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이애경-
입국 게이트 앞에서
인천공항에 도착해
게이트로 나갈 때면
가끔 이런 상상에 빠진다.
누군가 몰래 마중 나와 있다가
나를 놀라게 하지 않을까.
오늘도 무정한 상상을 하다
게이트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환영’이라는 사인보드의 목적지가
마치 아를 향한 것처럼
그 다정함이 그리웠기에. p211
나는 공항의 이별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가 마중 나오는 것을 질색한다.
마중 나온 사람이 혼자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쓸쓸할까 하는 것 때문이다.
하지만 해외 출장을 돌아오는 길에
가끔은 작가와 같은 생각
사인보드를 들고 있는 많은 사람들 중
내 이름이 없는지 살피며 걷는 것
한 편으로는
‘나는 아무도 마중 나와 있지 않아도 당당하다’는
내 자신을 위로하는 속절없는 자긍심
사랑이 0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더해도
빼도
항상 변하지 않고
그대로일 수 있으니. p166
사랑은 나이를 불문하고 유치하다고 한다.
그래 사랑의 깊이가 더 할수록 더 유치한 것이 아닌가?
언젠가 남녀의 사랑은 80일이 지나면 변하기 시작한다는 글을 읽었다.
나는 절대 그러지 않는다.
아님 우리 사랑은 너희들과 달라
그렇게 자부하는 사랑도 변한다고 하는 내용이다.
나도 그랬다.
난,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사랑이 익숙해 질 무렵
조금은 소홀해 지는 것 같은 내 자신을 발견하곤
‘정신 차려’라며 다잡곤 하며 발버둥 쳐 보았다.
“너 변했어”하는 말에 뜨끔하며
마음속 숫자를 세며 사랑을 다지기도 하였다.
결국 ‘80일’ 운운했던 것은
사랑이 변한다는 것을 지적하기 보다는
변하지 말라고, 처음처럼 늘 사랑하라는
아주 좋은 말임을 알았다.
난, 오늘도 사랑한다.
내 사랑은 ‘0’이기를 다짐한다.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는
늘 있는 그대로의 사랑
작가는 ‘여행을 떠난다는 건 빡빡한 현실에서의 도피나
못 말리는 방랑벽에서 나온 비정기적 탈출 해위는 아니다.
그건 무대 위에 서 있는 나를 관객석으로 잠시 내려놓고
조금 더 객관적으로 나를 돌아보기 위함‘이라 하였다.
난, 적어도 지금의 나는
여행은 나를 돌아보기 위함이 아니라
사랑을 속삭이고
조금은 흐릿해 질 수 있는 사랑을
더 선명하게 추억하나를 새기는 것이다.
그 추억이 쌓이고 쌓여
먼 훗날 하나씩 꺼내며 사랑의 돼새김질을 위함이다.
나는 내 여행을 그렇게 믿고
아(我)해도 그러리라 믿기 때문이다.
책에서 세느강이 흐르는 파리의 사진이나
사막을 줄지어 걷는 낙타의 사진을 보고
‘나도 저 추억이 있는데’ 하며 반가웠다.
January 2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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