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여행 1730일째 2020년 3월 15일(일) 애틀랜타/맑음
발가락이 부러졌다는 것을 이유로
늦잠을 자고 스트레칭을 건너뛰고 이전과 똑같은 메뉴지만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오랜만에 커피메이커로 만든 커피를 마시며 게으름을 피우는 일요일 아침을 시작하였다.
거기다 두통이 없는 상태에서 쾌변까지 마치니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생활을 한 것 같은
그러니까 일부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생활형태에 만족을 하다 보니 더럭 겁이 났다.
매일 이런 생활에 젖어 뒤룩뒤룩 살찌는 그래서 걷기도 힘든 사람이 되는 건 아닌가?
발가락이 부러지며 짊어지고 갔는지 두통이 말끔하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곧 되돌리기 시작한 마음이 아마도 발 아프지 마라고 먹는 진통소염제가 두통까지
다스리고 있는 거라며 오늘 같은 상황을 즐기기는 하되 젖지는 말자.
어제는 최고기온이 80도른 넘었는데 거의 30년 만의 일이라는 일기예보에
집안에만 있으니 더운지 아님 추운지도 모르고 지내는 구나,
그럼에도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여기저기 번지는 데
나가지 않으니 안전한 것으로 그러면서 조금 더 몸을 위해 쉬어가는 것으로 다독이곤
좋아하는 책과 함께 늘어지게 보내고 있으니 이 또한 큰 행복이라는 것으로 완전 포장...
나이 들면서 기억력이 감퇴해 어떤 상황을 자주 잊는 건지 아님
마음을 다스리는 능력이 더해져 상황을 더 잘 극복하는 건지 모르지만
전화위복이라는 말로 아님 몸이 원해 쉬는 상황을 만든 것으로 합리화?
암튼 오늘도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낼 거고 나쁘지 않다에서 좋다로 변경...
내가 교과서나 참고서 말고 책이라는 것을 내 마음대로 읽을 수 있었던 시기는 고등학교,
삼촌(지금의 작은아버지)이 사관학교를 마치고 군에 가면서 내 방에 두고 갔던 책들을
꺼내 읽기 시작했을 때였는데 모두 생각나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분야였던 건 분명하다.
조그만 수첩에 읽은 책의 제목들을 적어두었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이었던
유재문 선생님이 불시 가방검사에서 본 수첩에 있는 책의 제목들을 보고 뭐냐고 묻기에
읽은 책 제목이라고 했더니 “고등학생이 이런 책도 보냐?”며 주의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거기엔 소녀경이나 사비에라(이건 친구 김광준에게서 빌려 읽은 책) 같은 게 있어서였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과학이나 기술, 그리고 수학을 좋아했지만 국어는 엄청 싫어했을
(특히 3학년 때 월례고사 점수 낮은 학생들은 발바닥을 맞았는데 내가 제일 많이 맞았음)
뿐만 아니라 특히 말본(지금은 이런 과목이 없는 걸로 알지만)은 더욱 싫어했었다.
대학교시절은 학점 따기에 급급해 많은 책을 읽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간간이 사서,
혹은 학교도서실에서 빌려 읽었는데 때론 ‘나 이런 책도 읽는다.’는 과시형으로
들고 다니기도 하였고 그 책 중 일부는 지금도 가지고 있다.
그러다 사회생활을 하며 내가 임의로 사용할 수 있는 용돈의 여유가 생기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사서 일부는 보관하고 일부는 읽으며 책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일반적인 직장인의 평균을 넘는 독서를 하면서 내 안에 잠자는 책이나 글에 대한 욕심,
혹은 욕망을 달래며 어우르는 삶을 살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소설을 읽으면 몰입되어 한 동안 빠져나오지 못하고 때로는
마음의 고통까지 겪으며 힘들기도 하면서 읽을 소설을 선택할 때 많은 고민도 하였다.
물론 때로는 그 때문에 소설을 기피하는 시기가 있었고 이미 책장에 있는 책 때문에
읽을까 말까하는 번민과 갈등을 겪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시점부턴 읽고 나서의 현실과 소설 사이에 혼란은 바뀌지 않았지만
즐기는 고통, 혹은 고통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으려는 시도를 했다.
다른 말로는 되새김 혹은 음미라고나 할까?
내 안에 눌려있는 글에 대한 행복을 일깨운 시점인데 바로 아해를 만나고 나서였다.
예전엔 책을 읽은 느낌에 대한 갈망과 고통, 갈등을 배출 할 수 없었는데
바늘로 찔러 풍선 안에 있는 공기를 해방시켜주듯 아해는 몸에서 곪아 병이 되지 않도록
쏟아 내게 하는 능력이 있었고 나는 스스럼이나 유감없이 토해내도 부끄럽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해방되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여전히 소설에 쉽게 접근하지 않지만 마음껏 몰입하고 빠져들고 음미하다 깨어나고....
지금 읽고 있는 장편소설 <기사당장 죽이기>는 조금 더 심하지만 충분히 즐기는 데
아해가 꺼내 줄 것이라는 자신감 때문에 글 속에서 내 나름의 자리를 잡아가며
읽고 음미하고 현실과 단절된 상황에서도 답답함이나 운동 못하는 아쉬움을 느낄 겨를이
없는 게 분명하다.
참 조심스럽다.
집안에서 이런저런 일로 이리저리 다닐 때 외쪽 엄지발가락을 어디에 부딪치지 않으려
가능한 기둥이나 벽이 없는 곳으로 눈을 부릅뜨고 천천히 걷는다.
뭔가 들을 일이 있을 땐 떨어뜨리지 않으며 하는데 때론 위험함을 느끼기도 한다.
발가락에 통증을 생각하면 절로 몸이 움츠려들면서 아찔한 마음이 되곤 하기에
더욱 조심하는데 그럴수록 위험함이 어찌나 많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말이나 실내화를 신지 않는 이유는 맨발로 걸으면 불편함이 거의
없기 때문인데 특히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 일어나면 붓기도 거의 없어져서
피멍만 없다면 부러진 것도 알지 못할 정도로 말끔하다.
당장이라도 골프장으로 가서 걸어도 될 만큼이지만 엄지의 피멍이 다쳤음을
그리고 의자에 앉아 한 참 무언 갈 할라치면 붓기가 오르고 약간의 통증을 가끔 느낀다.
암튼 참 조심스럽다.
간혹 다친 발가락들이 근질거린다.
특히 덜 다친 두 번째 발가락이 더 자주 그러는데 아마도 나아가고 있다는 현상 일게다.
낮에 샤워를 하고 몸을 닦으며 왼쪽 발을 변기에 올리다 부딪쳤는데 아! 그 고통이...
기침이 나고 숨이 멎을 정도라 얼른 침대에 누워 한참을 달래봤는데
한 참이 지났음에도 아파 꼭 아물어가던 부위가 다시 부러진 것을 걱정항 정도였다.
하지만 서너 시간 뒤에 다시 근질거리는 것으로 보아 큰 부상은 아닌 듯.
그 말은 들은 아해가 수면양말이라도 신는 게 좋을 거라고 하였지만 그게 어디 있나...
오후에 한두 차례 소나기가 내렸는지 도로가 젖었다가 잠자리에 들 무렵엔 다시 말랐다.
꼭 내 발가락처럼 맑고 흐리기를 주고받다가 하루를 마무리한다.
아해는 이번 주 토너먼트에서 3등을 했단다.
어제 잘 못 쳤다고 그리도 징징대더니 결국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데
아해는 그나마 기복이 심하지 않기에 열에 아홉 번은 입상을 하고 난 그게 기특하다.
내가 입상한 것처럼 기쁘기도 하고...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
'천일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일여행 1732일째 2020년 3월 17일(화) 애틀랜타/맑음, 짙은 안개 (0) | 2020.03.18 |
---|---|
천일여행 1731일째 2020년 3월 16일(월) 애틀랜타/맑음 (0) | 2020.03.17 |
천일여행 1729일째 2020년 3월 14일(토) 애틀랜타/맑음 (0) | 2020.03.15 |
천일여행 1728일째 2020년 3월 13일(금) 애틀랜타/대체로 흐림 (0) | 2020.03.14 |
천일여행 1727일째 2020년 3월 12일(목) 애틀랜타/대체로 흐림 (0) | 2020.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