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Temptation(유혹) - 더글라스 케네디

송삿갓 2012. 12. 5. 01:06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템테이션> 번역자(조동섭)는 옮긴이의 글을

이렇게 시작한다.

누구에게나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다.

혼신의 힘을 다 바쳐 최선을 경주하지만

꿈은 먼 산 무지개처럼 쉬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토록 간절히 바라마지 않던 꿈이 이루어진다면 과연 행복할까?

 

이 소설은 11년째 작품을 하나도 못 판 무명 시나리오작가가

어느 날 시트콤의 대본이 방송국에 팔리면서 시새말로 한 방에 뜨고

한 지방신문 기자의 표절이라는 논평에

한 방에 훅~ 가버리는 이야기다.

 

소설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무엇일까?

우리가 궁극적으로 다다를 곳은 어디일까?

우리는 ‘그 어디’에 다다르기 위해 몇 년 동안 애쓸 수도 있다.

그러나 마침내 그곳에 다다랐을 때,

모든 게 발아래에 있고 자신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마지 않던 것을 손에 넣었을 때...

 

정말 성공이 무엇일까?

그리고 내가 바라던 것을 이루었을 때 만족할 수 있고

그곳에 정착할 수 있을까?

 

지난주에 미국에서는 5억 5천만 달러가 넘은

사상 최대의 복권금액 때문에

누가 1등에 당첨될 것인지 궁금해 하면서

그게 ‘나’ 이기를 바라며 많은 사람들이 복권을 향해 줄을 서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어떤 사람은 집 모기지를 갚을 것이라 하였고

어떤 사람은 아이들 좋은 옷을 사줄 것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오억 오천만 달러가 집 모기지나 아이들 좋은 옷 사주기에 적합한 돈일까?

암튼 누군가는 당첨이 되었고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모두 살 수 있고

잘만 하면 몇 대를 이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금액이다.

그리고 그게 끝일까?

 

사람들은 흔히 성공하면 삶이 편해질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성공하면 삶은 어쩔 수 없이 더 복잡해진다.

아니, 더욱 복잡해지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더 큰 성공을 거두기 위한 갈증에

자극을 받으며 더욱 매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바라던 것 성취하면 또 다른 바람이 홀연히 나타난다.

그 바람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우린 또 다시 결핍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면 다시 완벽한 만족감을 얻기 위해 모든 걸 걸고 달려든다.

그때껏 이룬 것들을 모두 뒤엎더라도 새로운 성취와 변화를 찾아 매진한다.

새로운 성취를 이루면 또 다른 의문이 고개를 쳐든다.

이 모든 것 그대로 지켜낼 수 있을까?

모래처럼 손아귀에서 슬며시 빠져 나가는 건 아닐까?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

흔히 이야기하는 성공이라는 것을 이루었을 때

거기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바라던 것을 가지고 나면

혹여나 그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며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자기만족을 못하고 눈과 마음이 다른 곳으로 돌아 갈 때

더 가지고 싶은 유혹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삶이라는 것이 한 곳에 정착하지 말고

내일을 향해 쉼 없이 도전하며 전진하는 적극적인 삶이 필요하다는

요구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옮긴이의 글에 이런 내용이 있다.

<템테이션> 즉, ‘유혹’이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한 번 성공은 영원한 성공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한 번 성공이 ‘인생의 성공’으로 귀결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산의 정상까지 올라간 산악인에게는 또 다른 산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성공한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성공한 사람 앞에는 무수히 많은 유혹의 손길이 뒤따른다.

유혹을 이겨 낼 것인가, 넘어갈 것인가?

흔히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그럴 때 통용된다.

 

‘유혹’이라는 것이 마음을 흔드는 것이다.

내가 내 마음을 잘 조절하며 유지할 수만 있다면

5억 5천만 달러의 복권에 당첨 되고 나서도

당첨되기 이전에 가졌던 마음을 유지하고 살 수 있다면

그 보다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 마음이나 행동이 달라지고

주변 사람들의 대우나 시선이 달라지면서

그리고 가족이나 주변은 물론 외부의 사람들의 요구가 달라지면서

내 마음과 몸은 변질되어 즉, 유혹에 휘둘려지게 되기에

이전의 마음, 초심을 잃지 않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공을 불필요한 것일까?

그리고 어느 정도 성공을 했다 하더라도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방법이 없는 것일까?

 

소설의 거의 마무리 부분에 그 방법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정말 내가 어디에 다다르긴 한 것일까?

아니, 그저 중간 지점에 다다른 게 아닐까?

더 바랄 게 없을 만큼 성공했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저 멀리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목적지를 향해

계속 나아가고 또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종착지가 존재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종착지에 다다를 수가 있겠나?

그런 생각들 속에서 내가 얻은 깨달음은 하나였다.

‘우리 모구다 필사적으로 추구하는 건 자기 존재에 대한 확인이다.

그러나 그 확인은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주인공은 가족을 잃었다.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

아니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 모두를 잃었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 누구인가?

 

소설을 이렇게 끝을 맺는다.

거울 같은 것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부터,

인간은 날마다 자심을 엄습하는 질문,

‘이 세상 속에서 나는 누구일까? 나라는 존재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라는 오리무중의 질문에 시달리는 게 아닐까.

그러나 그런 질문을 던져도 답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지금의 나처럼,

그래도 답 하나는 얻을지 모른다.

역시 지금 내가 스스로를 타이르며 말하는 것 같은 답을.

그런 불가능한 질문들은 아예 생각하지도 말자,

모든 게 헛되다는 생각도 잊자.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하고 상상하지도 말자.

과거를 짊어지자, 달리 어쩌겠는가?

치료약을 하나뿐이다. 다시 일에 열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