리카 인구변화가 노예무역 때문이 아니라는 부분에 대해 책에선 이렇게 설명한다.

 

인구학자들은 1900년의 아프리카 인구를 약 12,900만으로 추산한다. 1500년의 4,700만 명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증가한 수치다. 400년 동안 아프리카를 제외한 세계인구는 5억 명에서 20억 명으로 늘었다. 아프리카 인구 증가를 제약한 것은 노예무역도 있지만, 그 보다 생산 식량, 가용 노동력, 출산율, 질병이 상호 연관된 여건이 더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책에서는 아프리카 인구의 변화에 대해 가장 큰 원인을 기후의 변화를 드는 데 적정량의 비가 내리고 풀이 많이 나면 도시가 형성되고 사람들이 더욱 모이며 인구가 증가하지만 때로는 너무 많이 혹은 예기치 못한 기후의 변화로 비가 내리지 않아 질병이 만연하고 어쩔 수 없는 인구의 감소로 이어진 게 아프리카 인구가 증가하지 못한 것으로 설명하는 데 산업과 의학이 발달하고 질병에 대한 대비책이 강구된 20세기의 인구변화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데 다시 책의 내용을 인용하면 이렇다.

 

20세기 의학의 발달로 인간은 수명이 길어졌고 번식력도 커졌다. 아프리카 인구 증가는 유례없는 수준이었다. 1950년부터 1990년까지 아프리카 인구는 2억 명에서 6억 명으로 3배나 증가했다. 1994년 국제연합 인구기금은 앞으로 25년이 지나면 그 수는 다시 2배로 증가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전쟁, 에이즈, 영양실조가 증가세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인구가 늘어났고 계속 증가되는 데 21세기에 들어서도 왜 다른 대륙에 비해 아프리카는 빈곤을 벗어나지 못할까?

 

우선 인구가 늘었지만 식량 생산이 늘지 않고 있다는 것으로 인구는 과잉이나 부족이 아니지만 인구와 자원의 불균형을 원인으로 꼽는다. 예로 르완다는 인구밀도가 높지만 초지가 부족하고 자이르는 토지가 풍부하고 노동력이 부족하다. 남아프리카는 토지와 노동력을 다 갖추었으나 농업이 산업화 되면서 토지에 고용되었던 노동력이 도시로 밀려와 식량을 생산하지 않는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거기다 노동력이 있는 곳은 식량을 생산하기 보다는 꽃이나 과일 등의 환금작물이나 채소 등의 생산에 주력하여 유럽에 수출하기 때문을 식량부족의 원인으로 꼽는다.

 

그렇다면 이 같은 불균형을 국가나 지도자가 이끌면 될 텐데 그 또한 여의치 않다는 문제가 있다. 아프리카의 국가는 그들 스스로 분할하고 만들어 낸 것이 아닌 게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유럽 열강들(주로 포루투칼, 영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 주요4개국과 네덜란드 이탈리아 긍의 국가)이 아프리카의 식민지화 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이익이나 편리성으로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식민지시대가 막을 내리는 과정에도 분할을 계속하면서 분쟁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 부분 또한 책의 내용을 인용하자면 이렇다.

 

19세기 말 유럽이 아프리카 분열에 열을 올린 이유는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없다. 유럽 열강이 아프리카를 분할한 쌍방 교섭에는 전략적 고려, 상업적 압력, 외교적 음모, 박애적 목적, 선교, 위대한 야망 등이 얽혀 있었다. 하지만 동기가 어떻든 일단 지도 위에 선이 그어지자 식민지 이주민들은 경제적 활력을 확보하는 공통의 문제에 직면했다.

 

이 같은 문제로 아프리카 대륙은 오늘도 국가나 민족 간 분열과 분쟁이 끊이지 않기에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데 국가의 지도자들조차 대륙이나 국가의 내일 보단 자신이나 자신의 종족을 위해 국민을 죽이고 분할하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아프리카의 학교에서 고등교육으로 올라 갈수록 아프리카를 근간으로 하는 교육보다는 유럽을 혹은 미국 등에 대해 공부할 수밖에 없는 것은 자체의 교과서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거기다 컴퓨터와 통신의 발달로 아프리카 대륙 밖의 정보를 쉽게 얻고 따르려하는 경향도 국가나 도시 자체의 발전보다는 모방하고 추구하는 것도 적지 않은 문제로 보여 진다.

 

그렇다면 아프리카는 영원히 빈곤을 면치 못할 것인가?

사람은 아니 20만 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난 호모사피엔스가 지금처럼 지구를 지배하게 된 것은 희망을 저버리지 않고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로 설명하는 데 책의 말미에 27 년간이나 감금되었어도 힘을 잃지 않고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을 뒤집은 넬슨 만델라의 예를 들면서 이렇게 마무리한다.

 

넬슨 만델라와 그가 대표하는 정치권력의 이동은 경제적 실용주의가 세계무대를 지배하는 시대에 통합과 이념의 가치를 확인시켜준다. 그와 남아프리카는 전 인류에게 희망을 준다. 그것은 바로 오랫동안 절망 이외에 아무것도 낳지 못했던 대륙에서 솟아난 희망이다.

 

20만 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난 50여 명의 호모사피엔스가 500년 전에 아프리카로 돌아와 나누고 가르면서 무참히 짓밟아 비참하고 빈곤함이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지만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르완다의 카톨릭 신학자인 은테지마나가 자기 나라의 학살에 충격을 받았지만 놀라지는 않았다며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을 소개하는 것으로 후기를 마친다.

당신이 아직까지 인간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았소. 숭고하게든 비참하게든 인간은 항상 우리를 놀라게 할 수 있다오.”

 

January 31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