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메 이야기

기차가 달린다

송삿갓 2013. 7. 2. 03:37

기차가 달린다.

가까운 곳은 빠르게 풍경이 지나 가지만

먼 곳은 슬로우 비디오 넘어가듯이 그림이 바뀐다.

바퀴의 덜커덩 거리는 소리에

빛바랜 사진 한 장씩 넘어 가듯이

아주 서서히 장면이 바뀐다.

그 넘어가는 한 장면을 화폭으로 삼아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린다.

싸리문을 열면 앞 쪽에 큰 초가집이 먼저 보인다.

초가집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대청마루

중앙에 창살이 보이는 방이 안방이고

그 오른쪽 검게 그으른 곳이 부엌이다.

 

대청마루에서 안방을 들어서면

부엌이 있는 족인 오른쪽이 아랫목이고

반대편은 뒷마당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이 있는데

사람이 들고나기 보다는 여름에 시원한 바람의 통로고

방을 조금 더 밝게 하기 위한 빛을 들이는 창이다.

 

안방의 왼쪽 구석에 있는 조그만 창은 건너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건너 방은 밖에서도 들어 갈 수 있지만

안방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문이 있고

마루에서 방안을 들어서면 머리위

그러니까 문위에는 벽을 따라 큰 나무 두 개로 만든 선반이 있다.

그곳에는 오래 된 물건을 보관하기도 하지만

가을에 추수한 늙은 호박을 보관하기도 한다.

 

건너 방에서 대청마루로 문을 열고 나오면

오른쪽은 조그만 광이 있다.

곡식을 비료부대나 가마니에 넣어 보관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보리나 옥수수 같은 것을 낱알로 보관하기도 한다.

 

대청마루에서 부엌으로 통하는 큰 공간이 있지만

그곳은 사람이 들고 나기보다는 밥상이나

음식을 들여 나가는 문으로 주로 사용하고

부엌에서 일하는 아낙네와 대화의 창이기도 하다.

 

마당에서 부엌으로 들어가는 공간은

문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고

타고 넘어야 하는 턱이 있고

들어서면 두 개의 흙으로 된 계단이 있다.

계단을 내려서기 전 오른쪽은 땔나무 광이다.

 

제법 큰 공간에 잔가지는 물론

잘 마른 장작까지 잘 보관하고 있다가

밥을 하거나 소를 위한 여물을 끓일 때 사용한다.

부엌을 들어서며 왼쪽은 대청마루로 통하는 공간이고

바로 그 다음은 소여물을 끓이는 큰 가마솥이 있다.

 

웬만한 사람하나 들어가도 될 정도의 솥에

반 뼘 크기로 자른 벼에

콩깍지나 고구마 줄기 등의 다른 풀을 넣고 끓이면

무럭무럭 김과 함께 풀이 익어가는 냄새가 난다.

 

가끔은 그 큰 가마솥에

메주를 쑤기 위한 콩을 삶기도 한다.

콩 삶는 날은 배고픔을 달래기에 좋은 날이다.

먹을 것이 없어 늘 배가 고프지만

설사 난다는 어른들의 충고에도 아랑곳없이

삶은 콩 한 주먹을 들고 뛰면서 먹으며 허기를 달래기도 한다.

 

그렇게 삶은 콩을 건져서 절구에 넣고 찔 때

또 손길은 콩으로 향한다.

그렇게 먹어대면 열에 아홉은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죽죽 쏟아내는 설사를 한다.

 

여물을 끓이는 가마솥 다음은

중간 가마솥으로 주로 국을 끓이거나

많은 밥을 할 경우에 사용하는 곳으로

중간 크기의 가마솥이 걸려있다.

 

그리고 세 번째 아궁이는 주로 밥을 하고

나물 등을 삶을 때 사용한다.

여기에는 가마솥이 아니라 양은솥이 걸려있다.

 

세 번째 아궁이 다음은 조그만 공간이 있고

바로 뒤뜰로 나가는 문틀이 있다.

문틀의 오른쪽은 중간에 찬장이 걸려 있어

주로 손님이 올 때 사용하는 그릇들이

업어져서 정렬되어 있다.

 

뒤뜰로 나가는 문턱을 넘으면

나가자마자 바로 오른쪽에

거의 일자로 된 구정물 항아리가 있다.

이것은 돼지를 먹이를 위한 것으로

사람이 먹고 난 잔반이나

(남을 것도 별로 없었겠지만)

보리쌀 뜨물, 버리는 국 등을 담는 항아리다.

 

뒤뜰의 약가 왼쪽에는 앵두나무가 있어

여름이면 빨갛고 달콤한 앵두를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오른쪽은

그러니까 싸리문과 대각선 코너에는 장독대가 있어

간장이나 고추장, 된장 등을 보관하고

냉장고가 없었기 때문에 김치를 보관하기도 한다.

물론 햇빛을 받는 김치가 빨리 시고

때로는 부글부글 끌어 먹기 어렵게 되기 때문에

김치는 부엌의 아궁이 뒤쪽 공간에 보관한다.

 

장독대는 어려운 삶 속에서도

희망을 가져보고 무병장수를 위한

치성을 드리기 위해 정안수 한 사발이 있는 경우가 많다.

 

장독대 왼쪽 그러니까 집의 오른쪽 중간에는

오래 된 감나무 한 그루가 있다.

그런데 이 감나무는 크기에 비해 많은 감을 생산하지는 못한다.

 

감나무 오른쪽, 그러니까 집의 오른쪽 가장 끝은 장독대

중간은 감나무 그리고 그 앞쪽에는 소를 키우는 외양간이 있다.

소는 가장 큰 유동성 자산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특별한 대접을 많이 받는다.

여름이면 아침에 밭일을 나갈 때 같이 나가서

풀 좋은 곳에 매어 놓으면 하루 종일 질 좋은 풀을 먹고

집에 돌아오면 다시 최상급의 풀로 저녁을 해결한다.

 

그리고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면

가마니와 따스한 천으로 만든 겨울옷을 입고

외양간은 혹여나 찬바람이 들세라

벼로 두툼하게 이엉을 엮어 바람을 막았다.

 

외양간 앞쪽 그러니까 마당의 오른쪽은 별채가 있고

사랑방과 화장실 있다.

사랑방 앞에는 솥을 하나 걸 수 있는 흙으로 된 화덕이 있고

방은 앞뒤에 작은 창이 있지만 문이 작고 낮아 방문을 닫으면

얼굴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어둡다.

 

사랑방은 평상시에 창고로 활용되기도 하는데

담배 농사를 마무리 할 때쯤이면

잘 엮어진 담배를 보관하는 중요한 창고이기도 하다.

담배는 습도와 온도를 잘 맞춰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담배 창고로는 제격이다.

 

사랑방 앞쪽은 화장실로

큰 항아리로

 

 묻어 변기통을 활용하고

항아리 위쪽은 1미터 정도 되는 굻은 나무 세 개씩

간격을 좁혀 두 개 만들어 앞과 뒤에 넓게 공간을 만들어

변기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 옆은 화덕에서 나온 재를 모아 나중에 밭에 뿌려

농사를 지어 지친 흙에 영양분 흡수에 도움이 되는 재료로 활용한다.

 

마당의 앞쪽 중앙에는 큰 호두나무가 있다.

늙어서 부분적으로 병들어 잘래낸 곳도 있지만

그래도 가을이면 단단하고 먹음직스러운 호두를 생산한다.

이른 가을에도 아침 일찍 일어나 마당을 살피다 보면

아직 덜 영글어 껍데기가 쉽게 벗겨지지 않는 호두가 떨어져 있다.

손으로 쉽게 까지지 않아 거친 돌에 문지르면

노란 물이 흘러나오며 겉껍질이 벗겨지고

아직은 이르다는 표현을 하려는지 애틋한 속껍질이 모습을 들어 낸다.

주먹만한 돌로 속껍질을 깨뜨리면 노란 막을 입은 알이 나오는데

그 노란 막을 벗기면 아기의 손 같은 새 햐얀 속살이 들어난다.

 

아직은 덜 영글어 딱딱하지 않고

때로는 물집처럼 터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 때의 씹는 맛은 다 영근 딱딱한 호두 맛과는 다르게

보드라우면서도 조금은 비린 듯 한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그리고 늦겨울로 갈수록 잘 영근 호두가 많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높은 곳으로 조심조심 올라가 긴 장대로 털어 마무리 수화을 하는데

다른 집 호두에 비해 알이 좋고 딱딱하여 맛도 좋다.

그 중 잘 생긴 두 알을 골라 다른 호두 씨앗으로 문질러 기름을 입혀

손 안에 쥐고 비비면 뽀각뽀각 소리를 내며 점점 유택이 흘러

어른들의 손 장난감이 되기도 한다.

 

마당의 가장 오른쪽의 앞은 건조실이 있어

담배를 말리는 곳이다.

흙벽돌로 일반 집보다 높게 지어

양쪽 병에 가로로 나무를 덧대서

담배를 엮은 줄을 양쪽에 매달아 말리게 되는데

바깥 앞쪽에는 화덕이 있어 석탄과 황토를 섞어 개어

불을 때는데 담배농사를 하는 동안에는

담배를 잘 말리기 위한 불 조절을 위해

건조실 앞마루에서 잠을 청하며 수시로 일어나 점검하기도 한다.

 

싸리문 밖으로 나오면 큰길가에 돼지우리가 있고

그 옆은 퇴비가 쌓여있다.

퇴비는 소 외양간과 돼지우리에서 나오는 것을

다른 잡초들과 썩어 발효를 시켜 천연비료로 활용한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화폭에 꽉 찬 그림을 마친다.

몇 년의 세월이 흘렀을까?

내가 태어난 방은 어느 방일까?

 

그림의 기본은 45년이 흘렀다.

그리고 45년 전 나는 그림속의 사랑방에서 살았다.

내 집이 아니고 내 어머니 집도 아닌 곳

그곳에서 어머니와 나, 두 동생이 살았었다.

 

어느 날 훌쩍 떠났고 자라면서 자주 찾았고

성인이 되어서는 울적하거나 힘들 때 찾았었고

그 집이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었을 적엔 눈물을 흘리며

먼 훗날 언젠가는 되찾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사라졌다.

 

울타리, 안방과 건너방이 있는 초가집

외양간과 사랑채, 건조실 까지 모두 사라졌다.

다만 감나무와 늙어 제구실을 못하는 호두나무만이 남았을 때

그 집을 찾아야 하겠다는 희망도 접었다.

 

그리고 지워져 가는 기억을 잡으려 애쓰는 것으로

내 맘을 달래고 하였다.

 

기차는 달린다.

기차에서 가까운 곳은 빠른 속도로 화면이 바뀌지만

먼 곳은 느릿느릿 책장 넘겨지듯 화면이 넘어간다.

쉬지 않고 그렇게 넘어간다.

세월 흐르듯

 

July 0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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