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매혹한 철학 - 야무차 지음
이 책이 한글로는 [시대를 매혹한 철학]이라즌 제목으로 번역되었지만
일본에서의 원 제목은 [열네 살부터의 철학입문]이라고 한다.
철학이란 본디 유치한 생각과 과대망상에 가까운 억지를 ‘뻔뻔스럽게 주장’할 때
성립된다는 뜻으로 그 나이의 수준이 열네 살 때,
어릴 때부터 배워 몸에 배어 있던 ‘어린이의 상식’
즉 ‘어른이 옳다. 선생님은 훌륭하다. 세상에는 선과 악이 있다.
전쟁은 좋은 나라와 나쁜 나라가 싸우는 일이다’등의 상식이 붕괴되는 시기며
열네 살 만의 새로운 가치관을 만드는 분야라고 저자는 설명하며 철학을 이렇게 정의 하였다.
<철학_오랜 상식을 의심하여 이전과 전혀 다른 관점을 발견하고 새로운 가치관과 세계관을
창조하는 학문>
예전에 경영학 박사논문엔 ‘여러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하면 통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내가 전공하던 공학은 내가 여러 번 실험하여 같은 결과를 얻어내고
또 다른 사람들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험으로 같은 결과를 얻어내야 하는 것과는
다름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들었던 이야기다.
그렇다면 철학은 어떠할까?
어느 한 천재 철학자가 열네 살의 수준으로 주장한 것에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면
되는 것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게 책을 통해 조금 더 확실하게 느낀 것이다.
기본적으론 맞지만 철학의 변천사는 이전의 주장이나 사상을 무너뜨리며 발전을 거듭했는데
합리주의(이성의 힘을 제대로 활용해서 합리적으로 사고해야 해!)
-실존주의(인간은 기계가 아니야. 인간은 자유롭고 주체적인 의지를 가진 현실존재(실존)라는
전제 하에서 생각해야 해!
-구조주의(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에 지배당하고 있을 뿐이야,
인간의 의지를 찬미하기 전에 인간이 어떤 구조에 지배당하는지부터 알아야 해!
-포스트구조주의(인간은 분명 구조에 지배당하며 살지만, 그 구조를 완벽히 파악할 방법도,
거기서 빠져나올 방법도 없어. 그러니까 인간이 구조를 파헤치려는 행위는 전부 소용없는
짓이야, 그러니까 그만 해산!
등으로 전 시대의 사상을 무너뜨리며 발전해 왔는데
이젠 우리가 어떻게 전 시대의 철학(현재의 상식)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이는 결국 열네 살의 생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데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저자는 현대의 젊은이들 중 니트족(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한다.
니트 족이란 기존의 기호소비(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모든 것은 기호라는 철학)
사회의 톱니바퀴가 되어 억지로 노동하는 삶을 패배로 규정하고,
기존의 사회 시스템에 편입되기를 일절 거부하는 현대의 외로운 투사로
‘일하기 싫어, 절대 싫어!’라며 사회에 참여하길 완강히 거부하는 사람들로 규정하였다.
그런 니트족이 현대의 사회구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들이 지금까지의 철학 사상을 무너뜨리며 다음의 철학으로 발전시킬 수 있읐까라는
의문을 갖는다면 현대 철학사상인 ‘포스트구조시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즉 열네 살의 생각, 이 책 저자가 주장하는 철학 삶이 아닌 것이다.
저자는 여러 가지의 예문을 들며 니트족이 새로운 철학사상을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인데
그 중 두 가지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 책의 후기를 마친다.
첫째는 과거와 현재의 다름으로 철학사상의 발전을 설명하였는데 이렇다.
과거 : 왕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라! 그것이 훌륭한 인간이며 충성이다!
현재 : 왕을 위해 목숨을 걸라고? 왜?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왕이 사람을 죽이라고
시킨다고 진짜로 죽이다니 다들 머리가 이상한 거 아니야?
과거 : 아니야! 모두가 왕에서 충성을 다하지 않으면 왕국이 무너져. 그러면 타국으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현재 : 그러니까 전쟁은 왕이랑 상관없는 거잖아.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할 뿐이지.
과거 : 아니야! 왕은 신성한······.
현재 : 그만 됐어. 말이 안 통하네.
이같이 현재의 기준으로 과거를 본 다면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지만 과거에는 틀림없이
그랬다. 지금 부정당하는 철학도 과거 그 때 당시엔 옳게 판단되었듯이 미래에 새로운
철학이 정착했을 때 오늘의 철학사상은 가치관을 잃을 것이다.
두 번째 소개하는 글은 어느 니트족 아들에게 보내는 한 어머니의 편지로
이 책의 대단원이 막을 내린다.
아들아,
억척같이 일하는 엄마가 너의 눈에는 바보 같아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그만큼
우리 가족을 포함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자랑스러운 일이었지. 그래서 엄마아빠는
몸이 부서져라 일했던 걸 수회하지 않아. 오히려 일할 수 있는 사회에 태어난 것을 고맙게
생각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너에게 밥을 차려 주고, 매일 바쁘지만 밝고 즐겁게 살 수 있었던
건 그런 생각 때문이었어. 그래도 그런 삶을 너에게 강요하지는 않을 거야.
이건 자본주의 사회, 고도경제 성장기에 태어난 엄마의 싸움이니까.
너는 지금 분명 힘든 상황을 겪고 있어. 열네 살의 어느 날부터 학교에 가지 않게 됐고,
그 후론 줄곧 게으르고 생산성 없는 인생을 살고 있잖아.
일하는 게 상식인 이 사회의 가치관으로 보면 일을 안 하는 네 인생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네 스스로 인생의 가치를 찾아야 해. 그리고 그건
너 자신만을 위한 일이 아니야. 앞으로 먼 미래에는 너 같은 아이들이 점점 늘어날 거야.
그런 이들을 위해서라도 네가 그들이 빛이 될 새로운 가치관을 찾아야 해.
그러니까 괜찮아. 엄마는 엄마의 싸움을 할 테니 너는 너의 싸움을 해!
네가 지금 이런 상황에 처한 것에는 분명 무언가 큰 의미가 있어. 너는 틀리지 않았어.
엄마는 항상 믿고 있단다.
가치관을 많이 다르게 살고 있는 엄마와 아들,
그런 아들을 틀리지 않다고 이야기해 주는 엄마,
이는 아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엄마이지만 선구자적 의식이나 가치관을 가진 엄마이기도하다.
그리고 이전의 철학사상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철학사상을 세울 수 있는 원천이기도하다.
우리에게 이런 엄마가 없다고 해도 현재의 사상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눈,
저자가 주장하는 열네 살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생각하며
다른 이와 논쟁하며 성숙되어 간다면 새로운 철학사상은 반드시 이뤄지리라.
보드리아르가 주장한 ‘나의 욕망이 타인의 욕망을 낳는 시스템,
기호 생산의 고리는 죽을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라는 것은 과거의 것이 될 날을 위하여...
December 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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