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간의 선교여행”
언젠가 우연히 내가 접하게 된 책이고 그것을 읽으면서 나도 이렇게 살아 봤으면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지만 나도 이렇게 살아 봤으면 하는 생각은 선교를 하겠다는 사명감이나 바른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세계를 돌아 다닌다는 그리고 망망대해를 떠돌아 다닐 수 있다는 멋있는 생활에 대한 동경이 마음 속에 가장 크게 자리잡고 했던 생각이다. “나도 언젠가는 이렇게 멋 있게 살아 봐야지!”
나는 미국 생활에 적응 하는 듯 하면서도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 갈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며 하루 하루를 힘겹게 살고 있었다. 때로는 이곳 아틀란타로 장기 출장 왔거나 파견 온 것으로 생각 되어지고 출장이나 파견 기간이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 갈 것이라는 느낌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 화려했던 과거에 대한 동경이요 그 화려함이 다시 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나 아니면 지금의 힘든 하루하루에서 탈출구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나는 잠시 유배 생활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그만큼 지금의 내 생활은 꿈과 희망이 있고 화려함과 힘이 있었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 자리로의 회귀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맑은 하늘을 보면 과거에는 저 하늘이 아름다웠고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지만 나에게는 회귀해서 그 아름다움을 다시 느낄 꺼야 하는 막연함…
9월의 어느 날 “국제 오엠 퍼스팩티브 세미나”가 아틀란타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번뜩 내가 어떠한 틀 속에 들어가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 또한 내가 화려한 생활을 할 때 정기적으로 받았던 많은 훈련들의 주기가 나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서 망설이지 않고 신청을 하고 교육시작 3주 전에 교재를 받았다. 두께와 작은 글씨는 읽어 볼 생각을 절로 떨어지게 하였지만 사전에 꼭 읽어야 한다는 오엠의 당부와 훈련의 일부로 생각 했던 각오를 단단히 하고 나는 제1과를 읽었다. 그리고 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셨는지 확실하게 알게는 되었지만 너무 어렵다는 생각에 과연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내가 훈련이라 생각 했기 때문에 억지로 읽기는 하지만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주변의 어떤 사람이 “이번 강사진을 보니 선교를 아는 사람이 없어 교육의 효과가 별로일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듣자 힘이 빠지고 처음에 생각 하였던 틀에 박힌 훈련의 하나로 간단하게 생각 하기로 하였다. 그 와중에 밤 낮을 가리지 않는 설사와 구토로 음식과 모든 것을 가까이 할 수 없는 기간 10일을 보내고 나니 교재의 1/3정도만 읽은 상태에서 교육은 시작 되었다. 첫날 강의를 듣고도 이해를 할 듯 말듯한 상태로 집에 돌아와 계속해서 교재를 읽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얻는 것은 훈련의 일부로 그냥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새벽까지 책을 읽으면서 하루씩 지나 갔다.
예전에 프랑스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개미라는 3권짜리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개미의 생활과 심리를 다룬 소설로 베스트 셀러였고 다른 사람들이 우러러 보던 때였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읽어야 했기에 책을 접하였다. 그렇지만 1권을 다 읽도록 뭐가 재미 있고 뭐 때문에 베스트 셀러가 되었는지 알지 못해 몇 번이나 중단하고 싶은 생각을 하였다. 그렇지만 2권을 읽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책 속에 빠져 들어가 3권의 마지막 순간까지 쉬지 않고 읽어 버렸다. 그 때의 감동과 충격은 책의 내용을 대부분 잃어버린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미션 퍼스팩티브”
이 책에 내게 준 느낌이 개미와 비슷하게 중간에 접어 들면서 나를 흡입하기 시작 하였다. 선교의 철학,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조금씩 일깨워 주는 것이 정말 나를 놀라게 하였다. 세계 기독교 운동의 개척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정말 숨이 멎을 것 같은 감동과 흥분이 나를 혼미하게 만들면서 그 동안 내가 미국에서 살며 화려한 과거를 회상하며 언젠가는 돌아 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던 나를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거기에 교파를 초월하여 초빙된 강사들은 “이곳 조지아에 이렇게 좋은 목사님들이 많았나?”하는 놀라움의 연속 이었다. 때로는 어렵게 때로는 방향을 달리하여 쉽게 강의하는 것을 들으며 언젠가는 저 교회에 가서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야지 하는 생각에 벅찬 가슴을 가눌 길이 없었다. 교육 전에 누군가 이야기 하던 “강사진에 선교사가 없다”는 이야기는 정말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였고 거기에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하면서 “우리에게 선교는 전투”라며 충격적인 이야기로 말씀을 하시던 선교사의 강의는 선교를 말로만 떠들고 체계적이 교육 없이 하나의 봉사 정도를 생각하던 나를 거의 혼절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내일이면 이 교육은 끝나고 나는 마지만 과인 15과만 읽지 않고 있다. 어렸을 때 어쩌다 준 고깃국에 고기가 아까워 나중에 먹었듯이 그냥 읽을 수도 있지만 아깝다는 생각에 뜸을 들이고 있기도 하지만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 인들의 협력”이라는 제목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가 없다.
”나는 정말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벅찬 가슴이 언제 식어 또 과거의 화려함으로 복귀할 날을 꼽게 될지 모른다는 나약한 생각 때문에 숨을 고르고 있다. 내일이면 교육은 끝나고 강사진은 원래의 생활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의 이 자리에 남는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왜 있으며 앞으로 어찌 쓰시려 하십니까?
저는 나약하고 의지가 약하여 지금의 이 벅찬 가슴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더 오래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저는 지금 앞의 먼 곳에 희미하게 나마 빛을 보고 있습니다. 뒤에서 비추는 화려한 빛 때문에 앞에 있는 빛을 보지 못하였지만 뒤에 것을 거두니 저 멀리에 작은 빛이 보입니다. 저는 저 빛에 다가 가고 싶습니다. 이제는 화려했던 과거를 회상하지 않고 주변에 눈 돌리지 않고 오로지 저 빛에 다가가는 것이 하나님이 저를 쓰시고자 하는 것으로 믿고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시는 사명이라고 믿고 살아 갈 수 있도록 저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고 제가 나약해 질 때 저를 깨우쳐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땅끝까지 가라”는 그 빛을 바라보며 죽음이 다하는 그날까지 가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November 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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