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 최인호
2014년 7월 10일 오후5시 워싱턴 DC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부터 이상 하리 만치 피곤이 밀려와 자꾸 잠이 오는 것을 억지로 참아야만 했었다. 아침에 회사에 가기 직전 마지막 짐을 챙기면서 고른 책이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다. 공항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읽기 시작 하였다. 밀려오는 피곤함으로 글씨는 이중창에 비치는 것처럼 흐릿하거나 두 개로 보이기까지 하는 등의 피곤함과 겹쳐 자꾸 어떤 환상에 빠지는 듯 하면서 읽기와 중단을 반복하면서 공항에 도착하였다.
늦게 일어나도 되는 토요일아침에 꺼 놓은 알람이 정확하게 7시에 울리면서 K에게 혼란과 착각은 시작되었다. 현실은 현실인데 현실 같지 않은 그렇다고 환상의 세계나 가상현실도 아닌 것 같은 착각이 주인공 K를 더욱 이상한 나라 엘리스 같은 곳으로 끌어 들인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휴일 전날이면 ‘전야제’를 하자는 부부간의 섹스 신호에 시도한 금요일 밤의 정사에서 아내의 몸이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입관하기 전 얼굴을 만져봤던 느낌과 비슷하게 아내의 몸은 차갑고 흡사 냉동인간 같아서 섹스를 하지 못한다. 늦게 일어나도 되는 토요일아침 꺼 놓았던 알람이 울려 잠을 깨운다. 이유를 알 수 없다며 다시 잠을 청하려 하지만 잠은 이미 잘린 도마뱀의 꼬리처럼 달아나 버린다. 전날 과음으로 인한 불편한 속과 함께 찾아온 참기 어려운 요의로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뛰어가 볼일을 보고 거울을 보던 K는 당혹스러운 놀라움을 맞이한다. 결혼 15년 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나신으로 잠들었던 자신을 본 것이다.
‘전야제’를 하자는 부부간의 약속으로 섹스를 하고나서 늘 입었던 물방울무늬의 잠옷을 침대주변이나 늘 넣어두던 서랍장을 찾아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아침 준비를 하는 아내를 보며 소스라치게 놀란다. 자신의 잠옷을 아내가 입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낯설지만 눈앞에 현실로 보여 지는 것에 자신이 착각을 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의심한다.
본인이 늘 사용하던 After Save가 다른 브랜드로 달라진 것,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는 자신의 휴대전화, 딸이 키우는 강아지가 자신의 발 뒤꿈치를 물었던 것, 토요일 정오에 있는 처제의 결혼식에 참석하여 돌아가셨다 하여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장인과의 만남, 어떻게 자신에게 왔는지 모르는 게이바의 고급스러운 성냥, 그리고 자신의 전화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람과의 엉뚱한 곳에서의 만남, 그곳에서 자신을 유혹하듯 바라보는 묘령의 여인,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현실이 꿈도 생시도 아닌 낯선 현실에 혼란이 가중된다.
결국은 정신착란은 아닌가 하며 금요일 저녁에 같이 술을 먹었던 오랜 정신과의사 친구 H를 만나 상담을 받고 심하지 않은 공황장애 같은 것으로 진단을 받는다. 친구 H는 실험을 제안한다. 우선 동생의 결혼식 뒤풀이를 위해 딸을 데리고 친정에 가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전야제를 할 것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정말 현실이 아닌 것 같은지 확인하라는 주문을 한다.
비행기를 타고서도 피곤은 가시지 않았다. 출발하면서부터 찾아온 두통이 심해져 책 읽기를 포기하고 귀에 헤드폰을 쓰고 잠을 청하였다. 그리고 얼마나 잤을까 당연히 하늘에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던 비행기는 아직도 애틀랜타 공항의 활주로를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혹성탈출이라도 하듯 비행기는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올랐고 나는 다시 책을 들었다. 읽을수록 내 자신이 이상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 많이 겪었던 비행기 여행임에도 그 자체가 가상인 것으로 생각이 되어 내가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거듭되는 혼란으로 다시 찾아 온 피곤함에 책을 덮고 다시 잠을 청하려 하면 정신이 말똥말똥, 귀신에 홀린 것 같은 상태에서 책을 잡으면 혼란이 나를 휘감으며 내가 현재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꿈속에서 또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모를 삼각기둥의 거울로 채워진 공간을 헤매는 듯한 마음을 저버릴 수가 없다. 그러다 다시 열병을 앓듯 찾아오는 피곤함에 잠에 빠진다. 잠결에 ‘피츠버그’라는 단어가 귀에 들린다. 그 순간 워싱턴으로 가고 있는데 무슨 피츠버그 하며 ‘그래 책 때문에 역시 무슨 환상에 빠져 있는 거야’라는 위로를 한다. 비행기가 landing하는 소리에 잠을 깨는데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소리 “피츠버그에 도착하였다.”
‘잘 모르는 영어와 책 때문에 드디어 미쳤군.’ 하지만 현실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공항은 내가 알고 있는 워싱턴 공항처럼 크지 않고 작고 시골 같은 분위기가 짠~ 하며 등장한다. 순간 ‘내가 비행기를 잘 못 탔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에궁 영어도 못하는 게 이제는 비행기도 잘 못 타는 구나. 나도 다 되어 가나보다.’하데 워싱턴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온다. “언제 도착해요?” 나는 내가 착각하고 있다는 생각에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지금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라는 대답을 듣는다. 그러는 사이 마음속에서는 ”이곳이 피츠버그가 아니고 워싱턴일거야“라는 자신감 없는 희망을 가져본다. ‘만일 이곳이 정말 피츠버그라고 하면 내가 오늘 선택한 책의 저주인가?‘ 하는 얼토당토않으면서 불경한 생각까지 엄습하는 것을 말릴 수 없었다.
다시 기내 안내방송이 들린다. “이곳은 피츠버그입니다. 워싱턴 덜루스 공항에 폭풍으로 인하여 이곳으로 회항을 하였습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모르지만 현재 워싱턴 덜루스 공항은 폐쇄되어 있습니다. 기내에서 내릴 수 있으나 종이 탑승티켓 혹은 스마트 폰에 있는 탑승티켓을 반드시 가지고 내리시기 바랍니다. 이곳으로 회한 한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사과를 드리며 멀리가지 마시고 다음 안내를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워싱턴일거라는 희망이 사라지며 답답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가 실수로 다른 비행기를 타지 않았고 다시 워싱턴으로 데려다 준다고 하는 것과 잠시나마 불경스럽게 생각했던 책의 저주가 아니라는 것에 대해 안도감이 들었다.
거의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렸다가 다시 출발한 비행기는 원래 시간보다 두 시간 반이 늦은 밤 9시30분에 급체했다 꾸역꾸역 토해내듯 워싱턴 덜루스 공항에 내려줬다. 내려서 보니 돌아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드디어 자신들이 탈 비행기가 왔다는 미소보다는 내리는 사람들이 잘못이라도 한 것 인양 원망스러운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K는 정신과의사인 친구 H의 처방에 따라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전야제 약속을 한다. 실수하지 말라는 아내의 빈정거림에 약까지 먹고 시도를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H의 또 다른 처방인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서 자신을 확인하라는 주문에 어머니를 생각하지만 이미 어머니는 세상에 없다. 그래서 찾은 것이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누나를 찾는다. 연예인이었던 누나는 120킬로가 넘는 육중한 몸매의 여인이 되었고 누나가 재혼한 남편은 처제의 결혼식에서 만났던 장인이다. 그야말로 혼란의 혼란이다. 무엇이 진실과 거짓 사이를 분간하기 어렵게 살아야 하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작가 최인호는 이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가 자신이 자발적으로 쓴 최초의 장편소설이라고 소개하였다. 그동안 모든 소설은 타인의 요구 그러니까 연재소설 등으로 썼는데 이 소설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두 달 만에 쓴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또한 50년 작가 인생에 쓴 수백편의 소설 중 하나를 곱으라면 망설이지 않고 이 작품을 선택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사람은 살면서 많은 경우에 자신이 누구인가를 잊어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스스로가 낯설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리곤 나는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면 그리 길지 않은 순간에 더 이상의 생각을 할 수 없고 딱 멈춰버리곤 한다. 내 부모의 아들 혹은 딸, 내 아이들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 남편 혹은 아내, 내 형제들의 누나, 오빠, 형, 언니 혹은 동생, 그리고 내가 정기적으로 나가는 모임의 인원 중 한명, 내가 다니는 회사의 일원 내지는 학교의 학생, 그리고······ 내 자신이 잘났고 나를 참 잘 안다고 했는데······
거기서 멈춰 더 이상 생각하지 못하면 느끼는 감정, 참 낯설다. 나는 분명 나 일진대 낯설다. 내 자신이 그럴진대 내 가족, 내 형제, 내 부모는 더 말할 것도 없겠지.
차를 운전하는 중 다른 생각을 한다. 과거에 아쉬웠던 일들, 아버지와의 추억에 아이들과의 추억,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들, 몸은 운전을 하고 있지만 마음은 몸을 탈출하여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여행하면서 나는 두 개의 나로 분리된다. 순간 운전하고 있는 내가 낯설다. 아니 아예 누군지도 모르는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서 운전하고 나는 옆자리에 탄 것은 아닌가 하는 혼란이 온다. 운전하는 나는 마음이 그리는 사람들이 한 번도 대화를 나눠보지도 못한 사람들처럼 낯설다.
이 책은 소설은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단 3일의 일상을 그리며 K가 K1과 K2로 분리되어 각자 자신의 생활이 진짜인지 아니면 가짜인지, K1이 K에 가까운지 아니면 K2가 K에 가까운지 혼란을 거듭한다. 그리고 K1과 K2는 죽는 순간에 합체가 된다. 책의 마지막 3부는 월요일로 <Play>로 시작하여 ······(Stop)······(FF)······(Play)······를 반복하다 마지막 순간에 지나간 사람들이 등장하여 인사를 하며 죽음을 맞이하고 합체 후 끝은 <Power Off>.
인생은 결국 나와 나 아닌 것 같은 내가 서로를 찾아 하나가 되기 위한 여행이라고 한다면 너무 복잡한 것일까? 세상에 태어날 때 내가 나 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지 않는가? 자라고 배우면서 내가 나라는 사실을 더 많이 더 깊이 인식하는 그래서 더 성숙해 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아! 복잡하다. 나 아닌 나는 어디에 있는가?
따르릉 따르릉 따르르릉······ 자명종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울부짖는다. 투덜거리며 탁자위에 놓인 자명종의 버튼을 누른다. (Play)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
July 1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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