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 여행

천일여행 320일째, 2016년 5월 5일(목) 애틀랜타 맑음/소나기/강한바람

송삿갓 2016. 5. 6. 08:42

천일여행 320일째, 201655() 애틀랜타 맑음/소나기/강한바람

 

이른 아침에 클럽으로 운동하러 가서 도착하면

나 잘 도착했어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골프백에서 커피컵을 꺼내 들고 Grill로 간다.

그곳에서 컵에 따스한 커피를 가득 담고 사과 한 개, 두 개를 들고 다시 차로 돌아온다.

그 때 여러 사람들을 마주치게 되는데 아는 친구도 있고 처음 보는 사람도 있다.

아는 친구는 조금 더 반갑게, 처음 본 사람에게도 웃으면서

"Good morning!", 혹은 “How are you?" 하며 인사말을 건네고

한두 마디 쯤 더하며 아침인사를 한다.

오늘도 그릴로 가는 길에 운동을 마치고 커피를 가지러 온 듯한

경쾌한 발걸음의 African American 한 명을 만나 인사를 하고

다시 차로 돌아오는 길에 다른 사람을 만났는데 연신 전화만 바라보다

나와 가까워지면서 고개를 더 숙이고 그냥 지나치려 하기에

"Good morning!'하며 인사를 하자 마지못해 답을 하곤 빠르게 발걸음을 한다.

 

나는 원래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어릴 적 누구 앞에 나서서 뭔가 하는 기억은 거의 없었고

혹여나 앞에 나가 노래라도 하라면 몸을 비틀면서 안 나가던가

나가더라도 머뭇거리다 들어오곤 했었다.

대학에 들어가 그걸 좀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였지만 용기가 부족하고 기회도 없었다.

1학년 2학기 때 군대를 가려고 했었는데 성격을 바꿔보고 싶은 생각과

몸을 더 튼튼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하다 결국 포기하였다.

2학년 때 후배들이 입학하여 조금 남자답게 보이고 싶은 행동을 하려했지만 정말 할게 없어

조금 과격하게 술 마시는 것으로 객기를 부려보기도 했지만 그건 술 먹을 때만······

 

내가 획기적으로 바뀌게 된 게 ROTC 때문 이었다.

, 어쩌다 ROTC를 들어가게 되었는지 긴가민가하지만 10.26로 박정희 대통령이 죽은 시점

ROTC를 지원하였고 그리 힘들지 않은 몇 가지 Test를 한 후 합격하였다.

다음 해 3학년이 되기 직전인 21ROTC는 미리 훈련을 시작한다.

그리고 3월초 입단식이라는 것을 통해 정식 장교후보생인 ROTCian이 되는 것이다.

때 마침 내가 몸담고 있던 이념써클에서 내가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2~3일 후 내 인생을 바꾸는 사건이 바로 ROTC에서 간부가 되는 일 이었다.

1년 선배 이면서 간부였던 문영춘’, 그가 날 조용히 불렀다.

2월에 호되게 훈련을 받은 터라 선배가 개별 호출하면 좋지 않은 거라 바짝 긴장하고 만났다.

지나쳐 가기도 싫다는 ROTC 간부들의 사무실인 명예위원실

나는 눈도 껌벅이지 못하고 부동자세로 있는데

"송권식, 네가 이데알레 회장이 되었다면서?“

, 그렇습니다.”

당장 그만둬!”

“???”

정말 바짝 군기가 들어 있던 때라 쫄아서 아무 말 못하고 있자

선배 말 안 들려?”

참 생각이 복잡해져 어지러운데

너 명예위원 해야 하니 그만 둬!”

아니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냐?

내가 명예위원이라니?

 

어느 학교든 ROTC에는 6명의 명예위원이 있다.

나서기를 좋아하거나 폼 잡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명예위원이라는 간부를 하고 싶어 하지만

대부분은 다른 일반 동기들에 비해 기합도 더 많이 받는 것은 물론

시간도 더 많이 빼앗기기 때문에 피하려고 하는 게 명예위원

명예위원은 국가에 더 충성심을 요구되기 때문에 이념써클 같은 회장 못한다.

그리고 할래야 할 시간도 없을 거야. 그러니 그만 둬!“

그만 두는 것은 좋지만 명예위원은 싫은데

하지만 결국 1주일 만에 회장직을 사퇴하고 명예위원이 되었고

다른 동기들에 비해 훨씬 더 혹독한 훈련과 기합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후에 거의 끊이지 않고 뭔가 모임에 임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다니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장교로 임관해서 통신학교에 갔을 때, 총무

군대를 제대하고 회사에 들어갔을 때, 회장

미국으로 이민 와서 은둔생활을 하다 거의 8년 만에 등장 했을 때, 회장

ROTC와 관련된 임원이 이어졌다.

 

내성적으로 사회성이 떨어졌던 나를 대학시절 ROTC에서 명예위원을 하면서

밀려서라도 앞으로 나서고 겉으로 드러내야 하는 성격으로 훈련하며 키워졌다.

그럼에도 가능한 뒤로 숨으려 하고 나타나지 않으려 했던 성격이 남아있어

길이나 대중교통, 엘리베이터 안에서 누군가와 마주치면 고갤 떨구며 시선을 피했고

새로운 모임이나 행사에 가서도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려는 노력보다는

눈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있다가 슬며시 나오는 일이 내게는 더 편했다.

 

미국으로 왔다.

길에서 운동을 하다가, 복도에서나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와 마주치면 고개를 숙였지만

상대가 먼저 "Hi!" 혹은 “What's going on?” 하면 마지못해 작은 소리로 “Hi!'하는 게 전부였다.

그게 반복되고 사업을 하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인사하는 습관의 훈련을 하게 되었고 조금씩 개선되었다.

모임이나 행사에 가서도 가능한 아는 사람을 찾기도 하지만

모르는 사람과도 이야기를 나누려는 노력도 하면서 나름 많이 바뀌었다.

그러니까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들 문화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했다는 이야기다.

 

미국에 살기 시작한 지 이번 주가 만 17년이 된다.

아직도 숨고 나서지 않으려는 습성이 내재되어 있지만 그럴 때면 나를 다독이며 끄집어낸다.

최근에 한국에 가면 길을 걸을 때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사람들을 바라보고

눈인사는 물론 입으로도 인사를 하려는데 대부분 고갤 돌리며 거부한다.

아차! 여긴 한국이지하며 그러지 말겠다고 생각하지만 금방 잊는다.

그 만큼 미국생활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운동하러 갔다 만난 백인이 그러는 모습을 보며

내가 저런 모습이었지하며 ROTC와 관련된 인생여정을 생각게 하였다.

 

오늘은 어제 컴퓨터에 문제가 있다고 전화를 했었던 선배와 점심을 먹었다.

문제가 있다고 전화했던 것을 해결해 주지 못해 마음에 걸려

전화를 했는데 직원이 해결했다며 함께 점심을 하자해서 샤브샤브에서 먹으며

여행을 못 가게 된 이야기나 애틀랜타 한인사회를 많이 접하지 않아

잘 모르고 있던 여러 가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운동을 끝나고 사무실로 오는 도중 Liana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QuickBook이 잘 안 된다는 이야기다.

들어서자마자 설명을 듣곤 무슨 문제인지 파악이 돼서 해결하였다.

내가 없을 때 이런 일이 생기면 어쩌지?

 

오늘 오후에 바람이 많이 분다는 예보가 있었는데 집에 도착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풍이 불면서 소나기가 한 참을 내렸다.

저녁 무렵에 비는 그쳤지만 길 건나 호텔의 깃발이 떨어져 나갈까 걱정 될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면서 바람을 안고 걷는 사람들은 멈칫하며 앞으로 전진한다.

연어머리를 굽고, 콩나물 삶아서 무치고, 알찌개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오늘도 특별히 할 일이 없어 일찍 침대로 향한다.

내일이 주말이네······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