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 여행

천일여행 894일째, 2017년 11월 30일(목) 한국용인/맑음

송삿갓 2017. 12. 1. 10:04

천일여행 894일째, 20171130() 한국용인/맑음

 

음력 생일이다.

거의 30년 가까이 잊고 살던 음력 생일이다.

때 마침 한국에서 어머님과 함께 보내다 날이 맞아 어머님이 챙겨주신 생일이다.

여러 가지를 준비하신다기에 집에 와서 저녁을 먹을 테니 아침은 간단하게 먹자고 하였다.

아해가 두세 차례 그렇게 하라는 권유에 의해 아침부터 종종걸음 칠 것을 생각해서였다.

 

어제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약을 먹은 탓이긴 하지만

아마도 오후에 아해와 찜찔방에 가서 땀을 많이 흘렸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거기에 어머님도 어제 장을 다닌다고 많이 돌아다녀 그러신지 1시간을 늦게 일어나셨기에

나도 따라 더 푹 잘 수 있었던 거였다.

머리가 띵할 정도로 잤으니 꼭 시차적응이 완료 된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 아침 거사는 제대로 치루지 못했다.

이 또한 어제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 것으로 생각된다.

삶에 상당히 많은 것들이 좋은 점이 있는가 하면 그리하지 않는 게 진리처럼 작용한다.

 

어머님 집에 있으면서 뭔가를 무조건 먹이려는 어머님과

배가 부르거나 소화가 잘 되지 않아 대립하는 경우가 참 많다.

다른 한 편으론 잘 먹지도 않는 데 고생을 하시는 어머님에 대한 걱정의 표현이

조금은 대립각처럼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기도 한다.

오늘 아침만 해도 오늘은 집에 들어와 저녁을 먹을 테니 아침에 많이 하지 말아 달라.”

부탁을 하였음에도 원래 만들기로 하였던 미역국 이외에도 나물에 호박전, 굴전까지

생각만 해도 손이 많이 갔을 것 같은 음식이 너무 많았다.

만든 성의를 봐선 충분히 먹어야 하지만 이른 아침에 먹는 인삼 때문에 소화가 잘 되지 않아

탈이 날 것이 걱정되어 조금만 먹으려는 내 의도에

엄마가 해 준 것이니 많이 먹으라.”며 권하는 어머님 말씀이 편치가 않았다.

할 수 없이 밥을 덜어 내니 젊은 사람이 그것 밖에 안 먹느냐?”는 탄식 섞인 핀잔에 이어

밥맛이 없다며 국만 깔짝거리는 것에서 어머님 마음이 상한 것을 느꼈다.

나를 생각한다며 먹으라는 어머님과 나를 위해 적당히 먹으려는 나 자신,

어쩔 줄 몰라 하며 이번처럼 오래 머무는 게 부담이 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쩌면 어머님이 돌아가신 뒤

그 때 더 많이 열심히 먹어 어머님 편하게 해 드릴 걸!‘하는 후회를 안 하려면

조금은 무리가 되어도 열심히 먹어야겠다는 생각과 갈등으로 이어졌다.

참 풀기 어려운 수학문제 같은 관계며 상황이다.

설거지를 하시면서 열 번 잘 하다 한 번 못하면 그것만 생각나고 서운하다.”는 중얼거림을 듣곤

마음이 많이 불편해졌다.

집을 나서는 데 귤과 딸기를 씻어 식타 위에 놓곤 먹으라기에

이빨을 다 닦았음에도 억지로 몇 개 먹고 일어서는데

한 개만 더, 한 개만 더 하면서 결국은 접시를 비우게 하신다.

 

아해와 점심을 위해 Coffee Shop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기다리다

아해가 출발한다는 메시지를 받고는 준비를 마치고 길로 나섰다.

신호등을 뛰어 건너오는 아해를 보며 어찌나 반갑던지,

둘은 한정식 집에 자리하였다.

놋그릇에 정갈하게 담은 반찬이며 국과 밥,

잘 구워진 굴비를 보고는 아는 체를 하며 열심히 발라 주었다.

생선의 살을 바르는 것은 누가 뭐래도 내가 선수인양 말이다.

한 시간을 넘게 누룽지에 생강차 까지 마시곤 Coffe Shop으로 자리를 옮겼다.

작은 빵을 사서 아해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아주 작게 생일 축하노래를 불렀고

나는 그것을 들으며 고마움과 작은 감격으로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내일 만날 것을 기약하며 아해는 교육장으로 들어갔고

나는 잠실의 서점으로 이동하였다.

어제 사려다 만 시오노 나나미의 <그리스인 이야기>를 사기 위해서였는데

그나마 2권은 재고가 없다하여 1권만 사고는 잠시 쉬었다 집으로 향했다.

 

귀빠진 날이라며 어머님은 푸짐한 상을 차렸다.

말씀은 아침에 먹던 것 그대로 차렸다고 하셨지만 너무 많다고 느낄 정도로 한 상 가득,

점심을 워낙 잘 먹어서 그리 많이 먹을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먹었다.

어머님은 늦은 점심을 먹었다며 그리 많이 드시진 않고 주로 내가 먹는 것을 바라보셨다.

둘이 앉아 TV를 보면서 저녁 시간을 보냈지만 어머님은 고단하신지

졸다 깨다를 반복하시더니 8시를 넘겨서부터는 아예 코를 골며 주무신다.

그런 모습을 수시로 바라보는 마음이 짠~ 했다.

 

TV를 본다며 늦은 시각까지 있다가 11시 가까워서야 잠자리에 든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마무한다.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