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메 이야기

하로동선(夏爐冬扇)

송삿갓 2012. 9. 13. 20:45

1990년대 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한

이철, 박계동 등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진 몇 사람과

제정그 김홍신 등의 당선자 들이 뜻을 같이하여

강남에 고깃집을 차렸다.

 

이름 하여 하로동선(夏爐冬扇),

 

당시의 자료를 찾아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같은 처지끼리 소식이라도 전할 '연락처'를 마련하자는 취지였다. 뜻이 맞아 서로 맞보증으로 십시일반 자금을 보탰다. 통추 김원기 대표도 가세했다. 김원웅 의원은 사장을 맡았다. 이들은 요일마다 돌아가며 '당번제 자원봉사'로 식당을 꾸렸다. 물컵을 나르고 고기, 술 주문도 받고 돈계산도 했다. 때론 손님곁에 소주잔을 놓고 진솔한 소리를 들었다. 정치쇼라는 비난도 있었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하로동선은 자체에 깊은 뜻이 있다. 여름의 난로, 겨울의 부채라는 말이다.

중국 한나라 왕충(王充)이 지은 '논형(論衡)' 에 나오는 것으로

당장은 쓸모없지만 때가되면 긴요하게 쓰일 물건이란 의미다.

무더운 한 여름에 화로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찬바람이 쌩쌩부는 겨울에 부채가 무슨 쓸모가 있는가.

그러나 계절이 바뀌면 화로 없이는 안 되는 겨울이 오고,

또 부채가 제격인 여름이 오게 된다.

 

한마디로 낙선하여 가슴이 아프고 어려움이 있지만

기다리다 보면 틀림없이 필요할 날이 올 것이니

우리 힘을 합하여 노력하며 “기다림의 정치”를 하자는 의미라는 설명이었고

그 중 한 명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진정한 의미의 하로동선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당시 그 고깃집 하로동선은 많은 매체의 집중조명을 받았고

정치 이외의 여러 가지 당위성이 설명되기도 하였다.

고깃집이 상당히 유행이었지만

수입 고기를 한우로 속이고 1인분의 양의 고깃집마다 다르고

매상을 줄이며 세금을 탈루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돌았다.

 

고깃집을 운영하는 업주들은 인건비, 건물세, 재료비 등이 너무 비싸

세금 다 내고 속이지 않고 장사하면 남는 게 없어

그럴 수밖에 없다는 변명으로 일관하던 시절에

3당 통합의 반대와 깨끗한 정치를 외치던 개혁파 정치인들이

한우와 수입 고기를 속이지 않고

무게도 제대로 하면서 세금 탈루하지 않고

투명한 경영으로 이익을 내겠다는 것도

“하로동선”의 또 다른 뉴스거리였다.

 

많은 사람들의 희망과 같은 투명성

그리고 유명정치인을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정말 맛있는지 확인하고픈 열망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

하로동선은 손님이 많아 북적거리며 유명식당이 되었다.

 

영업이 잘 되었고 투명성에 대해서 박계동 의원이

한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박 의원은 이날 오전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식당을 함께 운영했던 유인태 의원으로부터 들은 얘기"라며 "노 대통령 등과 함께 1990년대말 하로동선을 운영할 때 세금을 줄이기 위해 매출액을 4분의 1로 줄여서 신고하라는 권유를 세무서로부터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하로동선이 세금을 탈루했다는 말이 아니라 매출액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를 지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그렇게 투명성을 외치던 고깃집 “하로동선”은 성공하였을까?

적어도 두 가지는 성공을 하였다고 보여 진다.

그 하나는 “하로동선”의미 그대로

낙선하여 절치부심하던 노무현이 결국은 대통령이 되었으니 그 하나요

두 번째는 전국에 “하로동선”이라는 이름의 식당이 많이 생겼으니

이를 두 번째 성공이라고 보여 진다.

그렇지만 20명이 넘는 동업이라는 형태의 주주는 2년 뒤 뿔뿔이 흩어진다.

물론 서로 갈 길들이 바빠서 그리고 다르기에 제 갈 길로 가기도 하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당시의 주주들이 서로 딴지거는 것을 보면

역시 한국인들 동업은 쉽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로동선(夏爐冬扇)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겨울의 화로와 여름의 부채는 유용하고 환영 받는 물건이지만

겨울의 부채와 여름의 화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무용지물인 것 같다.

그러나 여름의 화로라 하더라도 그것으로 젖은 것을 말릴 수도 있으며

겨울의 부채라 하더라도 그것을 부침으로써 꺼져가는 불을 살려서

활활 타게 할 수도 있지 않은가?

지금 내가 쓸모없다고 자책하고 한탄하며 주저앉지 말고

더욱 더 열심히 쓰여 질 수 있는 곳을 찾는 노력과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계속 연마하여 때를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장자의 '쓸모없는 것의 쓸모 있음(無用之用)'의 철학,

하로동선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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