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 여행

천일여행 588일째, 2017년 1월 28일(토) 애틀랜타/맑음, 어제보다 더 추웠다

송삿갓 2017. 1. 29. 09:54

천일여행 588일째, 2017128() 애틀랜타/맑음, 어제보다 더 추웠다

 

아침 기온 35, 춥다.

7시 모닝콜에 일어났지만 춥다는 일기예보에 얼었을 것으로 판단,

오늘은 보나마나 12시 혹은 1Shotgun’을 예상하였다.

 

우유와 빵에 치즈, 아침을 만들어 먹고는 여유 있게 스트레칭까지 마쳤을 무렵

클럽에서 이메일이 왔다.

‘PLAY WILL BE DELAYED THIS MORNING DUE TO COLD TEMPERATURES

AND FROST on THE GOLF COURSE.

SPECIFIC DELAY TIMES WILL BE ANNOUNCED VIA EMAIL SHORTLY.’

 

그럼 그렇지, Shotgun이 맞네하며 잠시 이것저것을 하다

830분이 가까워질 무렵 한 숨 자자며 침대로 가기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전화기에서 디링~’하며 이메일이 왔음을 알린다.

보나마나 Delay 이겠지 하고는 메일을 열어보는데

코스가 얼어서 늦어지는 것은 맞는데 25분만 Delay 되어 915분에 첫 팀이 시작하고

Tee Sheet에 그 이전 팀은 한 팀 밖에 없어 그 이후 팀은 거의 늦어지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에구궁~ 서둘러야겠다.

옷을 입고 클럽에 도착하니 915,

원래 우리가 930분 출발이니 제 시간에 나가면 된단다.

주차장에서 안 사장 만나고 연습장에서 칼바람과 마주하며 몇 번의 빈 스윙을 했는데

안 사장이 걸어오며 5분 뒤에 나가라고 했단다.

 

곽 회장은 오지 않았지만 안 사장이 클럽으로 올 때

오늘 어떻게 할 거냐?‘는 메시지가 왔기에 거의 안 늦어진다는 답을 했단다.

1번 홀로 가서 준비를 하고 있는데 곽 회장 헐레벌떡 도착해서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날씨가 찬데···· 궁시렁 궁시렁

그렇게 얼굴을 꽁꽁 얼게 하는 찬바람과 동무하며 운동을 시작하였다.

 

한 참을 앞서 출발한 팀은 끝날 때까지 보지를 못했다.

그 만큼 우리의 속도가 빠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추워서, 가끔은 약간의 심통을 부려서, 내가 못 쳐서

18홀을 4시간 20분 만에 마치면서 쉽지 않은 날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골프를 마치고 물로 샤워하는 것이 따뜻해서

차만 타면 아해와 통화할 수 있다는 것에서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듯 하였다.

 

점심은 Seed Bar, 사과, 안 사장이 준 계란, 바나나, 그리고 사막 열매 다트

집에 도착해서는 아보카드 반 개와 치즈로 에스프레소로 보충하였다.

이틀 전 대장내시경 한 날 빨았던 이불커버를 개고 일주일 입은 빨래를 세탁기에 돌려 널었다.

 

어제 저녁 쌀을 담그면서 반반현미에 찹쌀, 18 잡곡, 퀴노아와 마()씨 까지는 지난번과 같고

치아 씨드를 더 넣었는데 아침에 보니 개구리 알처럼 흐물흐물 질척질척,

걱정을 많이 하며 안쳤는데 오후에 도착해서 보니 뭐 그런대로 잘 되었다.

 

오늘의 메인 메뉴는 배춧국에 오징어 볶음,

지난 주 한 통 사서 조금은 쌈으로 먹고 삶았다 일부는 무쳐먹고 남겨 냉동실에 얼렸던 것을

아침에 냉장실로 옮겨 놓고 갔기에 오후에 집에 와서는 냄비에 물과 함께 넣고 고았다.

된장, 고추장, 마른새우를 넣고 끓이다 다진 마늘로 마무리 한 배춧국이다.

오징어볶음은 새끼당근과 양파를 볶다가 간장과 고춧가루를 추가해서 볶아 마무리,

오이무침이 곁들여진 반찬으로 저녁을 잘 먹었다.

 

오늘 아침 코스가 얼어 Delay 될 것을 생각하며 우왕좌왕 할 무렵

바로아래 동생이 설날 차례 상을 찍어 카톡으로 보내왔었다.

에궁~ 별로 생각도 안 해 봤지만 오랜만에 본 명절 차례 상이 단촐 하다 못해

초라하다는 생각까지 들어 마음이 짠~ 했었다.

아버지 살아 계셨을 적엔 푸짐했던 상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놀랬다.

그럼에도 연세 드신 어머님 혼자 준비하시는 상이 이 정도면 되지라는 위안을 해 보았다.

예전엔 나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도우며 함께 했는데

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셋째 동생의 제수씨와 막내작은어머님이 돕기는 하지만

하루 전날 오후에 도착하니 그 이전까지는 어머님 혼자 하시는 거다.

그러니 그 만큼 하시는 것도 용하다는 생각을 하는 게

최근 1~2년간 명절 때만 되면 고생하신다는 내 말에 어머님은

나도 오래 못 하겠다. 예전에 몰랐는데 추석 다르고 설 다르게 힘들어진다.

앞으로 몇 년이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 데

지난주 통화 때는 애비야! 올이나 내년 까지 밖에 못하겠다. 나도 힘들다고 하셨기에

동생이 보낸 사진을 보고 순간 가슴이 아렸지만 자위를 하게 된 것이다.

 

오늘 저녁을 먹고 잠시 쉬고 있다가 갑자기 또 차례 상이 생각나면서 울컥 하였다.

내 기억 속 차례 상에는 증조할아버지·할머니와 할아버지였는데

오늘 본 사진에서는 할아버지·할머니, 아버지로 바뀐 것을

아버지 돌아가시고 팔년 반, 할머니 돌아가시고 오년을 훌쩍 넘기고서야 깨달았다.

예전에 한국을 떠나면서 종손이자 장손, 큰 아들임을 포기해서

영영 차례나 제사상을 대할 일이 없었기에 차례나 제사상 하면

자라면서 늘 그래왔듯이 할머니와 아버지는 상상도 못 했던 것이었다.

 

한국은 설 다음 날인 일요일 아침,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8시를 훌쩍 넘겼는데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목소리다.

순간, ‘어제 저녁은 혼자 주무셨겠구나

이 또한 내 기억 속 할머니, 아버지 살아생전엔

명절 특히 설이면 적어도 3~4일은 아버님껜 5촌이나 6,

내 기준으론 거의 8촌까지 손님들로 북적였는데 할머니 돌아가시고는 거의 모두 발걸음 끊고

어머님, 두 작은집 가족, 동생들 가족만 모이지만

명절 당일 아침에 이어 점심을 뜨기가 무섭게 뿔뿔이 흩어진다는 것을 듣기만 했었다.

어제 혼자 주무셨어요?”

그럼 어제 아침 먹고 다 갔다.

큰 작은아버지 가족은 작은엄마 목 수술해서 피곤하다고 아침만 먹고 갔고

작은 작은아버지(나와 동갑인 작은아버지)는 처갓집 모임이 있다고 일찍 갔고

둘째는 무슨 모임이 있다고 갔고

셋째네 가족은 전날부터 와서 고생을 많이 해서 일찍 가서 쉬라고 했다

그렇게 설 날 점심부터 어머님은 혼자 계신 거였다.

에궁~ 어머님 허전 하셨겠네요

아니다. 모두 가고 치우고, 치우고, 또 치우고 하면서 종일 움직였더니 허전할 틈도 없고

고단해서 지금까지 잠잤다

에궁~ 지송해라. 제가 잘 주무시는 걸 깨웠네요

아니야, 일어나야지. 너무 자면 저녁에 잠 안 온다

가슴이 먹먹해 졌다.

내가 무슨 큰 죄를 짓고 사는 것 같아 울컥하였다.

어머님! 제가 오는 토요일 저녁에 도착 할게요

어딜? 여길?”

네 어머님 뵈러 갈 겁니다

정말? 에구 고맙다. 와 준다니 고맙다

잠결에 걸걸하며 통화하던 목소리는 금방 밝아지면서 약간 들뜨기까지 하신다.

어머님! 저 간다고 이것저것 하시면 절대 안 되요

아니야, 걱정 말아라. 다 있어

네 저 많이 먹지도 않으니 그냥 가만히 계세요

그래, 그러마. 네가 온다니 정말 기쁘다

실은 월요일 즈음 통화하면서 간다는 것을 알려드리려 했는데

설 날 점심부터 혼자 지내셨다는 가슴 저미는 말씀에 위로해드린다는 뜻에서 말씀드렸다.

네 이번엔 가면 반나절만 누굴 만나러 다녀 올 거고 내둥 어머님이랑 있을 거예요

그래. 알았다. 어여 끊자

어머님 마음속엔 벌써 내가 출발 한 것 같은 기분이신가보다.

전화를 끊고 허전하고 아리지만 가슴은 벅차오른다.

어머님이 너무 좋아하셔서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