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이청준의 이어도

송삿갓 2012. 1. 6. 01:02

이어도하라 이어도하라

이어 이어 이어도하라

이어 하멘 나 눈물난다

이어 말은 말낭근 가라

(이어도여 이어도여

이어 이어 이어도여

이어 소리만 들어도, 나 눈물이 난다.

이어 소리는 말고서 가라)

 

여인의 소리는 실상 노래라고는 말할 수가 없는 괴상한 것이었다.

가사도 분명치가 않았고 곡조도 특별히 귀에 뛸 만큼 구성진 대목이 없었다.

예산 시골마을의 물렛방 같은 데서 흘러나오는 노인네들의 노랫가락처럼

애매한 입속 웅얼거림뿐이었다.

물레소리에 묻혀들었다간 되살아나고

그러다간 또 문득 그 물레 소리 속으로 다시 묻혀 들어가 버리곤 하는 노인네들의

그 노래도 한탄도 아닌 흥얼거림처럼, 혹은 느릿느릿 젖어드는

필생의 슬픔처럼 취흥을 돋울 만한 소리는 아니었다.

(이청준의 이어도에서)

 

섬,

파란 하늘이 있고

하얀 백사장에 눈부시게 푸르른 물이 있는

여유와 풍요가 있고 휴식이 있을 것 같은 곳

 

다른 한 편으로는

전기는 물론 어떠한 문화생활도 할 수 없고

고립무원의 그래서 마음에 상처 있는 자들의 요양 처가

있을 것 같은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어도는

찌든 가난에도 선택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물길로 살아가야 하는

뱃사람들의 닿을 수 없는 꿈의 섬이고

성난 파도가 두려워 배타는 것을 망설이는 뱃사람들에게

풍랑에 쓰러져도 영원한 안식이 있을 것 같은 피안의 섬이다.

 

오늘 보다는 내일이 더 좋을 것이라는 희망을 노래하게 하고

물길에 돌아오지 않는 아비를 그리워하며 위안의 노래를 하는 섬, 이어도

 

지긋지긋한 섬 살이를 청산하고픈 큰 섬 제주도 사람들에게

새로운 낙원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곳 이어도,

그렇지만 작심하고 섣불리 떠날 수 없어

더 크게 보이는 나래의 천국으로 이어도를 상상 했을지도 모른다.

 

이청준의 중편소설 <이어도>는 이어도의 실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해군의 수색을 시작하였지만 2주 만에 실체를 확인하지 못하고 철수를 결정하였을 때 동승취재기자 섬사람 천남석이 실종되었고 꿈의 섬 이어도를 찾아 자살하였을 것이라는 단정을 한 해군 정훈장교가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해 천남석의 회사에 방문하여 편집국장 양주호를 만나 자살 믿음을 확신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어릴 적 밭일을 하며 어머니가 읊조리던 이어도 타령을 들으며 자란 천남석,

물길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더욱 간절한 어머니의 이어도 타령에

그것을 들으며 자신은 섬을 떠나겠다고 맹세하였지만 떠나지 못한 천남석

매일 이어도라는 술집을 찾아가 자신의 신세를 풀어내던 천남석

이어도 타령을 읊조리는 동거녀 작부에게 섬을 떠날 것을 강요하던 천남석

해군의 수색대에 자청하여 동승하였다 실종된 천남석

그에겐 이어도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우리네 삶과 다른 게 무엇일까?

 

이청준의 소설 이어도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밤사이 바닷가에 불가사의한 일이 한 가지 일어나 있었다. 천 남석이 마침내는 자기의 섬을 만나 이어도로 갔을 거라던 양주호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을까, 아니 그 양주호의 말이 사실이라 해도 천남석 자신은 그 사라운 폭풍우 속에서 끝끝내 그 이어도엔 도달할 수가 없었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가 그토록 만나고만 싶어 했던 이 섬을 이어도로나 착각을 한 것이었을까, 이어도로 갔다던 천남석이 동지나해에서 그 밤 파도에 밀려 홀연히 다시 섬으로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기이한 일이었다. 한데 더욱더 신기하고 불가사의한 조화는 그 여러 날 동안의 표류에도 불구하고 천남석의 육신은 그 먼 바닷길을 눈에 띄는 상처 하나 없이 고스란히 다시 섬을 찾아온 것 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처럼 아침 해가 돋아오를 때까지도 그 심술궂은 썰물 물끝에 얹혀 용케도 다시 섬을 떠나가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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