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 여행

천일여행 1134일째, 2018년 7월 28일(토) 애틀랜타/맑음

송삿갓 2018. 7. 29. 10:02

천일여행 1134일째, 2018728() 애틀랜타/맑음

 

잠자리, 매미

이 두 곤충을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꽃이 Pink, White, Hot pink 등의 알록달록 코스모스.

오늘 골프를 하면서 하늘을 바라보면 많은 잠자리들이 각자 날고 싶은 대로 이리저리,

혹시 부딪치지는 않을까 마음이 조아들기는 하지만 전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게 요리조리.

수양버들처럼 축 늘어진 나무 밑에서 샷을 하려니 시끄럽다 할 정도의 소리를 내는 매미,

이 정도면 정겨운 시골풍경이 생각나야 할 텐데 그러진 않는다.

그럼에도 매미소리에 귀는 기울여지고 빠르게 움직이는 잠자리에 눈길은 간다.

귀로 들리고 눈으로 보이지만 감흥 없이 듣고 보는

그냥 뜨거운 여름이라는 매 마르고 무덤덤한 생각만 하였다.

 

편견과 반성

연습장에 올라가니 Luis가 연습을 하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Dr. 이윤재가 나타났다.

오늘 Tee sheet에 첫 time은 나와 Dr. Fang부부, 그리고 다른 중국인 등 넷이고

뒤에는 다른 사람들이 있어, 그러니까 Luis나 이윤재는 예약이 되어있지 않은 멤버들이다.

약간의 시간이 약간 흐르고 MarshalScott이 오니 이윤재가 9홀을 걸을 예정인데

먼저 가겠다고 하자 일단은 기다라고 했는지 연습 볼을 치기 시작하였는데

나와 눈이 마주친 Scott이 양팔을 들어올리며 이해할 수 없다 표정이다.

나는 오늘 이 시간에 골프를 하기위해 1개월 전에 tee time을 잡았는데

예약도 없이 불쑥 나타나 먼저 나가겠다고 하는 건 무슨 매너냐?‘하면서

역시 저 사람은 의사라고는 하지만 경우가 없는 사람으로 또 단정해 버렸다.

잠시 지나 Scott이 이윤재보고 출발 신호를 보내고 내 곁으로 오더니 Luis랑 칠거냐 묻고는

언제든 준비되면 바로 출발하라기에 거의 동시에 출발을 하다 보니 Stables 1번 홀에서 조우.

결국 이윤재와 Luis 둘 다 예약 없이 나타난 멤버들인데 Luis는 나와 함께 가겠다하고

이윤재는 먼저 가겠다하니 마음이 뒤틀렸는데 유독 이윤재만 달갑지 않게 보이는 것은

그와 좋지 않은 기억만 있어 그런 것 같다.

이윤재가 앞서 가는데 조금 속도가 더딘 것 같으면 계속 미운생각이 드는 이유는 뭐지?

9번 홀 그린에 갔는데 이윤재가 Pines 1번 홀을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저 사람은 9홀만 걷는다더니 Back 9도 걷는 거야? 정말 몹쓸 사람이구만.’

Back 9을 시작하고 두세 홀 지났을 때 앞서가리라 생각하던 이윤재가 보이질 않았다.

그러니까 Pines 1번 홀을 걸어가고 있었던 것은 골프를 계속하려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나올 때 가방을 메고 걸어왔다가 9홀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위해 1번 홀을 걸었던 듯

-정확한 것은 아니고 순전히 내 추측- 내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알고는 미안했다.

내가 좋지 않게 생각한 사람의 모든 것에 편견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과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것이 내 마음에 상처가 되고 독이 될 수 있음에

급 반성과 자책을 하였다.

 

퇴근해서 아해와 영상통화를 하는 데 뭐가 그리 좋으냐?”면서 철부지라고 놀리는

아해의 표정이나 말투에 골프장에서 어른스럽지 못하게 내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던 마음이

쑥스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멍든 마음이 치료가 되는 듯한 기분으로 마냥 좋았다.

거기는 아프면 그냥 죽는 곳이야.”라는 아해의 말에 가슴이 뭉클해지며 순식간에 눈물이 고였다.

안쓰러움과 죄스러움과 미안함이 교차한 것 같은데 그런 걸 가늠할 겨를도 없이 그리되었다.

 

통화를 마치고 의자에 앉아 잠시 졸고 집안 정리를 하다 다시 통화를 할 즈음엔

또다시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게 역시 내 옆에 늘 있는 아해에게 고마운 마음이 가득하였다.

아해는 잠자리에 들고 나는 한 참을 틀지 않았던 공기정화기 필터를 갈고 청소해서

마루에 틀어놓곤 저녁을 준비해 먹고 토요일 저녁을 즐겼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즐겁게 잘 보냈다.

 

오늘도 무지 좋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