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메 이야기

한 해를 마무리하며...

송삿갓 2011. 12. 30. 10:35

밭이랑의 두둑에 담배 모종을 심으면

월요일 아침 초등학교 조회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잘 자라라고 모종에 물주고

고랑에 풀이 지라면 김을 매주고 하면

담배 잎의 넓이가 소머리만 해 질 때면 따기를 시작한다.

 

담배 잎줄기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지게위에 차곡차곡 쌓아 집으로 지고 와서

마당에 깔아 놓은 멍석위에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지붕에 올릴 이엉 엮듯이

새끼를 반대로 틀어 공간을 만들고

정성스레 따 온 담배 잎 2~3개씩 공간에 깨워 넣고

빠지지 않게 새끼 꼬는 방향으로 틀기를 20여번 반복하면

말리기 기초 작업은 끝이 난다.

 

흙벽돌로 2~3층 높이로 만든 건조실에

엮어 만든 담배 줄을 빨래줄 매달 듯

한쪽씩을 벽에 묶어 나가고 제일 윗줄 끝나면 한 칸 아래에

그 아래가 끝나면 또 그 아래 단으로 내리기를 반복하면

말리기 준비 끝이다.

 

윗 화덕 제일 아래는 장작을 넣고

그 위에는 석탄과 황토 흙을 일정비율로 섞은 묽은 탄을

장작위에 고루 덮고 판판하게 고르면

아래 화덕에 불쏘시개로 불을 붙여 장작이 타기 시작하고

탄에 불이 옮기기 시작하면 여러 곳에 구멍을 만들어

화력을 최대로 끌어 올리면

건조실내 온도는 수백도로 올라가고

그 열기로 잎담배가 마르기 시작한다.

 

더운 여름에 잎담배를 따고 엮고 하다보면

진이 나와 손을 끈끈하게 만들고

땀과 먼지가 뒤범벅이 되면 손톱이나 일로 갈라진 손에

까맣게 때처럼 끼게 되고

거기에 석탄까지 게고 하다보면

온 몸이 끈적끈적, 여기 저기 검댕이가 붙고

슬쩍슬쩍 입술에 스치면 짠 정도를 지나

쓰디 쓴 씀바귀 같아지게 된다.

 

그렇게 녹초 된 몸을 씻고자

된장처럼 생긴 사각 미누 하나들고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냇가로 찾는다.

 

그렇게 건조실에서 말라가는 잎담배는

전부 골고루 마르는 것이 아니기에

간간히 온도를 조금 낮추고

위 칸과 아래 칸의 줄을 옮기는데

말라가는 담배 냄새와 건조실 내의 열기로 인해

담배연기 기득한 건식 사우나를 방불케 한다.

 

잎담배는 너무 말리면 부스러지고

덜 말리면 썩고 품질이 나빠지기 때문에

돌판 위에서 노릇노릇 잘 익어가는 삼겹살 이상으로 관리를 잘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화덕의 불 조절을 잘 해야 하기에

한 사람은 더운 여름인데도 화덕 앞에서 밤새기를 자주 해야 한다.

 

노릇노릇 잘 말린 담배는 새끼줄에서 풀어내어

상투 틀듯 열 개씩 잘 묶음을 만들어

규격화된 상자 틀에 차곡차곡 쌓아

전매청의 수매에 대비하여야 한다.

 

농부들은 담배 농사가 가장 힘든 농사라 한다.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더 경작권을 받아 농사를 하려는 이유는

정부에서 수매를 하기에 목돈을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목돈으로 상급학교에 가는 자식들 학비를 대고

명절 제사상에 좋은 굴비와 소고기 국을 올릴 수 있고

자식들에게 새 옷, 신발 등의 설빔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60년대 말 내가 10살까지 외갓집 사랑방에 얹혀살며

알고 있는 담배농사다.

 

3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서울로 이사를 하였고

중학교 시절까지 방학 때 잠깐씩 방문하였기에

더 이상의 것을 알지는 못하고 알던 것도 묻혀 지고 잊혀 지는데

김주영의 <칼과 뿌리>를 읽으며 다시 생각나게 한다.

 

책의 묘한 마력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간접체험하게 하는 것과

경험하였지만 세월의 흐름과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느라 잊어버린 것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

 

김주영의 <칼과 뿌리>는 내가 알고 있는 시대보다

적어도 4~5년은 뒤인 70년대 담배농사에 대한 이야기 인데

수매하는 과정에 좋은 등급을 받기 위해

뇌물을 쓰고 그 뇌물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전달자가 조금씩 착복 하고

그 착복한 것을 알고 달려들어 협박과 회유로 뜯어내는 과정을 그리고

목돈을 노리고 때 맞춰 농촌에 찾아드는 작부들과 투전꾼 등

어린이가 알 수 없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밭 갈아 붙이고 나면 씨 뿌려야 하고,

씨 뿌리고 나면 김매야 하고,

김매고 나면 사촌간이라도 봇물 때문에

논뚝에서 멱살 잡고 뒹굴어야 하는 그런 생활,

참으로 오줌 누고 좆 털 사이도 없는 그런 생활에

어느 놈이 어떤 부정으로 살아가는지 살펴볼 겨를도 없고

꼬치꼬치 파고들면 다만 머리 아픈 게 추현동 사람들이었다.

<김주영의 칼과 뿌리에서>

 

그러고 보면

년말 이라고 며칠 일찍 일 접고 운동하며 책 읽고 있는 내 신세가

조금은 나은 것 같아 위안을 삼는다.

 

1년을 마무리하면서

돈을 모으지는 못했지만 큰 돈 잃지 않고 가족들 건강한 것이

삶에 선방을 하였고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생각에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온다.

 

그래서 이렇게 한 해를 마무리 한다.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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