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메 이야기

수선화에게(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정호승

송삿갓 2014. 6. 23. 11:30
 밤길을 달린다. 길을 밝히는 가로등이 달리는 차안의 내 얼굴을 앞에서 옆으로 그리고 뒤를 비치며 지나쳐 간다. 어떤 차는 나를 제치고, 때로는 내가 다른 차를 제쳐 앞서기도 한다. 또 어떤 차는 내 옆을 달리며 길동무 하기도 한다. 갈라지는 길을 따라 나가는 차도 있고 들어오는 길을 따라 들어오기도 한다. 방향과 목적지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치며 내가 어디 쯤 가고 있는지 그리고 가리키는 방향에 내가 가고 있는 길이 틀리지 않음에 마음이 놓인다. 하지만 역시 나 홀로 가는 길이다.

 수선화에게(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정호승

 울지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누군가와 아옹다옹하며 살면서도 불쑥불쑥 순간적으로 외로움이 밀려온다. “네가 곁에 있어도 네가 항상 그립다”라는 류시화의 시집 제목과 같이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순간에도 그리고 넓은 하늘을 바라보다 갑자기 세상에 혼자 있는 것 같아 외로움에 빠지기도 한다. 삶이란 그렇게 누구에게나 때도 없이 엄습해 오는 외로움을 느끼고 또 그것을 견디며 사는 것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외로 울 땐 누군가가 나를 위로해 줄 것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외로운데 내 가족이, 내 친구는 왜 전화를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는데 벨소리가 울리지 않으면 실망감에 외로움은 더 커지는 것이다. 차라리 내가 먼저 전화를 걸어 그가 외롭지 않은지 묻고 위로해 주는 것이 그도 나도 외로움을 잘 견디는 방법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더라도 나 혼자만 외롭다 처지면서 외로움의 늪으로 빠지지 말고 아픔과 슬픔으로 받아들이고 차라리 눈과 비에 젖으며 고독의 즐김을 택하는 것이 외로움을 잘 견디는 현명한 삶이다.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내가 외롭다고 하는 순간 내가 아는 누군가도 외로움에 젖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늘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듯이 누군가는 늘 나를 사랑한다. 미처 내가 표현하지 못 하듯이 나를 사랑하는 그 사람도 나에게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외로움 속에서도 그 사랑으로 나를 달래며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를 하는 것이 나와 그의 외로움에 맑은 물이 될 것이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외로운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뉘엿뉘엿 지는 해에 산그림자 멀리 퍼져가는 종소리도 혼자 외로워하지 않고 누군가를 찾는다. 나뭇가지에 아님 물가에 앉아 혼자 외로움을 달래려 하지 말고 누군가를 찾아 그 사람의 외로움에 기대어 숨결과 사랑을 나누자. 그래서 사람 (人)은 서로를 의지 하는 것이라 하지 않았는가. 누군가 함께 할 수 없을 땐 그냥 외로워하지 말고 음악과 책과 들리는 새소리와 함께 하며 고독으로 행복을 찾아 누리자.

 길을 달린다. 이정표를 따라 내가 가야 할 길을 달린다. 그곳엔 외로움을 고독으로 승화시키는 내가 기다리고 있다. 그곳을 향해 나는 달린다.

울지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June 2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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