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박사가 사랑한 수식 - 오가와 요코

송삿갓 2014. 11. 26. 06:38

박사가 사랑한 수식 - 오가와 요코

 

이 책에서 등장인물은 많지 않다.

가사도우미(), 아들 루트, 박사, 그리고 박사의 형수인 안채의 미망인(노부인),

또한 소설의 환경도 그리 복잡하지 않다. 숫자와 야구,

 

소설이 초반에 박사의 형수인 미망인과 가사도우미인 나(주인공)를 만나는 장면이다.

그분을 뵐 수 있을까요?”

그럴 필요 없어요.”

너무도 단호하게 거절하는 바람에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실언을 한 것처럼 민망했다.

오늘 얼굴을 뵈도 내일이면 잊어버려요. 그러니까 만날 필요 없어요.”

무슨 말씀이신지······.”

단적으로 말해서 기억을 못하는 거죠. 노망이 든 것은 아닙니다. 뇌세포는 건강하게 움직이고 있으니까요. 다만, 17년 전에 뇌에 미세한 부분에 장애가 생겨서 기억하는 기능이 사라졌어요. 교통사고를 당해서 뇌를 다쳤거든요. 도련님의 기억은 1975년에 멈춰 있습니다. 그 후에는 새 기억을 아무리 쌓으려고 해도 금방 무너지고 말아요. 30년 전에 자신이 발견한 정리는 기억해도, 엊저녁에 뭘 먹었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간단해 말해서, 뇌 속에 80분짜리 테이프가 딱 한 개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새로운 것을 녹화하면 이전의 기억은 깨끗이 지워집니다. 도련님의 기억은 80분밖에 가지 않아요. 정확하게 1시간 20.”

 

박사는 새로운 가사도우미가 오면 가장먼저 신발 사이즈를 묻는다.

박사가 가사도우미 주인공 를 처음 만난 날 역시 신발사이즈를 물었고

“24”라는 대답에

오오, 실로 청결한 숫자로군, 4의 계승이야.”라는 숫자풀이를 한다.

전화번호가 뭐냐고 묻는 박사의 질문에 “5761455”라는 대답을 하자

1에서 1억 사이에 존재하는 소수의 개수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그러니까 숫자에 관해서는 교통사고 이전부터 가진 수치해석의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수학적 능력은 가지고 있어 <Journal of Mathematics>의 수학풀이 공모에 참여하여 상금을 받는 것이 유일한 외부와의 연결고리다.

 

박사의 기억력이 80분짜리 테이프,

그래서 박사는 양복에 클립으로 고정된 메모지가 붙어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80분 기억력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기억해야 할 것을 메모하여 양복에 붙이는 것이다. 따라서 가사도우미가 처음 오면 생김새 등을 메모지에 그리고 메모하여 양복에 붙여 기억하는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많은 숫자의 해석에 관한 용어가 나온다. 소수, 약수, 우애수, 완전 수 등의 설명을 한다. 28이란 숫자를 이렇게 해석한다.

숫자, 28, 자신 이외의 약수를 전부 더하면 되는 숫자 28, 이를 완전수라고 한다.

약수는 주어진 숫자(ex 28)를 나누었을 때 나머지가 0이 되는 숫자가 약수다.

따라서 28의 약수는 1, 2, 4, 7, 14로 이를 더하면 28이기에 완전수라 하는 것이다.

 

80분 밖에 기억하지 못하고 외부와 단절되어 사는 박사도 가사도우미의 아들을 만나는 과정에서부터 인간으로서의 정이 있음을 묘사한다. 박사는 가사도우미의 10살 아들을 만나 머리를 쓰다듬으며 평평한 것에 착안하여 이렇게 이야기 한다.

너는 루트다. 어떤 숫자든 꺼리지 않고 자기 안에 보듬는 실로 관대한 기호, 루트야.”

이렇듯 박사는 거의 모든 것을 수학적 개념으로 분석하고 해석한다.

박사와 루트가 만난 것을 계기로 박사는 더욱 적극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그의 공간에 루트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숙제를 돕거나 내 주기도 하면서 우정을 쌓아간다. 박사가 루트에게 알려준 수학을 잘하는 방법으로 모든 숫자에는 의미가 있으니 잘 생각하며 다루면 수학을 잘 할 수 있음을 설명한다.

그리고 둘을 이어주는 다른 것이 야구다. 물론 박사의 기억은 루트가 태어나기도 전인 1975년에 멈춰 있어 야구에 대한 둘의 대화에 동문서답 같은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어린 루트의 배려심 깊은 행동으로 어려움을 극복한다.

 

만일 나에게 80분만 기억할 수 있다면 어떨까?

많이 답답해 할 것이지만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해결책을 찾을 것이다.

박사와 같이 메모를 하여 클립으로 양복에 붙이는 방법,

아니면 녹음을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80분이던 더 길던 무시하고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은 답답하고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을 자신의 방법으로 해결방안을 찾아 사는 것 그게 사람이다.

 

이 소설의 탄생은 순수작가 요코씨가 수학자 후지와라 마사히코를 만나 1년 반 넘게 준비하여 탄생하였음을 책의 말미 작품해설을 통해 소개한다. 순문학 작가와 수학이 만났을 때 태어날 수 있는 이야기, 어쩌면 수익성 측면에서 최악의 조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용하고 차분한 환경과 절대 불변의 숫자의 만남은 굴곡이 없어 재미를 덜 할 것 같지만 맑은 소년 소녀의 사랑이야기를 풀어 가듯 전개해 가는 과정은 새벽안개가 걷혀가는 것과 비슷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

 

참 색다른 소설을 참 색다르게 읽었다. 내가 처음으로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소래 내어 읽었다. 때론 피곤함에 목소리가 잠기기도 하고 혀가 꼬이는 일도 있었지만 내 자신과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위해 읽었기에 더욱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도 소설에 빠져 숫자놀이를 한다. 약수, 소수, 완전수......

 

Nov 25,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