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그리움을 위하여 - 박완서

송삿갓 2014. 10. 18. 17:09

 그리움을 위하여 - 박완서

 결국은 일어나고야 말았다. 금요일, 혼자고 꾸역꾸역 먹은 저녁이 소화가 잘되지 않아 속을 부대끼고 그로 인해 찾아 온 두통이 내 잠을 망쳤다. 해서 혹여나 책을 읽으면 다시 잠을 잘 수 있을까 하며 다시 찾은 책이 박완서의 단편 그리움을 위하여. 읽는 것을 마치고도 잠을 청할 수 없어 팝케스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을 통해 다시 한 번 전부 들었다. 읽고 듣기를 모두 해도 잠에 빠지기는커녕 다시 눈만 말똥말똥 해진다.

 그래서 결국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고야 말았다. 이 책의 주인공 그러니까 말하는 이의 사촌 여동생이 겨울에 날씨만 추워지면 심하게 찾아오는 온몸의 마디마디 쑤셔 오는 통증에 웬수 관절 또 도졌다또는 이놈의 관절만 없다며이라며 푸념 가는 것처럼 나도 웬수 불면증이 또 도졌다.’ 혹은 이놈의 불면증만 없다면하고 푸념을 하고 싶을 정도로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불면증에 결국은 항복을 하고 잠자리에서 일어나고야 말았다. 단편이기에 소설 전부를 읽고 인터넷을 통해서 소설 듣기를 마친 이 시각이 새벽 240분이니 내가 잠을 잔 것은 아마도 두 시간 남짓이었다.

 

 이 소설 그리움을 위하여는 화자(말하는 이)와 그녀의 사촌 동생의 삶의 방식을 대비하여 아줌마 수다를 떠는 것 같은 소설이다. 화자는 자신의 틀에 갇혀 모든 것을 자신의 틀에 맞춰 해석하고 틀에 갇혀 사는 여인이다. 부유하게 자라고 결혼을 해서도 다른 사람과는 크게 다르 게 수발을 드는 식모까지 두고 시집살이를 하고 파출부의 도움을 받아 산 그러니까 손에 물 많이 안 묻히고 산 주부이며 할머니다.

 

 소설의 시작은 유난히 추운 겨울로부터 출발한다. 눈이 많이 내린 겨울에 스키 캠프를 간 손자를 생각하며 자연 눈에 스키와 썰매 타는 것을 생각하며 '기분이 좋다'고 했고 집 앞 숲에 보이는 설경을 보며 '기막히다'는 것을 이야기 하지만 눈에서 미끄러져 몇 번의 수술과 함께 말년을 고생한 친정어머니 때문에 눈이 무서워 자신은 밖에 나가지 않는 다는 것으로 틀에 갇혀 산다는 것을 암시한다.

 반면 화자와 한 집에 태어나 유년기를 같이 보낸 사촌 동생은 공부에 취미가 덜 해 중학교도 진학을 하지 못하였지만 집안일을 도우며 두 동생 뒷바라지 까지 하였다. 바지런할 뿐만 아니라 어른 들이 얼굴 값 할까 봐 전전긍긍 했을 정도로 얼굴이 예쁜 사촌 동생은 열두 살이나 더 먹은 유부남하고 연애하여 부모를 놀래키더니 결국 그 남자를 이혼시키고 정식부부가 되는 그런 여자다. 하지만 그 사랑은 불행을 자초하여 어려운 시집살이를 하다가 물려받은 시골의 땅 값이 올라 겨우 집 한 칸을 마련하여 살만 하는 듯하였지만 무능한 남편의 잘 못 된 빚보증으로 그 집마저 날리고 넉넉지 않는 자녀들의 도움으로 화자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동네의 옥탑방에 전세로 들어앉는다. 옥탑방이라는 것이 겉만 번지르르 하지 환경이 좋을 리 없다.

 곤궁한 살림을 타개 해 보고자 파출부를 찾는 동생과 파출부를 필요로 하는 화자와 시간 때가 맞아 동생은 언니의 집일을 돕게 되었다. 바지런하고 음식 잘 하는 동생은 화자의 또 다른 틀을 만들에 주는데 일조를 한다. 화자는 동생의 음식 솜씨를 믿고 종종 주변사람들을 초대하고는 한다. 화자의 주변 친구들이 네 음식솜씨 맛을 보자라며 요리를 요구하면 자신의 솜씨로 위장하여 손님들을 맞이하고 오는 손님들이 동생을 군식구로 생각하면 사촌동생이라며 자기 집안의 체면을 구기지 않으려는 잘 꾸며진 사진틀로 포장을 한다.

 

 화자가 과부가 되고 3년째 되는 해에 동생도 과부가 된다. 삶이 곤궁하고 언니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동생은 남편이 죽기 직전에 했던 사랑한다.’는 말에 무능력하고 평생 어려운 삶을 살게 한 남편의 모든 죄를 사하고 그 한마디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그야말로 사랑을 찾아 삶을 살아가는 여인이다.

 여름은 선풍기 두 대를 틀고 속옷을 물에 적셔 그 냉기로 잠을 청해야 할 정도로 열악한 옥탑방에서 사는 동생, 화자인 언니가 이름이 어렵다고 그냥 사랑도라고 표현하는 사량도에서 노년을 민박집을 하며 살아가는 친구의 초청으로 바캉스를 간다며 옥탑방과 언니의 틀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그곳은 동생의 또 다른 로맨스가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세상이다. 잠시일 것으로 생각한 화자는 동생이 돌아오지 않자 자신이 틀에서 벗어 날 것을 두려워하며 동생을 다시 불러들이려 하지만, 유부남과 연애하며 결국은 이혼시켜 자신의 사랑을 이루고 평생 많은 고생을 시킨 남편의 마지막 순간에 했던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동생은 자신의 방식대로 새로운 로맨스를 선택한다.

 어렵사리 가졌던 집을 남편의 빚보증으로 날렸던 동생은 새로 만난 사랑이 자신의 이름으로 만들어 준 집문서에 감동하고 자신에게 처음부터 깍듯이 보고, 드소, 같다 오소, 하는 식으로 존댓말을 쓰며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도 서로 열심히 들어 준다며 자랑스레 수다를 떨며, 자신의 선택에 스스로 감동하는 사랑에 죽고 사는 로맨틱 여자다.

 하지만 화자인 언니는 어떤가? 동생에게 항상 베푸는 입장이라는 우월감을 가졌고 상전의식으로 언제라도 동생을 부릴 수 있다고 그래서 어떻게든 사랑도로 동생을 보내지 않으려 주변의 가족들을 설득하려는 시도까지 서슴치 않는다. 그 내면에는 주변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음식솜씨를 더 이상 보여 줄 수도 없고 남편의 제삿날이나 명절에 상을 차릴 수 없는 것에 걱정과 분개를 하지만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는 것을 어찌 잡을 수 있겠는가?

 결국 동생을 더 이상 부릴 수 없다는 걸 인정하며 상전의식을 포기하고 자매애를 찾으며 기분이 좋아진다는 표현을 하였다. 동생에 대한 자신의 틀을 깨는 순간이다.

 

 화자는 그립다는 느낌은 축복이다.’말로 자신의 틀에서 깨어나며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한다.

 ‘그동안 아무 것도 그리워하지 않았다. 그릴 것 없이 살았음으로 내 마음으로 얼마나 메말랐는지도 느끼지 못했다. 우리 아이들은 내년 여름엔 이모님이 시집간 섬으로 피서를 가자고 지금부터 벼르고 있지만 난 안 가고 싶다. 나의 그리움을 위해, 그 대신 택배로 동생이 분홍빛 도미를 부쳐올 날을 기다리고 있겠다.’

 마무리하고 잠시 멈춘다. 창에 흐릿하게 비쳐진 내 모습을 보며 생각해 본다. ‘내가 갇힌 틀은 무엇인가? 내가 지금 무엇을 그리워하며 앞으로 그리워 할 나의 그리움은 무엇인가? 그러면서 소설의 환상에 빠진다. 틀에서 빠져 나오기로 작정했으면서 왜 동생에게 다가가지 못하는가? 그동안 동생에게 사랑을 준 것처럼 위장해서 미안한 마음이 가득한가? 나는 풍랑이 이는 뱃길을 화자를 이끌고 사량도로 가려는 듯이 몸과 마음이 바다에 떠 있는 것 같은 상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잠 못 이루는 새벽을 보내고 있다.

 Oct 18,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