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송삿갓 2016. 1. 28. 23:27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이 책의 후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왜 그런가 하면 충격이 너무 커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다른 경우 충격이 크면 정신이 몽롱해 지는데 이 책을 읽고는 오히려

책의 내용들이 뚜렷하고 분명하게 재생되면서 손과 마음을 떨리게 한다.

 

책의 뒷 표지에 이런 글이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을 사람도 불쌍하고

읽지 않을 사람도 불쌍하고

그냥 모두 다 불쌍해······“

나는 차라리 읽지 않고 불쌍한 것이 좋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문득하게 되었다.

 

전쟁

이 한 단어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답답하고 막힌 가슴을 후련하게 해 주는 폭발과 굉음이 난무하는 영화?’

아님 처절하고 혼잡함 속에서도 달달하게 피어나는 사랑?’

그것도 아님 상대를 위해 자기 목숨을 던지는 의리?’

! 모두가 남자 위주의 이야기다.

전쟁은 남자의 것이고 여자는 그저 하나의 부속물처럼 인식되어있다.

그게 내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가졌던 전쟁에 대한 인식이었다.

 

이 책은 독일과 소비에트 연방의 4년간 치렀던 제2차 대전에 관한이야기다.

그 중에서도 소비에트 연방의 동쪽 유럽과 가까운 민스트를 수도로 둔 벨라루스 공화국,

벨라는 흰색을 뜻하고 루스는 러시아로 예전에 한국에서는 백러시아라고도 했단다.

이 전쟁으로 벨라루스 인구의 1/4이 죽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가족이

처참히 파괴되고 복구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까?

 

지금까지 모든 전쟁에서 소외 되었던 여자들이 적어도 이 전쟁에서만은 그러지 않았다.

국가를 위해서는 15, 16살의 어린 나이에도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최전방으로 가기위해 떼를 쓰며 항명을 하기도 하였다.

4년의 전쟁으로 독일군을 내몰고 베를린까지 진격하는 승리를 거뒀다.

 

승리의 여전사들에게 남은 것은?

승리의 축배?

가지가지 전쟁 영웅 메달?

그리고?

 

책의 거의 끝에 가면 이런 내용이 있다.

전쟁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힘들었어. 그런데 전쟁 후에도 고통을 겪어야 했지.

또 한 번의 전쟁을 치러야 했으니까.

앞선 전쟁만큼이나 끔찍한 또 한 번의 전쟁,

무슨 이유인지 남자들은 우리를 저버렸어. 모른체했지.

전쟁터에서는 그렇지 않았는데, 기어가는데 포탄 파편이나 총알이 날아오잖아······

그러면 남자병사들이 보호해줬어······ 어느 병사가 됐든 엎드려요, 자매!’라고

소리치며 달려들어 자기 몸으로 우리를 감쌌지.

총알은 이미 그 병사에게 박히고······ 병사는 죽거나 부상을 당했어.

나는 그렇게 세 번이나 목숨을 건졌지.

 

분명 전쟁터에서는 남자들이 여자를 감싸고 보호해 주려는 본능이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자기 살던 고향의 마을로 돌아 왔을 때는 외면당했다.

남자들로부터, 주변의 친지들로부터, 가까이는 가족으로부터 말이다.

 

책에 남자들의 이런 변명이 있다.

그런 여자들이랑 정찰은 같이 갈 수 있을지 몰라도 결혼은 하지 않을 거요.

그게, 그래요······ 우리 남자들은 여자를 엄마나 아내로 생각하는 데 익숙해요.

결국은 아름다운 숙녀에게 익숙하다는 거요.

그러니까 전쟁터에서는 분명 여자였는데 전쟁이 끝나고 나니 그들은 여자가 아니다

된 것이다. 전쟁 중에는 남자처럼 바짝 자른 짧은 머리에 남자들의 속옷에

남자들의 군복에 자기 발싸이즈보다 둘 내지는 셋 큰 군화를 신었을 때는 여자였는데

집에 와서 드레스를 입고 뾰족 구두를 신고 립스틱을 발라 여자로 치장했는데

엄마나 아내로 생각 되지 않아 결혼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누군가 나쁘다는 말을 쉽게 옮기고 너무도 쉽게 믿어버린다.

승리를 하고 전쟁터에서 여자들이 돌아 왔는데

군대에서 남자들과 잠자리하고, 빨래하고 창녀 같은 일을 했대라는 말을 옮기고

듣는 사람은 자기가 본 듯이 쉽게 믿어 다른 사람에게 전하며

전쟁에서 돌아온 여자들은 자신들에게 접근하기 못하게 했다는 내용도 수 없이 나온다.

 

어떤 애 엄마가 전쟁이 터져서 조국을 구하겠다고 전선에 갔다 승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말을 타고 돌아온 엄마를 바라보는 자신의 딸의 반응이 이랬다 한다.

나는 그때 남자군복에 군모를 쓴 채 말 위에 앉아 있었어.

당연히 딸아이는 엄마도 할머니나 다른 아줌마들처럼 생겼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그런데 난데없이 남자군인이 왔으니. 딸아이는 오랫동안 내 품에 안기지 않았어.

내가 무서웠던 게지. 가슴이 너무 아프더라고. 하지만 어쩌겠어.

내가 키우지 못했는데. 우리 애는 할머니 손에 자랐어.

 

이를 뭐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빠가 돌아오면 엄마는 아이들에게 전쟁영웅으로 만드는 노력을 해서

아이들이 오랫동안 보지 못한 아빠에 대해 자부심과 자랑을 불어 넣어 줬는데

이 엄마는 자기 딸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이런 여성들이 군 생활을 어떻게 했냐고?

분명 여성들은 남자보다 체력이 약하다. 그래서 사무병, 혹은 통신병 같은 분야를 추천.

하지만 많은 여성들은 거부했다고 한다. 최전방, 소총수 혹은 저격병을 자원했다.

그들에게 보여진 전쟁의 색깔은 어땠을까?

 

전쟁이 몇 년동안 있었지? 4, 그래. 참 길기도 했네······

그런데 그 4년 동안 꽃이고 새고 전혀 본 기억이 없어.

당연히 꽃도 피고 새도 울었을 텐데. 그래, 그래······· 참 이상한 일이지?

그런데 정말 전쟁영화에 색이 있을 수 있을까?

전쟁은 모든 게 검은색이야, 오로지 피만 다를 뿐, 피만 붉은 색이지

 

붉은 피 때문에 전쟁이 끝나고 시장을 못 간다는 여성

고기를 절대 먹지 못한다는 여성

뿐만 아니라 평생 붉은 색 옷을 입지 못한다는 여성도 있다고 한다.

 

그런 참담함 속에도 전쟁 중에 여자의 본능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 흔적도 엿보인다.

처음엔 죽음이 두려웠지······ 그리고 동시에 죽음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어.

그러다 나중엔 너무 힘들고 지쳐서 이도 저도 아니게 되었지만.

늘 내 능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상황 속에 살았지.

내 한계를 넘어서는 일도 많았지.

마지막까지 나를 두렵게 한 것 딱 하나였어.

흉측한 꼴로 죽어 누워 있는 것, 그건 여자이기에 갖는 공포였지·······

제발 포탄에 맞아 갈가리 찢기는 일만 없기를 바랐어·······

 

우여곡절을 겪은 처절한 전쟁에서 몸과 마음의 부상을 입고 집으로 돌아와

주변의 이웃들은 물론 가족에게까지도 냉대를 받고

남편과 국가로부터 침묵을 강요받아 속이 썩어드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그들은 자신에게 어떤 보상을 해 주었을까?

우리는 단련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단단해 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고통을 감수하는 훈련을 해야 하고

비슷하게 어려움을 겪고 나면 단단해 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과연 전쟁으로 인한 고통이 그들을 강하게 만들었을까?

 

나는 예전에, 고통은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고,

고통을 이겨낸 사람이야말로 지기 삶의 온전한 주인일 거라고 생각했다.

고통의 기억이 자신을 보호한다고.

그런데 이제 언제나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자들을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전쟁에 자발적으로

아니 때로는 나이까지 속여 가며 우겨서 갔던 전쟁은

그녀들에게 또 하나의 참고 견뎌야 하는 모성을 강요하였다.

승리의 몫은 국가가 남자들이 대부분 차지하고 여자들에게는 또 다른 고통만 주었다.

 

우리는 승리를 빼앗겼어.

우리의 승리를 평범한 여자의 행복과 조금씩 맞바꾸며 살아야 했다고.

남자들은 승리를 우리와 나누지 않았어.

분하고 억울했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

전선에서는 남자들이 우리를 존중하고 항상 보호해줬는데.

 

여운이 남는다.

잔잔한 것이 아니라 소용돌이치는 분함이 그리고 떨림이 남는다.

당분간은 전쟁 영화를 외면할 것 같고

전쟁을 일으키는 국가에 대한 반감이 커질 것만 같다.

싫은데.

싫어지는 거 많으면 마음에 독이 생기는데

그냥, 예쁘고, 즐겁고, 사랑하고, 행복하고 그러기만을 바라는데······

 

January 28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