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메 이야기

4B 연필

송삿갓 2013. 8. 21. 00:07

4B 연필

 

파울로 코엘료의 "흐르는 강물처럼(Like the Flowing River)" 이란 책에 이런 글귀가 있다.

 

<연필 같은 사람>

첫 번째 특징은 말이다. 네가 장차 커서 큰일을 하게 될 수도 있겠지?

그때 연필을 이끄는 손과 같은 존재가 네게 있음을 알려주는 거란다.

명심하렴. 우리는 그 존재를 신이라고 부르지.

그분은 언제나 너를 당신 뜻대로 인도하신단다.

 

두 번째는 가끔은 쓰던 걸 멈추고 연필을 깎아야 할 때도 있다는 사실이야.

당장은 좀 아파도 심을 더 예리하게 쓸 수 있지.

너도 그렇게 고통과 슬픔을 견뎌내는 법을 배워야 해.

그래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게야.

 

세 번째는 실수를 지울 수 있도록 지우개가 달려 있다는 점이란다.

잘못된 걸 바로잡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오히려 우리가 옳은 길을 걷도록 이끌어주지.

 

네 번째는 연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외피를 감싼 나무가 아니라 그 안에 든 심이라는 거야. 그러니 늘 네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렴.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연필이 항상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이야.

마찬가지로 네가 살면서 행하는 모든 일 역시 흔적을 남긴다는 걸 명심하렴.

우리는 늘 스스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늘 의식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란다.

 

나는 4B연필을 깍아서 쓴다.

60년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나무 대신에 종이로 싸인 연필을 썼던 기억이 있고

초등학교 시절 내내 연필을 썼지만 불편했었다.

칼로 연필을 깍으면 울퉁불퉁은 기본이고 나선형으로 깍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많이 깍아 움푹 패이기도 하는 등

고르지 못하고 또 얼마나 잘 부러뜨리는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연필을 졸업하고 샤프라는 것을 쓰게 되었는데

샤프는 깍지 않아도 되고 삐뚤삐뚤 하지도 않았다.

0.7mm로 일정하게 되어 있어 끝을 갈지 않아도

일정한 굵기의 글씨를 쓸 수 있어서 좋았기에

미술시간에 쓰는 굻고 진한 연필 이외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연필을 다시 마주 한 것은 아이들이 자라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인데

그때는 손으로 돌리는 기계로 연필을 깎아 사용하게 되어

나 어릴 적 보다는 불편함이 적었음에도

0.5mm로 진화한 샤프에 젖어 연필은 사용하지 않았다.

 

30대 후반에 한 친구가 전기를 사용하는 연필 깍는 기계를 이용해

사용하는 모습을 보며 Antic하고 클래식하게 보여

다시 연필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잘 쓰지 못하는 글씨를 감추기라도 하듯

흘려 쓰는 글씨에

조금이라도 길게 쓸라치면 점점 굵어지는 그림 같은 글씨

뭔가를 쓰고 중요함을 강조하듯 동그라미를 그리기도 하고

쓰다가 귀찮아 지거나 생각할 것이 있어 책상위로 던지면

초등학교 시절 사지선다형 시험을 보면서

잘 모를 때 연필을 굴려 답을 정하던 정겨움도 생각난다.

 

그렇게 쓰다가 굻어지면 연필깎는 기계에 넣으면

연필이 깍이며 나는 윙 하는 소리나

덜덜 거리며 손을 통해 전해지는 진동,

예전에는 밀어 넣으면 계속 깍였지만

지금은 기술의 발달로 다 깍이면 기계가 멈추는 것에도

문명의 발달에 익숙해 하면서도 옛 정을 느끼게 한다.

 

혹여나 쓴 메모나 글이 마음에 안 들어

연필 뒤에 붙어 있는 지우개로 쓱쓱 밀면

쓰여졌던 글씨는 검은 지우개 똥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 지우개 똥을 손으로 쓱쓱 모아 입으로 훅 하고 불면

종이에 글씨가 쓰여졌던 흔적만 남기며 사라진다.

 

내가 그렇게 쓰는 연필에 코옐로는

연필을 이끌고 사용하게 하는 존재(神)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르게 하는 멈춤

실수를 지울 수 있는 지우개

겉을 싸고 있는 나무 보다 중요하다는 심(心)

마지막으로 삶의 잔재라는 흔적을 이야기한다.

 

책상 위에 놓여져 있는 연필을 본다.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그것

내 손에 의해서 뭔가 그려지거나 쓰여 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그것

그 연필을 바라본다.

"4B"

 

Aug 2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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