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메 이야기

가족이 늘었다

송삿갓 2012. 10. 30. 22:13

13년 되어 눈과 귀가 조금씩 멀어가는 진돗개, 한라

12년 된 진돗개의 딸 잡종, 꼬맹이(지금은 할머니이지만...)

집 안에서 멋모르고 뛰면서 동네 주인 행세하는 12년 된 치와와 코코

우리 집에는 그렇게 세 마리의 견공들이 있다.

 

10년을 넘게 한 대학에서 지겹게 공부하고 있는 28살의 아들

대학의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는 나와 같은 날의 생일인 23살의 딸

대학 2학년 때 만나 4년을 연애하다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내년 4월이면 결혼 30주년이 되는 아내,

그리고 가장인 나를 포함에서

우리 집에는 7명의 가족이 살고 있다.

지금은 7명 이었었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난주에 가족이 하나 늘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계절마다 털갈이 하며 집안 여기저기에 한주먹씩 굴러다는 털을

청소기로 거두어 치워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온갖 벌레며 동물을 보기만 하면 잡아 들여

여기저기 뒹구는 시체들을 수시로 치워야 하고

자기들 원하는 대로 해 주지 않는 다고

문이나 벽을 긁어 파이고 긁힌 곳이

수리할 엄두도 못 내며 한숨만 쉬기도 한다.

 

세 마리 견공들이 나이가 들면서 노환으로

병원에 다녀오면 푸르른 지폐가 바람에 흩날리듯 없어지기도 하고

먹이와 간식에 군것질 거리까지 대는 것은

사람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푹푹......

 

세 마리가 함께 늙어가며 기력은 떨어지는데

눈치와 고집은 늘어만 간다.

요즘 추워지는 날씨에 낮에는 따스한 햇살이 있는 곳에

밤에는 따스하고 편한 곳에 가장먼저 자리를 차지하고는

밀어도 “날 잡아 잡수~~”하고 꿈쩍도 않는다.

 

인상을 쓰거나 뭐라 잔소리를 하면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며 눈치를 보다가

회초리를 들면 벌떡 일어나

뒤를 돌아보며 약 올리듯 한 발짝씩 옮겨가지만

회초리를 내리거나 돌아서기가 무섭게

자기가 원하는 곳에 원하는 행동을 하는 고집도 나날이 늘어만 간다.

 

뭔가 잘 못을 해서 야단을 치면

삐쳐서 며칠씩 아는 체도 하지 않고

슬픈 표정을 지으며 겉돌기만 한다.

그것을 달랠라 치면 며칠씩 간식을 주며 알랑방구를 떨어야

못 이기는 척하며 몸을 부비며 다가오니

상전도 이런 상전이 없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세 마리의 견공이 가장어른이다.

가족이 모여 앉으면 “누가 먼저 언제 세상을 뜰까?”하는 것이

자주 화제로 오르면서 아내와 나는 아들과 딸에게

“더 이상 동물은 키우지 말자”는 압력과 사정을 한다.

 

그런데 가족이 늘었다.

지난 주 딸이 집 주변을 걷고 있는데

회색빛 고양이 한 마리가 졸졸 쫓아다니더니 집으로 따라 왔다.

잠시 집을 나와 돌아다니는 고양이 이려니 하고

집안에 풍성하게 가지고 있던 견공의 간식을 조금 주고 돌려보냈다.

 

다음날 저녁 누군가 집의 벨을 누른다.

문을 열고 보니 인도계 한 남성이

“너의 고양이가 집을 잃은 것 같다.”라며

어제 왔었던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며 덧붙이는 설명

운동을 하려고 집을 나오니 집 주변에서 배회하던 고양이가 뒤를 졸졸 쫓아오더란다.

그렇게 한 참을 쫓아오던 고양이가

우리 집 앞을 지날 때 딱 멈춰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데

우리 집을 나와 길을 잃은 것 같아

걱정이 돼서 벨을 눌렀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그의 집은 우리 집과 한 참의 거리가 있는 거리다.

 

우리 고양이가 아니고 단지 전날 저녁에 간식을 조금 준일이 전부라는 이야기를 듣고

난감한 표정으로 그 남성은 떠났는데

고양이는 우리만 쳐다보며 떠나려 하지 않는다.

애처로운 눈빛에 딸이 개 사료를 주자 정신없이 먹는다.

 

어느 정도 먹었는지 집 주위를 배회하다가 저녁 늦게 사라졌다.

다음날 아침 사라진 것을 알고 집으로 돌아 간 것으로 판단했지만

저녁에 다시 찾아 왔다.

 

아내가 밖에 일을 보고 있는 딸에게 그 사실을 알리자

딸은 고양이 사료를 사가지고 와서 먹였는데

고양이가 쓰다듬어 달라며 머리를 들이민다.

아내가 더러울지 모르지 만지지 말라고 하였지만

동물을 무지무지 좋아하는 딸은

“너희 집에 돌아가라”라며 대화를 하듯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곤 밤에 다시 사라졌지만

딸과 아내는 “또 다시 오지 않을까?“하면서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궁금해 하는 대화를 하였다.

 

사라졌던 고양이는 다음날 저녁에 다시 찾아 왔고

한데서 잘 것을 걱정한 딸이

아무데서나 자지 말고 여기서 자라며

집 앞에 간이 의자를 놓고 그 위에 담요를 깔아주고

밤이슬 맞지 말라고 우산까지 씌워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고

그곳에서 아침을 맞이하면서 더 이상 다른 곳에 가지 않게 되었다.

 

인터넷을 뒤져 혹기 분실 신고한 사람이 없나를 찾아보고

결국은 아들과 딸의 합작으로 부산을 떨면서 집을 만들고

페인트로 단장을 하며 가족으로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급기야 지난 일요일에는 가축병원에 데리고 가서 건강검진에 주사까지 맞추고는

수놈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한쪽 귀 끝을 조금 자른 것이 중성화 시키는 수술의 표시라는 것은 물론

나이가 5~7년이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가장인 나의 동의는 구할 필요도 없다는 듯

일사천리로 진행하는 과정에 병원비까지 할당되었다.

 

허리케인 샌디가 지나가며 강하게 불며 추웠던 지난 일요일 밤

목 부분과 발끝이 하얀 잿빛 고양이는

고양이들이 좋아 한다는 침구까지 단장된 새 집에서 밤을 보내며

우리 집 8번째 가족이 되었다.

나는 동물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아들과 딸이 좋아해도 너무 좋아하기에

그네들이 결정하면 그냥 따른다.

 

아들과 딸이 나에게 설득이랍시고 했던 말은 단 한 문장이다.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고양이가 우리를 선택한 것은 흔한 일이 아니라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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